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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

풍월 사선암 2013. 7. 14. 08:15

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

 

못생겨서 감사합니다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

 

눈 작고 못생긴 애로 통했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놀려댔고

아버지도 못생겼다고 미워했다

웃기는 애들 인기 있는 걸 보고

그렇게 되고 싶어 혼자 연습했다

 

웃자고 쓴 방송 대본 덕에

비주류 기생충학을 전공했다

기생충은 인간과 3만년 살았고

늘 해만 끼친 것도 아니에요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죠

 

◀지난달 27일 오후 충남 천안에 있는 단국대 의대 기생충연구실에서 만난 서민 교수는 인터뷰 내내 특유의 유머감각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B)급 유머지만 특유의 풍자가 돋보인다는 말에 서 교수는 비급이 아니다라고 정색한다. 그러곤 조금 뒤에 (C), 시급이죠라는 식이다.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지난 512, 진보 성향의 한 일간지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글을 쓴 이는 기생충학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

 

일부 좌파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대변인에서 경질됐다는 기사 내용을 토대로 그의 성추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윤창중의 결백을 믿는다.”

 

윤창중 결백론의 근거가 흥미롭다. 윤봉길 의사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윤창중은 대선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인수위에 들어가 애국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건 내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윤봉길 의사에게 이제 독립했으니 장관 하라는 격이라고 호통칠 만큼 사심이 없는 사람이며, 이후 사흘이나 버티다가인수위 대변인을 맡았으니 그 진정성을 믿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입이 더러운 자는 손이 깨끗한 법이니 막말 논평으로 유명한 그가 손버릇까지 나쁠 리 없는데, “만에 하나,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말과 손과 성기가 삼위일체로 더러운 보기 드문 인물이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서민의 칼럼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타고 단박에 화제로 떠올랐고 제목에 낚여 욱했다가 빵 터지고 간다.” “반어법의 극치다.” “진정한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봤다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 사회의 병리적 문제를 기생충의 생태에 비유한 글들이 실리는 그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현재까지 160여만명. 어수룩한 외모와 어눌한 말투,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풍자로 뼈 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신진 논객. 그의 능청스럽고 반어적인 유머의 원천은 뭘까? 텔레비전 오락 프로에도 단골 출연자가 된 그는 정말 생각이 있는 사람일까, 단순히 웃기는 사람일까. 충남 천안에 있는 단국대 연구실로 그를 만나러 갔다. 구겨진 머리에 캡 모자를 눌러쓴 채 서민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전날 밤늦게 끝난 방송 녹화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필자가 선물한 하회탈춤 이매의 탈을 서민 교수가 써보고 있다.

 

위암, 음주, 아내의 분노, 위암투병 폭로

 

-요즘 인기가 대단하다. “떴다는 걸 느끼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변에서 기생충 어쩌고저쩌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땐 내 얘기를 하는구나행동도 조심스럽게 하고 (무릎을 모으며) 인사도 공손히 하고.”(웃음)

 

-의대 교수가 사회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뭐라 하지 않나?

 

학교나 학회에선 별 얘기 없다. 오히려 홍보가 된다고 생각들 하시는 것 같다. 다만 아내는 내가 정치 관련 글을 쓰는 걸 싫어한다. 작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더 이상 쓰지 말라고, 탄압받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는 마흔두살에 결혼을 했다. 노총각 아들에 애가 탄 어머니가, 선 한번 볼 때마다 5만원씩 주겠다고 해 마지못해 나간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세상에 태어나 만나 본 가장 예쁜 여자였다. 술만 마셨다 하면 천안역에 대자로 뻗을 때까지폭음하던 서민이 2011년 조기 위암 진단을 받자, 부인은 두번 다시 술을 마시면 전 재산을 아내에게 주고 이혼한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으나 퇴원한 지 며칠 안 되어 닭백숙을 4인분이나 먹고 꿰맨 자리가 터지는 바람에 수혈을 9병이나 받는 중태에 빠졌다. 겨우 상처가 아물어 퇴원한 뒤 석달이 지나, 동료 의사에게 이제 이 환자는 술을 마셔도 된다음주추천서를 써 달래서 아내한테 가져갔더니, 아내는 그 자리에서 추천서를 박박 찢어버리고는 그동안 어머니께 비밀로 했던 위암 투병 사실을 폭로했다.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서민은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내는 그의 영원한 이다.

