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등산,여행

8000m급 14좌 완등… 내 꿈 오르니 남의 꿈도 보였다

풍월 사선암 2013. 5. 4. 08:38

[버킷리스트의 멘토를 만나다]산악인서 트레킹 리더로 변신한 한왕용 씨

 

8000m14좌 완등내 꿈 오르니 남의 꿈도 보였다

 

◀캐나다 로키 산맥의 절경을 대표하는 레이크루이스 일대를 트레킹하고 있는 한왕용 씨 일행. 캐나다 로키 산맥은 호수와 숲이 우거지고 빙하가 발달했다. 또한 곰 등 야생 동물이 많다. 한왕용 씨 제공

   

해발 7500m의 산기슭에 있던 그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넘어졌다. 2000m 아래의 베이스캠프가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절벽 밑으로 추락하기 직전, 그는 필사적으로 들고 있던 피켈을 눈 속에 찍었다. 자유낙하하려던 몸이 하강을 멈추며 피켈을 중심으로 빙그르 돌았다. 살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는 정신없이 산비탈을 기어올라 다시 능선 위에 섰다. 숨 가쁘고 아찔한 순간을 뒤돌아보니 죽음이 바로 곁에 와 있었다. 눈 위에서 순간적으로 걸음이 꼬여 넘어진 탓이었다.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밀쳐내며 다시 이어간 길고 긴 눈 위의 행군. 마침내 그는 히말라야의 브로드피크(해발 8047m) 정상에 섰다.

 

오랫동안 품어온 그의 꿈도 현실이 됐다. 산악인 한왕용 씨(47·콜핑 홍보이사)2003715일 브로드피크에 올라 히말라야 8000m14좌 완등자가 됐다. 엄홍길 씨(53)와 고 박영석 씨에 이어 국내에서 3번째, 세계에서 11번째였다.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었을 8000m14좌 완등을 향해 가는 여정은 늘 위험했다. 마지막 도전지인 브로드피크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13번째로 도전했던 가셔브룸2(해발 8035m)에서도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 동료들이 크레바스 속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를 끌어올렸다. 14좌 완등 뒤의 느낌에 대한 즉답이 죽음의 공포와 긴장에서 해방됐다는 것이었다.

 

강렬한 공포와 긴장을 이겨낸 뒤의 더 큰 희열과 성취감이 그의 도전을 멈추게 하지 않은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큰 위험 속에서 진행된 일이었기에 일생일대의 목표를 달성한 뒤에 찾아온 감정, 한 씨의 경우 그것은 일종의 안도감이었던 것이다. 에베레스트(해발 8848m)에서 다른 등반대 대원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일, 고산지대 산소 부족 부작용으로 뇌수술을 받은 일 등 긴박했던 사연들이 그의 등반여정 위에 펼쳐졌다.

 

10년 뒤인 20133. 한 씨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해발 5895m)에 다녀왔다. 일행 5명 중에는 킬리만자로 등정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강수현 씨(66)도 있었다.

 

그 산의 이미지는 역설적이다. 뜨거운 열대의 검은 대륙에 솟아 있는 지상 최대의 휴화산 위에 차가운 흰 눈과 얼음이 쌓여 있다. 휴화산이라는 점이 지닌 이미지는 비록 지금은 잠들어 있어도 언젠가는 강하게 다시 분출할지도 모르는 가슴속 뜨거운 열정을 떠올리게 한다. 무더운 아프리카의 대기에 저항하며 쉽게 녹지 않고 있는 눈은 쉽게 시들거나 굽히지 않는 정신을 연상시킨다. 그 산은 많은 이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수 조용필(63)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비록 얼어 죽는다 하더라도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는 이의 고독을 노래했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일생 동안 꿈꾸었으면서도 도전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한 후회를 그렸다.

 

작중 소설가인 주인공은 하이에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킬리만자로의 산기슭에서 부상으로 죽어가면서 회한에 잠긴다. 언젠가는 꼭 해보리라 마음먹었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시작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안일만을 추구했던 자기 자신을 멸시하면서. ‘차근차근 최고의 준비를 갖춘 뒤 실행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점점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회한을 느꼈던 이가 어디 그 주인공뿐이었을까.

 

현대삼호중공업 대표이사를 지낸 강 씨는 2008년 은퇴 후 5년간 준비한 끝에 킬리만자로 정상에 다녀왔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거주지인 울산 주변의 산들과 영남알프스를 다니며 체력을 길렀다. 영남알프스는 가지산(해발 1241m) 1000m가 넘는 영남 일대 7개의 산군을 일컫는다.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불을 뿜는 분화구 주변에 있던 거대한 빙하들이었다. 이 역설적인 아름다움에 그는 매료됐다.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얼음들은 차가운 산처럼, 혹은 인간의 염원이 깃든 신전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고 했다.

 

60대 중반을 넘어선 강 씨가 정상에 오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 씨는 한왕용 씨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행들을 노련하게 안내했다고 말했다. 한때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나들었던 한 씨는 이제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루어주는 등반안내자가 되어 있다. 그는 2012한왕용의 트레킹 이야기’(www.hanstrekking.com)라는 여행사를 세워 직접 안내 활동을 하고 있다.

