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停戰60년과 NLL의 가치

풍월 사선암 2013. 7. 12. 22:28

停戰60년과 NLL의 가치

유호열/고려대교수북한학

 

인천공항에서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걸릴 만큼 가깝다. 그런데 이 칭다오시에서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6기 해외지역 출범회의를 개최하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민주평통은 의장인 대통령에게 평화통일에 관해 조언하는 기구인데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에 지역협의회가 구성된 것은 불과 2년밖에 안된다.

 

북한과의 특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우리 통일운동을 확산하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중국 지역협의회 출범식을 베이징(北京) 소재 우리 대사관저에서 개최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비교하면 불과 몇 년 사이지만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정도다. 이젠 중국 내에서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선양(瀋陽) 5개 지역협의회로 확대되고, 중국 지역회의가 미주, 일본, 아세안, 유럽 지역회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위상과 역할이 커졌다.

 

지난 60년 동안 유지돼 온 정전(停戰)체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전체제가 임시적이고 불안정하다는 측면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된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항구적인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나 평화적 통일이 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차선 중의 최선책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북한은 정전협정을 고의로 위반하며 불법적인 대남 도발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를 목표로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정전체제 무실화 책동을 끊임없이 자행해왔다.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거나 정전체제의 무실화 책동을 집요하게 강행하는 이유는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체결케 함으로써 한국에 주둔할 명분을 상실케 하려는 데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은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만 하면 이른바 한국 내 종북주의 세력과 친북세력들이 한국 전체를 주도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정전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도발을 자행하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 2123차 핵실험 이후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또다시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들고 나온 상황에서 정전협정의 제약과 불안정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따라서 정전체제의 안정적 관리만큼 중요한 일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지난 60년 간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정전체제는 문서로 보장되거나 양측의 신뢰에 기반해서 관리돼 온 게 아니다. 북한의 도발 책동에 대해 확실한 응징과 억지력으로 대응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화와 안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육상에서의 군사분계선뿐만 아니라 해상에서의 사실상 경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확실히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같은 NLL이 대선을 불과 2개월 남겨둔 200710월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주요 핵심 현안으로 불쑥 다뤄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공개된 회담록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국가의 안보와 정체성이 위기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민주평통 해외지역협의회가 개최되는 산둥성은 예로부터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이다. 대한민국의 최북단 백령도에서 새벽 닭이 울면 산둥반도 동쪽 끝 마을에서는 밤잠을 설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가깝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한·중 수교 이후 가장 많은 한국 공장과 기업이 진출한 곳이기도 하다. 칭다오시의 경우 하루 15회 한국행 비행기가 운항하는데 서해 NLL 남쪽을 통해 양국 영공(領空)으로 진입한다. 옌타이(煙臺)시에 있는 대우조선에서는 온갖 선박 구조물을 제작해 바지선을 통해 거제도로 운송하는데, 역시 NLL을 기점으로 양국 간 선박이 오간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訪中) 이후 한층 가까워진 한·중 관계는 6·25 전쟁 때 교전국들이 어떻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NLL의 현실적 의미와 가치를 무시하거나 파기하려는 기도는 결국 NLL이 실현한 역사적 성과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NLL을 기점으로 한·중 양국을 왕래하는 수천, 수만 교류협력의 발걸음이 이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