 

-가족관계는?

 

아내와 강아지 세마리 키우며 산다. 아이는 없다. 결혼할 때 내 조건이 아이를 가지지 말자는 거였다. 나 닮아 못생긴 애 나올까봐서.”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그는 진지했다. 그의 외모 콤플렉스는 뿌리가 깊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민은 어린 시절부터 눈 작고 못생긴 애로 통했다. 아이들이 화장실까지 따라와 놀려대는 통에 집 밖에선 소변도 웬만하면 참아 버릇했다. 1 때 음악 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그를 나오라고 해서 눈을 키워준다고 눈꺼풀을 손으로 잡아 늘였는데,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어대는 동안 서민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는 외톨이였다.

 

-왜 화를 내거나 반항하지 않았나?

 

나도 내가 싫었다. 누가 놀리면 대드는 대신, ‘그래, 난 인간쓰레기야생각했다. 길을 가도 놀리는 애들이 있어서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어려선 오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서른까지만 살다 죽어야지 생각하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없었다. 내게 어린 시절은 온통 잿빛이다.”

 

-단지 외모 때문에 그랬단 말인가?

 

글쎄, 외모도 그렇고아버지가 나를 미워하셨다. 못생겼다고.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고 매 맞은 기억만 있다. 때리는 이유도 분명치 않았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책 읽는다고 매 맞은 이후엔 서른이 될 때까지 책도 읽지 않았다. 3 때는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고 매를 맞았다. 아버지만 생각하면 공포에 질려서 말을 더듬었고 틱 장애까지 겪었다.”

 

아버지는 검사였다. 열두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9남매의 맏이로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한평생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저주했다. 4남매 중 장남인 서민은 아버지의 가장 만만한 화풀이 상대였다.

 

-언제부터 사람을 웃기는 재주를 갖게 됐나?

 

어릴 때 친구가 없으니 항상 남들을 관찰하면서 살았는데, 웃기는 애들이 인기가 많은 걸 보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우스갯소리 잘하는 애들 따라다니면서 수첩에 받아 적고 혼자서 연습하곤 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처음엔 아무도 웃어주지 않더라.”

 

서민의 유머는 피나는 연마와 습작의 산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작정하고 공부해서, 중간쯤 하던 등수가 서울 의대에 갈 만큼 오를 무렵 그의 유머도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웃기는 것만이 서민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85년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그의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사람을 웃길까뿐이었다. 의대 방송반 시절 기생충학 강의를 듣다가 <킬리만자로의 회충>이란 대본을 썼는데, 웃자고 쓴 대본이 그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스승인 홍성태 교수가 대본을 보고는 그에게 기생충을 전공해 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그의 기발함이 연구에 보탬이 될 거라며.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기생충 박물관 만들려고 부지런히 사는 로또

 

-기생충학은 의대생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지 않은가?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생충은 내 삶의 은인이다. 기생충 공부 안 했으면 내 인생은 지금의 반의 반도 재미없을 뻔했다. 남들은 기생충을 징그럽다고 싫어하지만 나는 기생충이 불쌍하고 사랑스럽다.”

 

-채변 봉투 갖다 내고 단체로 구충제를 먹어본 세대라면 기생충이 사랑스럽다는 말에 절대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1963년 한 여자아이한테서 회충이 1000마리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기화로 정부가 기생충박멸협회를 만들어서 아이들 데려다가 대대적으로 검사하고 구충제 먹이기 시작했다. 당시 공무원들이 몸 바쳐 일한 덕에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기생충 감염률이 줄어든 건 좋은 일이지만그 당시 기생충 박멸이 그렇게 시급한 과제였을까 의문은 든다. 사실 그 아이가 죽은 건 영양실조 때문이지 기생충 때문이 아니다. 회충은 평생 밥풀 몇 알밖에 안 먹는다. 제대로 먹이기만 했어도 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당시에 기생충이 후진국의 상징처럼 인식되어서 선진국 되려면 박멸해 없애야 한다고 정부 주도로 세게 밀어붙인 거다.”

