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추석, 귀향…‘輕老사회’

풍월 사선암 2013. 9. 17. 09:09

 

추석, 귀향輕老사회

 

늙은이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작가 박완서 씨가 생전에 했던 일갈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서문에 그렇게 썼다.

여기 수록된 단편들은 젊은이들 보기엔 무슨 맛으로 살까 싶은 늙은이들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는 겉으로 초라하게 보이는 노인들의 삶 속에 깃든 연륜을 드러낸다.

세월의 난바다를 헤치며 세상살이의 내공을 쌓아온 과정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그리하여 인생은 늙도록 살 만한 것이라는 주제를 웅숭깊게 전한다.

그런 점에서 너무도는 늙음에 대한 송가(頌歌).

 

이 작품집이 나온 1998년은 외환위기 직후로,

한국 사회 전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고령화시대의 불안감이 증폭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담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삶의 온기와

희망을 전하고자 한 것이 당시 원로 작가였던

박 씨의 의도였다.

 

그로부터 15, 박 씨의 후배 작가가 너무도

후속작을 기획한다면 어떻게 쓸까.

여전히 노인 예찬의 주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노인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에

어리궂은 생각을 해 봤다.

 

최근 공개된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새 61세 이상 노인 자살은 3배로 늘었다.

2011년 한 해 노인 515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는 전체 자살자의 32.9%에 달한다.

한국은 자살률이 높은 국가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한다.

 

노인 복지가 국가적 화두가 됐지만,

노인들은 정작 한국은 살 만한 곳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더 서글픈 것은, 이 소식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숫자로 확인한 것에 불과한 탓이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자조가 팽배하다.

돈 많은 어르신이외에 모두 가볍게 취급받는 경로(輕老) 사회라는 비아냥을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알려진 대로 노인 자살은 질환, 경제적 궁핍, 고독, 가정불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았지만, 노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고

그저 잔명(殘命)으로 힘겹게 버티는 이들이 많다.

 

 

정부가 기초연금·요양제도를 통해 노인들의 삶을 부축하려 하지만, 국가 재정의 현실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독거노인 경로당 그룹홈’(전북 김제시) 노인 일자리 기업유치(전북 익산시)

홀몸노인 상담·돌봄 사업’(경기 북부청) 등을 펼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다른 지자체에도 퍼져가기를 바란다.

 

추석에 귀향을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부모 중의 한 분이 홀로 시골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며 노년의 적막을 온 힘을 다해 견디는 모양새다.

그 분들의 삶에 대해 후대의 우리가 행이니, 불행이니 어찌 입방아를 찧을 수 있겠는가.

다만 그 분들의 노년이 역경의 세월을 헤쳐온 만큼 존중받고 있는지

고향의 고샅길을 걸으며 생각해보는 것은 뜻있을 것이다.

앞 세대의 그것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노년에 과연 살맛을 누리게 될지,

그러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까지 헤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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