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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 미스터리 … 500건 중 대화록·녹음파일만 없어

풍월 사선암 2013. 7. 20. 08:45

청와대 서버 통째 봉하에 수사 중 서거해 흐지부지

 

자료 유출 2008년 수사 관심 / MB정부 몇 차례 반환 요구에도

봉하마을 측, 고발 때까지 버텨 / 검찰 "노 전 대통령이 지시 정황"

 

◀국가기록원에 정상회담 회의록이 있는지 확인하는 최종 절차가 22일로 미뤄졌다. 열람위원 전원은 이날 국가기록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사진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전경.

 

() 노무현 전 대통령 국가기록물 유출사건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인 20086월께 이명박정부의 청와대가 내부자료 200만 건이 유출됐다고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는 내부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의 방문기록을 조사한 결과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에 200만 건이 유출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현 정부 측에 충분히 설명하고 사본을 가져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노 전 대통령에게 원상반환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사저에 보관 중인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외부 무단 접근이 우려되니 보관 중인 것(대통령기록물)에 대해 원상반환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국가기록원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노 전 대통령 측이 메인서버와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가져갔으며 자료 중에는 대외비에 해당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사태가 확산됐다. 

   

거듭된 반환 요청에도 응하지 않자 국가기록원은 검찰 고발이라는 강수를 뒀다. 같은 해 7월 말 국가 기록물 무단 유출을 담당한 당시 노 전 대통령 비서실 소속 10명의 비서관과 행정관을 고발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비서진 외에 노 전 대통령까지 포함한 고발장을 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에 배당했고 구본진 당시 첨수부장(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 그해 8월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서버를 관리하던 온세통신을 압수수색했다. 봉하마을에서 사용하던 이지원 시스템의 서버를 확보했다. 이어 청와대 행정관들도 줄줄이 소환조사했다.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하드디스크 28개에 담긴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자료와 노 전 대통령 측이 사저로 가져갔다가 반납한 하드디스크에 담긴 자료가 일치하는지를 분석했다.

 

검찰은 9월 중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을 조사한 뒤 노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 방식을 두고 고심했다. 검찰이 방문조사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던 차에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굳이 조사하겠다면 출석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후 다시 소환방법 등을 놓고 고심했지만 대검 중수부가 세종증권 인수 비리에 연루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같은 해 말 구속기소하면서 국가기록물 유출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해졌다. 이듬해인 20095월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검찰은 결국 같은 해 10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이 사건을 불기소 종결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구 지청장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수사 과정에서 중대한 기록이 폐기되거나 한 사실을 확인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후임자인 한찬식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은 수사 과정에서 하드디스크 등을 유출하고 유출을 지시한 정황은 확인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 처리했다당시 압수했던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기록관으로 반환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사초 미스터리 500건 중 대화록·녹음파일만 없어

 

여야 책임 공방 진실은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18일 국가기록원 직원들이 대화록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들을 국회 운영위 회의실로 옮기고 있다. 여야는 이날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를 열고 22일 국가기록원 산하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대화록 존재 여부를 최종 확인하기로 합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이 증발했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18일 국회 운영위 보고에서 국가기록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대미문의 사초(史草) 실종 미스터리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물론 과거 정부와 현 정부의 인사들 모두 당혹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8저희들도 솔직히 좀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 인사들도 대화록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응했다.

 

최장 30년 동안 당사자(노무현 전 대통령)를 제외하면 누구도 볼 수 없도록 비밀문서로 봉해 놓은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지 못하자 정치권은 책임 공방에 휩싸였다. 정상회담 대화록은 정상적이라면 노무현 청와대의 문서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 저장됐다 퇴임 후인 20082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돼 이후부터 이명박정부에서 관리돼 왔어야 한다. 그러나 여야 열람위원들이 대화록을 찾지 못한 데다 국가기록원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힘에 따라 이 세 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 대화록이 증발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화록이 폐기된 게 확인될 경우 논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공방에서 사초 파기 파문으로 증폭될 전망이다. 진실 확인을 위해선 검찰 수사로도 번질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은 대화록이 국가기록원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을 고수하고 있어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 폐기” vs “이지원 통째 넘겨

 