 

-그럼 기생충이 박멸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박멸하려고 해서 박멸되는 것도 아니다. 세균을 항생제로 다 몰아내려고 하면 나쁜 세균이 들어와서 더 탈이 나지 않는가. 기생충은 3만년 전부터 인류와 공존해 왔고 인체에 꼭 해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기생충이 알레르기 질환을 크게 줄이고 크론병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흔히 이 기생충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는데 기생충 입장에선 무지 억울할 것이다. 말라리아 원충처럼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나쁜 기생충도 있지만 대체로 기생충의 범죄율은 인간보다 낮다.”

 

못 먹고 못살던 60년대나 비만이 걱정인 요즘이나 회충의 크기는 한결같다. 인체에 세 들어 사는 기생충은 절제와 분수를 아는 생물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인간이 지구에 세 들어 살면서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그 정도는 봐줄 만하다는 것이다. 서민이 인터넷에 연재한 <기생충 이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기생충을 탐욕의 상징에 비유한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다. ? 자기 분수를 지켜서 먹으니까. 기생충은 비열할 수는 있어도 탐욕스럽지는 않다. 있는 듯 없는 듯 숨은 채로 자기 먹을 것만 챙겨먹는 놈들, 그게 기생충이다.”

 

서민은 기생충이 소시민을 닮았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 그대로 기생충은 서민이다. 질시와 혐오의 대상인 기생충의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동안 그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냈을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타임머신 같은 게 있어서 내 어린 시절 누군가 미래에서 뿅 날아와 넌 앞으로 잘 살게 될 거야미리 말해줬더라면 사는 게 그렇게 괴롭진 않았을 텐데.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음 좋겠다. 네 미래는 좋아질 거다. 좌절하지 않고 뭐든 하나만 열심히 하면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도 나중엔 다 쓸모가 있을 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내가 공부 안 하고 소설만 뒤적일 땐 몰랐는데, 나중에 논문 쓸 때 보니 소설적 상상력이 힘이 되더라.”

 

그의 능청스런 말들은 하회탈춤의 이매 닮아 

 

-어려선 책을 안 읽었다더니?

 

서른한살부터 읽기 시작했다. 97년 공중보건의 하던 시절 우연히 탈의실에서 신문지 조각에 실린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정권교체가 뭐가 그리 무서운가라고 쓰인 책 광고였는데 호기심이 동해서 책을 사게 되었다. 그게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이다. 큰 충격이었다. 지역차별, 여성차별, 학력차별이전엔 한번도 따져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프로야구 말곤 관심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 뒤로 다양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강준만 교수 덕에 사람답게 살게 됐다.”

 

그 후 친한 사람들한테 <인물과 사상>을 열심히 선물하며 그가 받은 충격과 감동을 나누고 싶어했지만, 별 반응들이 없었다. 가슴속 얘기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서민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 쓰고 혼자만 읽던 글이 쌓이면서 2002년에는 딴지일보 기자가 되었고 이후 <기생충의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같은 책을 출간했다. 요즘 그는 새로 나올 <서민의 기생충열전> 탈고 작업으로 분주하다.

 

-과거 조경철 교수나 윤무부 교수도 자기 분야에 독보적 입지를 쌓으면서도 대중적 스타로 큰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별 박사 조경철, 새 박사 윤무부에 이어 기생충 박사 서민이 되려 하는가?

 

감히 그분들과 비교할 급이 안 된다. 난 그저 못생겨서 만만한 캐릭터다. 같이 방송하는 정찬우가 나보고 없어 보인다고 구박하는데, 난 그 말이 듣기 좋다.”

