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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달리는 공무원 연금

풍월 사선암 2013. 11. 27. 21:41

거꾸로 달리는 공무원 연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팔자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공무원 연금을 받는 35만 명의 퇴직공무원이다. 매달 평균 219만원이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온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비정규직 근로자 594만 명이 받는 143만원보다도 많다. 벼슬이 높았던 사람은 훨씬 많이 받는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평균 31만원(20년 이상 가입자는 84만원)을 받는다. 돈이 없어 연금보험료조차 못 내는 500만 명에게는 이조차 그림의 떡이다. 보험료를 더 내고, 퇴직금도 없다고는 하지만 서민들의 눈에는 공무원이 신선(神仙)으로 보일 정도다.

 

국민과 국가의 부담이 너무 크다. 낸 돈의 세 배가 넘는 돈을 돌려주는 후한 구조 때문에 공무원 연금은 적자 신세가 된 지 오래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금으로 퍼준 돈이 10조원에 육박한다. 이명박정부 5년간 77000억원이 들어갔고, 박근혜정부에서 15조원, 다음 정부에서 315000억원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내년도 복지예산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해 106조원으로 편성됐다. 의료급여를 제외한 연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44000억원, 어르신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기초연금의 예산은 52000억원으로 잡혔다. 그런데 공무원 연금으로 나가는 돈이 102000억원이다. 이러니 대통령이 아무리 복지를 부르짖어도 국민들은 혜택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공무원 연금 한번 제대로 고쳐보자는 얘기는 이 정부의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1960년에 시작된 공무원 연금은 여러 정권이 수술대에 올렸지만 끝내 환부를 도려내지 못했다. ‘셀프개혁이 화근이었다. 2001년 김대중정부의 공무원들은 부족분을 나랏돈으로 메꿔주는 국가 지급보장을 법에 넣었다. 2009년 이명박정부의 공무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2차 개혁위원회에 공무원노조 대표들을 무더기로 참여시켜 1차 개혁안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렸다. 재직 공무원의 연금은 조금만 깎고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신입 공무원들의 연금은 후려치는 꼼수를 동원했다.

 

반면 국민연금은 동네북이었다. 김대중(1998노무현(2007) 정부의 공무원은 과감한 칼질로 198870%로 시작한 소득대체율을 40%로 떨어뜨렸다. 수급연령도 65세로 늦췄다. 그 결과 2009년 공무원 연금을 수술한 이후에 두 연금의 수령액 차이는 더 벌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힘없는 사람들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소득분배 기능까지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 연금에는 없는 장치다. 박근혜정부의 관료들은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연계시켜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적게 받도록 했다. 국민연금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자는 법안이 국회 복지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공무원들은 이마저 무산시켰다.

 

지금 두 연금 간 차별을 없애기 위한 개혁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과 일본은 공무원 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시켰다. 두 나라는 공무원은 더 이상 특수한 직업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컨센서스를 도출한 뒤 개혁을 성공시켰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기득권 사수 작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2015년에 국민연금처럼 재정 재계산을 해보고 이에 따라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참 한가한 얘기다. 집권 중반기의 집중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차라리 하지 말자고 하는 편이 솔직하다. 브라질의 룰라는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공무원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노동계가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파업에 나섰지만 굴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브라질의 재정건전성 달성과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확인했고, 망해가던 경제는 극적으로 회생했다.

 

제대로 손보려면 되도록 정권 초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공무원을 배제하고 독립적 민간기구에 맡겨야 한다. 공무원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지 말고 정부와 민간의 수평적 역할을 전제로 새로운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을 먼저 짜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의 관리와 규제가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삼성 갤럭시폰과 현대 자동차가 이끌고 있다는 시대적 변화를 연금개혁 과정에서 반영해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보다는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라고 했다. 공복이 주인의 밥그릇을 넘보는 탐욕이야말로 공공의 적이 아닐까. 공무원 연금의 수술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고, 기초연금 연계로 흔들리는 국민연금을 안정시켜 복지정책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정부의 자기희생 의지는 공공부문 개혁에도 강력한 명분과 추진력을 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중앙일보] 입력 2013.11.27 00:31 / 이하경 논설실장

 

 

50만명 특수직 연금 예산 20348만명 국민연금은 128000

 

(1) KDI도 비판하는 공무원연금

연금수급 형평성 논란 / 국민은 소득의 40% 받는데 공무원·군인은 70%나 받아

늘어나는 국가부담   / 사학연금도 2020년께 적자정부 재정으로 메울 판

 

의문이었다. 복지예산이 100조원에 육박하는데 왜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고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복지예산을 들여다봤다. 의외로 경직성 예산이 많았다. 저소득층의 여건에 맞게 신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었다.무한정 돈을 투입할 수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재정건전성도 복지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복지수요가 점증하는데도 과거 개발경제 시대에 짜놓았던 일부 특수직 계층의 복지로 쏠리고 있었다. 공무원 군인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의 연금이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는 구조를 손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득권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론도 많았다. 연금도 복지이며, 공무원 군인도 국민이라는 주장이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배분의 효율성, 형평성이라도 살려야 한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계층이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세대 내 가능한 재분배를 이뤄내야 미래 세대가 짊어질 부담도 줄어든다.