박경국 원장이 노무현정부에서 넘긴 대통령기록물 자료목록에 정상회담 대화록은 없다고 밝히자 새누리당에선 노 전 대통령 측의 폐기 의혹이 증폭됐다. “안 넘겼기 때문에 찾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만약 대화록이 폐기돼 넘어오지 않았다면 이를 지시할 사람은 최고 결정권자인 노 전 대통령밖에 없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2008년 정권을 인수했을 때 노무현정부 청와대로부터 A4용지 한 장 넘겨받은 게 없다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까지 폐기토록 지시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대화록은 200710월 국정원이 작성한 초안이 보고된 뒤 안보정책실의 최종 보완을 거쳐 그해 12월 이지원 시스템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대통령 보고·재가를 거친 이지원 문서는 청와대 1부속실의 기록물 담당 행정관이 지정기록물로 처리한 뒤 기록관리비서관실을 거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고 밝혔다. 통째로 다 넘겼다는 주장이다. 노무현정부 인사들은 그 근거로 이지원 시스템의 특성을 든다. 청와대의 모든 업무를 최초로 전산화한 이지원 시스템에선 보고·결재·열람·검색 등의 모든 업무 기록이 남기 때문에 고의적 누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물관리 시스템인 PAMS(팜스·President Archives Management System)에 이지원 기록이 그대로 넘어갔다고도 주장했다.

 

봉하에 있을 수도” vs “ MB정권 의심

 

새누리당은 정권 교체기인 2008년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후도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전임 대통령이 재임기간 만들어진 기록물의 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열람이 기술적으로 어려워지자 노 전 대통령 측은 이지원 시스템과 데이터의 사본을 봉하마을 사저로 가지고 내려갔다. 이에 당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노 전 대통령이 국가 소유의 기록물을 불법으로 반출했다고 반발했었다.

 

이한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정부 때 이지원의 자료를 봉하마을로 갖고 간 뒤 (나중에 노 전 대통령 측이 이를 반환할 때) 전부 넘긴 게 아니고 일부만 전달했다는 논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스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기록물 중 일부가 국가기록원으로 반환되지 않았고, 거기에 정상회담 대화록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반납하지 않고 별도 보관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정부에서 기록관리비서관을 지낸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전임 대통령이 성남의 대통령기록관까지 가서 열람해야 하니 힘들어 이지원 시스템으로 재임기간 자료를 정리하려 했던 것이라며 그걸 정치 공세로 삼아 결국 다 돌려줬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에선 오히려 이명박정부에서의 폐기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참여정부에서 기록물을 삭제하거나 폐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만약 기록물이 없는 게 확인되면 국정원 댓글 조작 등의 전과가 있는 이명박 정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인사는 대화록을 공개해도 시원찮을 판에 뭐 하러 대화록을 폐기하나라고 반박했다.

 

엔엘엘키워드 검색해 다른 자료는 찾아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가 요구했던 사전·사후 정상회담 준비자료 등은 500여 건에 50006000페이지 분량으로, 거의 다 확인됐는데 대화록과 녹음파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 17일 열람위원들이 국가기록원을 찾았을 때 요청했던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그런데 기록원 관계자가 아무리 찾아도 대화록은 없다고 해 모두가 말문을 열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대통령기록관에 이지원 시스템의 기록을 다 보내 어느 하나만 빠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신 민감한 비밀 문서는 제목을 별칭으로 기록하는 게 관행이고 정상회담은 보안이 중요해 더욱 그럴 수 있다비밀문서는 아예 별표(****)’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검색이 아직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엔엘엘(NLL)’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다른 자료는 대부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낸 반면 유독 대화록과 녹음파일만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일각에선 상대를 겨냥해 폐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못 찾게 만들어 놔” “사후관리에 의혹

 

김 봉하사업본부장 등 노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국가기록원이 끝내 회의록을 찾지 못하면 국가기록원의 참여정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직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임명하는 대통령기록관장은 5년 임기가 보장되는데 이명박정부는 20087월 기록관장(임상경)을 대기발령시킨 뒤 쫓아냈다따라서 그 이후 대통령기록관이 기록물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우리로선 전혀 알 수 없다며 관리 부실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넘겼는데도 못 찾는 것이라면 그건 30년 후 열람이 가능해진 시점에서도 못 찾는다는 의미라며 그렇다면 노무현정부 측이 사실상 찾지 못하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있어도 못 찾으면 그게 폐기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