 

-기꺼이 어릿광대가 되겠단 얘긴가?

 

어릿광대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솔직히 대학교수라고 어디 가나 교수님, 교수님 하는데, 내가 구박받으면 보는 사람들이 통쾌할 것 아닌가.”

 

-진중권은 독설과 조롱, 김어준은 마초적 풍자가 특징이다. 그들과 비교해 당신의 특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난 그냥 C급 유머? 내 글엔 대안이 없고 소심한 탄식만 있다. 내가 잘하는 게 반어적으로 비꼬고 조롱하는 건데, 이건 그저 세상에 편승하는 거다. 우리끼리 킬킬거리는 소심한 자뻑일 뿐이지, 그걸로는 사회를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바뀌나?

 

시민들이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바뀐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 같은 사람한텐 최고의 대통령이었다. 매일 글 쓸 소재를 던져줬으니까. 그때는 쓸 얘기가 너무 많아서 신문사에 두세편씩 보내 주고 아무거나 골라 쓰세요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도 우리나라 수준에 딱 맞는 대통령이었던 거다. 내 주변에 의사들이 많은데 살 만큼 살면서도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늘 불만이다. 정치가 자기 불만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80년대를 뜨겁게 살진 못했을지언정 최소한 응원은 했던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 따지려 든다. 이래선 어떤 메시아가 와도 못 바꾼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민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넸다. 쭈글쭈글 웃는 주름으로 유명해 흔히 하회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하회탈춤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하나인 이매의 탈이다. 이매는 하회탈춤의 메인 캐릭터가 아니다. 언청이에, 눈은 아래로 축 처지고 좌우가 비대칭으로 찌그러진 이매는, 덜떨어진 바보에 팔과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장애인이다. 이매는 가장 찌질한 자들의 표상이다. 나는 못생긴 바보야, 나를 마음대로 깔아뭉개 봐. 그렇게 상대를 한껏 무장 해제시키고는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다가가 힘 있는 자들의 치부를 사정없이 까발린다. 관객은 못생긴 바보 이매의 능청스런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공감한다. 그 위약(僞弱)의 힘은 공감의 원천이 된다.

 

-난 당신한테서 이매를 보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만 무의식에서 그런 생존전략을 터득한 것 같다. 듣고 보니 그렇다.”

 

서울대 의대 출신, 박사에 대학교수. 그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서민이 이름 그대로 이 시대 찌질한 서민의 편이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코미디언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란 말을 남겼지만, 나는 서민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못생겨서 감사합니다.”

 

<한겨레 신문 등록 : 2013.07.12 19:13 / 이진순 언론학 박사>

 

 

[서민 칼럼]“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날이면 날마다 신문지면을 장식하던 남양우유 욕설파문은 묻혔다. 기사대로라면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최악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윤창중 열사. 청와대 대변인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서 미국에 간 그가 한국계 미국인인 20대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게 기사 내용이다.

 

일부 좌파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대변인에서 경질됐다는 기사 내용을 토대로 그의 성추행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윤창중의 결백을 믿는다.

 

첫째, 윤창중은 윤봉길의 후예다. 파평윤씨 종친회는 부인했지만 윤창중은 자신이 상하이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요인을 암살한 윤봉길의 손자라고 했다.

 

파평윤씨와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새누리당 의원인 하태경도 윤봉길 손자가 맞다며 확인해 줬는데, 호랑이는 고양이를 낳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해보면, 윤봉길의 손자가 미국에서 딸같은 여자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짓을 했을 리가 없다.

 

만일 윤창중이 그런 짓거리를 한 게 사실이라면 그는 윤봉길의 손자가 아니라 조두순의 배다른 동생일 것이다.

 

둘째, 윤창중은 탐욕이 없는 사람이다. 뉴데일리에서 십수편의 칼럼으로 진정한 수구꼴통이 뭔지 보여줬던 윤창중은 채널 A박종진의 쾌도난마에 나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박종진: 이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들어가 애국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윤창중: 그런 말은 제 영혼에 대한 모독입니다....윤봉길 의사에게 이제 독립했으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해라고 하는 격입니다.