 

대학 동기인 K씨와 L씨가 2010년 동시에 취직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원인 K씨는 국민연금에, 공무원인 L씨는 공무원연금에 각각 가입했다. 이들이 평생 같은 임금을 받고, 2039년 동시에 은퇴한다면 연금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두 사람이 65세가 되는 2049년부터 2070년까지 연금(사망 후 유족연금 포함)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면, K씨는 6377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15124만원의 연금을 타게 된다. 이에 비해 공무원 L씨는 9876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24725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연금에서 자신이 낸 보험료를 뺀 순연금액은 L(14849만원)가 국민연금 가입자 K(8747만원)보다 1.7배 많은 셈이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최근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김 교수는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순연금액이 고스란히 세금에서 나간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무원 복지국가냐

 

지난 9월 정부는 내년 복지예산이 97조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 공적연금에 들어갈 돈은 331382억원에 달했다. 연금 수혜자가 348만명에 이르는 국민연금에는 1280000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50만명이 받는 특수직역 연금인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에는 20조원이 배정됐다. 빈곤개선 효과가 있는 기초생활보장과 취약계층지원 예산(10300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3개 특수직역 연금 예산 증가액만 8820억원이었다. 전체 복지예산 증가분(45000억원)20%가량이 공무원과 교사 군인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공무원 복지국가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항변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배정된 예산 전부가 아니라 거둬들인 연금보험료와 지급하는 연금의 차액만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과도하다고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것.

 

사학연금도 미래 부담

 

하지만 누적적자와 앞으로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야 할 연금 적자규모를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주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한 금액은 85323억원에 이른다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공무원연금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함정은 사학연금이 빠져 있다는 것. 공식적으로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는 의무가 법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학연금은 현재 10조원의 기금을 쌓아놓고 있어 단기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러나 2020년께 적자로 전환되고 2033년이 되면 한 해 동안 나가는 보험금이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54000억원가량 많게 된다. 결국 사학연금 적자도 정부가 책임질 수밖에 없어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영준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사학연금도 20년 후 은퇴할 사람들의 수급권을 위해 서둘러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

 

정부는 2009년 공무원연금제도를 손질했다. 지급률을 낮추고, 지급개시 연령도 기존 60세에서 새로 가입하는 사람부터 65세로 늦췄다. 또 보험료도 6%에서 7%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방안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재직기간 10년이 넘는 공무원은 연금이 줄어들지 않도록 철저히 기득권을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또 신규 공무원연금 가입자의 소득대체율도 유족연금만 70%에서 60%로 낮추는 데 그쳤다. 소득대체율은 퇴직 전 받은 평균 임금 대비 연금의 비율이다. 앞서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끌어내려 고갈시기를 2060년으로 늦춰놓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때문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시 연금개혁안은 재정 안정은 물론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 측면에서 모두 미흡하다며 추가적인 개혁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효과도 크지 않았다. 2010년 보험료 인상 등으로 적자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2011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장기적으로는 더 위험하다. 기대수명 연장으로 보험료 인상과 지급 연령을 늦춘 효과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상호 교수는 국민연금보다 직역 연금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소득대체율 때문이라며 국민연금은 40% 수준이지만 특수직역 연금은 여전히 70%대에 이르러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전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구조지만, 공무원연금 등은 연금액이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공무원·군인연금 적자10년후 15'세금 하마'.

 

공무원·군인연금 적자세금 투입 10년후 5

내는 것보다 최대 3배 받아빈곤층에 쓸 복지예산 잠식

   

정부의 내년 복지 예산 97조원 가운데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에 배정된 예산은 20조원. 이 가운데 적자를 자체 재정으로 충당하는 사학연금을 제외하면 공무원·군인연금의 적자를 메우는 데만 32800억원이 투입된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특수직역의 노후생활을 보전하는 데 들어가는 셈이다.

 

양대 연금은 낸 보험료의 1.7배를 받아가는 국민연금과 달리 수령액이 최대 3배 많은 구조를 갖고 있다. 양대 연금의 적자는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해가 갈수록 불어날 전망이다. 그만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커지고 있다.

 

3일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공무원·군인연금 적자액은 201332800억원에서 201886000억원, 2023155000억원으로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불과 10년 만에 재정 부담액이 다섯 배 가까이 불어난다는 얘기다. 2030년에는 30조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복지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실질적 빈곤 개선 효과가 낮은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비복지적 지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빈곤 개선율은 25% 안팎으로 OECD 평균(150%)에 현저히 못 미친다. 고경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재정통계 연구실장은 전체 복지 지출에서 빈곤층 지원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선을 간신히 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행 복지 시스템에서 기득권화한 일부 제도를 손질하지 않을 경우 재정적 문제는 물론 복지 제도 전반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그동안 여러 차례 손질이 있었지만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미온적 접근과 연금 제도 수혜자인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과감한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2009년 더 내고 덜 받아가는 방향으로 소폭 개편이 이뤄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근본적 개혁 없이 기존 가입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방향을 고수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복지 예산은 향후 저성장 지속과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부담으로 대폭 늘리기 어렵다.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연금 예산이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제한된 재원으로 복지 수준을 확대하려면 예산 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영준 한양대 교수는 향후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고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연금 등 현행 재원 배분 시스템을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복지 기득권을 해체하는 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입력 : 2012-12-03 17:17 / 한경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