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 장영희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다”라는 ‘머피의 법칙’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어도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 같은데, 왜‘하필이면’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짜 호박은커녕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겨 먹기 일쑤냐는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은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거다. 순전히 운명적인 불공평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벤츠 타고 탄탄대로를 가는데, 나는 펑크 난 딸딸이 고물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도‘머피의 법칙’을 생각할 때가 많다.
한 예로 내 열쇠고리에는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연구실, 또 하나는 과 사무실 열쇠이다. 열쇠에 유성 펜으로 방 번호를 표시해 놓으면 그만이지만, 그러기도 귀찮고 또 그냥 재미도 있고 해서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둘 중 아무거나 꽂아 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수학적으로 따져 볼 때 확률은 분명히 반반인데, ‘하필이면’ 연구실 열쇠가 아니라 거의 과 사무실 열쇠가 먼저 손에 잡혀 두 번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일이 열이면 아홉이다.
그뿐인가, ‘하필이면’ 큰 맘 먹고 세차한 날은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고, 무엇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면 바로 내 앞에서 매진되고, 더욱이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내 어깨에 새똥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 한동안 서서 나의 ‘하필이면’의 운명에 경악했다. 1천만 서울 인구 중에 새똥 맞아 본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텐데 ‘하필이면’ 그게 나라니!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필이면’도 있다. 남들은 멀쩡히 잘도 걸어 다니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목발에 의지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펜만 잡으면 멋진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다른 재주가 있느냐 하면 노래, 그림, 손재주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주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필이면’ 나만 깜빡하신 듯하다.
언젠가 치과에서 본 여성지에는 모 배우가 화장품 광고 출연료로 3억 원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3억이면 내가 목이 쉬어라 가르치고 밤 새워 페이퍼 읽으며 10년쯤 일해야 버는 액수인데, 여배우는 그 돈을 하루 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타고난 생김새 때문인데,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잘빠진 육체는 가지지 못했어도 그런 대로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내 아름다운 영혼에는 3억 원은커녕 3백 원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둘 다 못 가지고 태어날 바에야 아름다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날 일이지 왜 ‘하필이면’ 3백 원도 못 받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는가 말이다. 그래서 ‘하필이면’이라는 말은 내게 한심하고 슬픈 말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 초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 아름이가 내게 던진 ‘하필이면’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곰 인형을 하나 사서 아름이 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는 아름이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아름이가 ‘하필이면’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 처럼 ‘하필이면’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들과 인연 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또 나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게다가 실수투성이 안하무인인데다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장영희를 ‘하필이면’ 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랑해 주는가(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양순하고 웃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잘빠진 육체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필이면’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창문을 여니, 우리 학생들이랑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 오늘, ‘하필이면’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하다.
장영희(張英姬) [1952.9.14~2009.5.9]
대한민국의 수필가이자, 번역가, 영문학자.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 중. 2002년 제1회 ‘올해의 문장상’ 수상작.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1975년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5년에 '19세기 미국작가들의 개념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자아여행(Journeys between Real and the Ideal)'이라는 논문으로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5년부터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코리아 타임즈(1987년부터)와 중앙일보(2001년부터)등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였고, 한국호손학회(1995년부터)과 한국마크트웨인학회(2003년부터)등에서도 이사 및 편집이사로 활동하였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였던 영문학자 장왕록의 장녀이다.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차별과 싸워야 했다. 그녀는 어린시절 겪은 비장애인들의 차별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중학교까지는 학교가 가까워서 엄마가 데려다 줬어요. 그때 오빠가 대학생이어서 간혹 저를 데려다주고는 했지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택시를 타야 되는 거리가 되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택시 운전수들이 아주 불친절했거든요. 기본요금 나온다고 구박하고, 골목으로 들어간다고 구박하고, 그래서 토요일같은때에는 택시를 못 잡아서 다섯시간동안 길거리에 서 있어야 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게 제일 힘들었죠.”
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할 때에는 입학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차별탓에 공부할 대학교가 없었다. 아버님인 장왕록 서울대학교 교수가 로마 가톨릭 학교인 서강대학교의 영문과장이던 브루닉 신부를 찾아가 시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했다. 브루닉 신부는 이런 말로 입학시험을 보도록 허락했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장영희 교수가 박사과정을 공부하려고 다른 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하니 교수들이 받아주지 않았다. 그날 바로 영어공부를 해서 그 다음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 유학갔다.
2001년에 유방암 선고를 받고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끝에 회복되었으나, 2004년에 척추에서 암이 발생하여, 2006년에 회복되었으나, 2008년에는 간암까지 발병하여 학교를 휴직하고 치료를 받았으나, 2009년 사망하였다. 이렇게 세 차례 암이 발병하였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투병 와중에도 여러 책을 펴내었다. 신실한 로마 가톨릭 교인인 장영희 교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라고 했다.
'행복의 정원 > 생활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상의 선율, 동양의 스트라디바리 (0) | 2013.07.21 |
---|---|
소중한 사람 - 장영희 교수 (0) | 2013.07.20 |
시어머니의 증발 (0) | 2013.07.19 |
나혜석 둘째 아들 김진 전 서울대 교수가 띄우는 고백 (0) | 2013.07.19 |
원초적 본능, 잠을 깨다 (0) | 2013.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