 

물론 사흘 후 덥썩 인수위 대변인 자리를 수락하지만, 사흘이나 버텼다는 것 자체가 그가 욕심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런 사람이 여자 인턴의 엉덩이에 욕심을 냈다는 게 말이나 되나? 만일 윤창중이 그런 짓거리를 한 게 사실이라면 그는 한입으로 두말하는 일구이언하는 자며, 표리부동하며 면종복배하는 자며, 입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품은 구밀복검하는 자이리라.

 

셋째, 입이 더러운 자는 보통 손은 깨끗하다. 북한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극우보수 인사 중 군대 안간 사람이 많듯이 입으로는 욕이나 더러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개 싸움을 못하고 행동도 얌전한 경우가 많다.

 

윤창중은 우리나라에서 입이 더럽기로 소문난 자로, 안철수에게 젖비린내가 폴폴 난다고 일갈했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한 정운찬 등에게 정치적 창녀라고 한 바 있는데, 그가 청와대 대변인이 됐을 때 이 막말이 문제가 되어 사과까지 한 적이 있다.

 

속설대로라면 그는 말만 더러울 뿐 손은 비교적 깨끗해야 하지만, 만에 하나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말과 손과 성기가 삼위일체로 더러운 보기드문 인물이 된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의 눈을 믿자. 박 대통령은 인사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사람을 잘 알아본다.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비롯해서 짧은 기간에 7명을 낙마시킨 건 박대통령이 인사의 달인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윤진숙이라는 진주를 모래 속에서 찾아내 해양수산부장관을 시킨 건 화룡점정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낙점한 분이 20대 여성 인턴의 엉덩이에 눈이 뒤집혀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하는 건 박대통령의 독특한 심미안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만일 윤창중이 성추행을 한 게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의 달인은커녕 국민이 반대하는 사고뭉치만 죄다 요직에 앉히는 청개구리 기질을 가진 인사의 하수이리라.

 

윤창중이 성추행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쯤해두고 이제 세간의 의혹을 한방에 정리해준다.

 

1) 일찍 귀국한 이유에 대해 윤창중이 아내가 사경을 헤매서라고 답변한 것에 대해;

 

지금쯤 윤창중의 부인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건 확실한 일이니,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예언이다. 그러니까 윤창중은 이같은 일을 예측해 급거 귀국한 것이다.

 

2) 자기 카드로 미국에서 한국까지 항공료를 결제한 것에 대해;

 

국가 돈으로 외유에 나서는 인사들이 한둘이 아닌 판에 정상회담이라는 공적인 일로 미국에 갔으면서도 자기 돈을 쓴 윤창중의 행위는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일이다.

 

3) 박근혜 대통령이 부적절한 행동을 들어 윤창중을 경질한 것에 대해;

 

윤창중은 부인이 사경을 헤맬 것을 예측해 공무 수행 중 일찍 귀국했다.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은 극진한 간병, 박 대통령은 윤창중이 간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변인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럼 부적절한 행동은 뭐냐면, 늘 공보다 사를 우선시하는 박대통령에게 아무리 사경을 헤맨다해도 사적인 일로 공무를 팽개친 윤창중의 행위는 불미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윤창중을 장황하게 변호했지만, 그에게 실망한 게 딱 하나 있다. 그는 신체접촉은 있었지만 성추행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건 아이돌 가수인 김상혁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의 아류에 불과하다. 청와대 대변인쯤 되면 언어의 마술사라 할 만한데, 아무리 사정이 급박하다해도 8년 전에 크게 화제가 된 발언을 우려먹는 건 대변인답지 못하다.

 

어찌되었건 아내 간병 때문에 공무를 팽개치고 귀국한 만큼 꼭 부인을 살려 놓으세요. 제가 응원합니다, 윤열사님

 

경향신문 / 입력 : 201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