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추석날 '스마트폰'에 빼앗긴 가족사랑

풍월 사선암 2013. 9. 27. 12:27

 

[아침 편지] 추석날 '스마트폰'에 빼앗긴 가족사랑

 

추석날에 온 손자·손녀들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애들끼리 따로 모여서 키득거린다.

다가가 보니 초···대학생, 네 명의 사촌이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 희희낙락한다.

“형아”, “오빠” 하면서

자기 것이 더 좋다고 우기면서 게임에 빠져 있다.

힐끗 보더니 자기들 놀이에 빠져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컴퓨터 게임으로 다투던

손자·손녀들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새 컴퓨터를 들여놓고,

헌 것은 아이들 게임용으로 마련해 두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침 나도 얼마 전에 딸이 사준

스마트폰 사용법을 한참 익히는 중이어서

녀석들과 어울려 묻고 배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아들·며느리들도 스마트폰으로 자료를 검색하고

서로 정보를 나누는데, 나만 외톨박이가 된 듯해 씁쓰름하다.

이 마물(魔物) 같은 기계에 정신을 빼앗겨

시끌벅적하던 명절이 너무 조용하다.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손주들 재롱도 보고 싶은데,

모인 식구 12명 중에 아내를 뺀 11명이

스마트폰과 친구 하느라고 옆도 돌아보지 않는다.

함께 밥 먹는 시간에도 똑같은 상황이라서

추석 감사 차례예배를 드리고 난 뒤 다과 시간에

집안 어른으로서 나름 위풍을 갖추어 훈계(?)를 하였다.

 

“한가윗날은 모처럼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날인데,

어제 오늘 보니 애 어른 모두가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더구나.

가족의 정을 멀게 하는 기계는 별로 좋은 게 아니다.

정이 약한 가정은 삭막해진다.

며느리끼리 ‘형님, 동서’하며 정을 나누는 것이 아주 보기 좋다.

사촌끼리 사근사근 뒤엉켜 뒹굴면서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것은 앞으로 큰 복이 된다.”

고리타분한 말이라 여기겠지만 이렇게 일러 주고,

각자 삶의 둥지로 돌아갈 준비를 시켰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열었다 닫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딸의 선물인 스마트폰을 조금은 익혀서

겨우 문자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여든이 되어 가는 나도 스마트폰에 빠져 볼까?’

생각하면서 방금 가족에게 훈계한 내 말이 스친다.

“정을 멀게 하는 기계에 빠지지 말라”고 했으면서도

배울수록 점점 기계에 매료된다.

생각난 참에 며느리와 손자·손녀들에게

내 솜씨로 그리움을 전하는 문자를 보냈다.

‘정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자.’

전송을 누르고 보니 오자가 생겼다.

‘정은 사라미다’라고 했으니 손주들이 깔깔 웃을 게고,

며느리와 딸도 생끗 웃을 게다.

 

- 김기태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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