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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10人 릴레이 탐구 ⑨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풍월 사선암 2013. 7. 20. 07:54

정부 설계·시공 총감독"돌파력 약해" 지적도

 

['파워 10' 릴레이 탐구]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대통령과 인연 2002년부터 정권창출에 직접 관여는 안해

청와대의 거의 모든 회의 참석

정무감각 부족한 '과제수행형', 본인도 "난 리더 아닌 스태프"

 

지난 330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새 정부의 첫 당··청 워크숍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곤욕을 치렀다. 유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하려 하자 곧바로 친박 의원들이 "대통령을 10년 이상 모신 정치인들을 불러놓고 겨우 3개월 모신 사람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박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의원들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 대통령과 유 수석의 인연은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웬만한 친박보다 더 오래됐을 것"이라고 했다. 유 수석은 사석에서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는 것을 꺼린다. 그 얘기를 꺼내면 말을 자르거나 화제를 돌린다.

 

박근혜 정부 구조의 설계자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지난 3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유 수석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총괄했었다.

 

지난 14일 대통령직 인수위원 명단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인수위 9개 분과를 총괄하는 국정기획조정분과위 간사에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의 이름이 올라간 것이다. 친박들도 "유민봉이 누구냐"고 했다.

 

대선을 치르면서 박 대통령 주변의 자문 교수들은 대부분 노출됐지만 유 수석은 예외였다. 인선 발표 후 "대전 출신에 1983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가 학문으로 전향해 '리더십'을 전공한 행정학자"라는 정도만 알려졌다. 정치권과 특별한 연결고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유 수석이 정권 창출, 즉 대선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유 수석에겐 '박근혜 정부의 설계자'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인수위에서 부총리제 부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정부 조직개편을 주도했고 대선 공약을 국정 과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총괄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국정 과제를 부처로 이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새 정부 설계와 시공까지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의사결정 길목마다 있어

 

유 수석은 거의 모든 공식·비공식 주요 회의에 참여한다. 매주 월요일 열리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사전에 총괄 준비하고 거기서 나온 대통령의 지시를 각 부처에 전달한다. 격주로 화요일에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가 끝나도 마찬가지다.

 

부정기적인 청와대 인사위원회, 매일 오전 언론대응 및 홍보기획 회의의 고정 멤버이기도 하다. ··청에서 3명씩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9인 회의'에 허태열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과 함께 참석한다. 대통령의 대외 일정도 홍보수석과 협의해 기본 틀을 잡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예정대로 간다'고 발표한 지방공약 이행계획의 경우, 기재부가 담당한 재원(財源) 부분을 빼고 나머지는 국정기획수석실에서 맡아서 했다"고 했다.

 

유 수석(76학번)의 성균관대 동문들도 청와대 요소요소에 있다. 수석급 이상에서 허 비서실장(64학번), 모철민 교육문화수석(78학번), 곽상도 민정수석(79학번)이 있다. 성균관대 교수 출신으로 MB 정권에서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박재완 전 의원과도 친한 사이다. 이력이 비슷한 두 사람은 행정고시 23회 동기다.

 

"돌파력, 정무 감각 부족" 지적

 

유 수석에 대해선 그러나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참모"라는 평가도 있다. 막혔을 때 뚫고 나가는 돌파력이 약하다는 의미다. 한 관계자는 "유 수석은 '돌파형'이라기보다는 '과제 수행형'"이라며 "이론과 실제는 다른데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학자의 모습도 보인다"고 했다.

 

이는 "청와대에 대통령 빼놓고 국정을 틀어쥐고 가는 주도 그룹이 없다"는 우려와도 일맥상통한다. 국정기획수석에게 요구되는 대형 이슈 설정 능력, 위기 대응력, 정무 감각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유 수석도 이런 평가를 듣고 있는 듯하다. 최근 사석에서 유 수석은 "() 정부와 비교하면 새 정부 사람들이 리더보다는 스태프란 측면이 훨씬 더 강하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게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고 어떤 게 더 좋은 것인지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 않으냐"고 했다는 것이다.

 

'수염'이 인상적인 유 수석에게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인데 깎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 수석은 "이건 개인의 문제"라며 '꿋꿋하게' 기르고 있다. 주변엔 수염을 깎으면 인상이 날카로워 보여 기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 수석은 해병대 출신이다.

 

유 수석은 청와대 불교신자 모임인 청불회 회장이다. 지난 5월 첫 청불회 법회에서 유 수석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었다. 그는 "가르침을 준 스님들에 대한 기억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라고 했다. 2011년 입적한 봉철 스님을 성균관대 2학년 때부터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정제된 언어를 쓰려고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했다. 술자리를 자주 갖진 않으나 부서 회식 때 돌아오는 잔을 다 마실 정도의 만만치 않은 주량이다.

 

최재혁 기자 / 입력 : 2013.07.20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