 

한 씨는 여행사를 차리기 전 가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다녔다. 2009년에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는 남미의 잉카트레일과 파타고니아를 찾았다.

 

페루의 잉카트레일은 안데스 산맥 사이에 있다. 높은 곳에 있어 공중 도시로도 불리는 잉카제국의 옛 수도 마추픽추 등 유적지를 따라 걷는 코스다. 흔히 지구의 끝으로 불리는 파타고니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다. 높은 산과 사막, 초원지대와 빙하가 섞여 있는 이곳을 본 그는 외계의 다른 혹성에 온 듯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했다. 그곳에서 보았던 하얀 눈 위에 새파란 잉크를 뿌린 듯한 푸른 빙하는 여전히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 밖에 지중해 해안의 절경 사이로 고대도시들을 걷는 터키의 리키안웨이,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캐나다의 로키 산맥, 그림 같은 유럽의 알프스 산간지역 등이 그가 직접 다녀온 트레킹 코스 목록에 추가되었다.

 

◀① 알프스 일대를 트레킹하고 있는 한왕용 씨 일행. 알프스 트레킹은 그림같은 자연 풍광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터키 리키안웨이 트레킹 중 포즈를 취한 한왕용 씨. 히말라야 8000m14좌 마지막 도전지 브로드 피크 정상(해발 8047m·왼쪽 낮아보이는 봉우리)을 향해 가고 있는 한왕용 씨와 셰르파. 해발 7900m 지점이다.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두 시간 정도 더 행군해야 했다. 한 씨는 이 지점에 이르기 전 사진에 보이지 않는 아래쪽 기슭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왕용 씨 제공

 

내년 2월에는 부인 김민자 씨(46)와 두 아들을 데리고 뉴질랜드의 밀퍼드트랙에 다녀올 생각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원시림과 폭포가 빚어내는 절경을 자랑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하루에 90명까지만 트레킹이 허용된다. 그는 우리 가족끼리,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밥도 직접 해먹으며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한 씨는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부인을 만났다. 산을 좋아한 부인은 1998년 한 씨가 안나푸르나(해발 8091m)를 오를 때 해발 5000m 지역의 베이스캠프에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1999년 결혼한 그는 14좌 완등을 마친 2003년까지는 등반 비용을 대느라 집에 돈을 거의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 시기에 대해 그는 한편으로는 위험한 곳에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안정을 위해 결혼했다. 내 생활은 이중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에게 늘 미안했다고 했다.

 

그가 자꾸 위험에 처하자 부인은 더이상 위험한 산에 가지 말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는 14좌 완등 마지막 도전지 브로드피크를 향해 떠나기 전 부인에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지막 시도라고 약속해야 했다. 그랬던 한 씨는 이제 온 가족을 데리고 산에 가려 한다. 한때는 목숨을 걸고 도전할 대상이던 산이 이제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즐거움의 장소가 된 것이다. 도전의 대상으로서는 한없이 거칠고 위험하지만 그 품에 즐거이 안기려 하면 언제든 따뜻하게 품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산이다.

 

14좌 완등을 마친 뒤 한 씨는 그중 13좌를 다시 찾아 청소 등반을 했다. 국내에서도 전국의 산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그는 산에서 많은 것을 받았다. 목숨을 건 강렬한 도전 끝에 성취감을 맛보았으며, 산에서의 경험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청소 등반은 그가 산에서 받은 은혜를 되갚는 일이다.

 

그는 어쩌다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대학(우석대) 산악부에 들었다고 할 만큼 정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산의 은혜를 되갚을 만큼 산을 존중하고, 산악인이기에 앞서 정 많은 인간인 그는 항상 산에서 신중하고 사람을 우선시했기에 수많은 등반 속에서 드물게도 단 한 명의 대원도 희생시키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산악계의 휴머니스트로 불리는 이유다.

 

산속에는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 감추어진 전설의 마을 샹그릴라가 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산에서 자연과 자기 자신을 느끼는 충만함 자체가 낙원일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그곳을 향해 떠나보자고 사람들의 잠들어 있던 가슴이 말할 때 그는 기꺼이 그 산으로 향하는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그 산에 가고 싶다.

 

해발 수천 m 트레킹 나도 즐길 수 있을까

 

북한산 백운대 3, 4일간 오르내릴 수 있는 체력만 있으면 충분

 

킬리만자로(해발 5895m), 몽블랑(해발 4807m) 등을 오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력이 필요할까.

 

한왕용 씨는 그 기준을 북한산(해발 836m)에 빗대어 설명했다. 북한산 백운대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을 3, 4일간 계속할 수 있는 체력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좀더 체력을 보강해 하루 6시간에 걸쳐 표고차 1000m 고지를 오르고 내려오는 일을 며칠간 지속할 수 있는 정도면 킬리만자로와 몽블랑 등에서 아주 즐겁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고산지대에서는 추위 때문에 문을 모두 닫고 자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산소가 부족해져 오히려 고산증세를 더 빨리 느낀다고 했다. 머리는 따뜻하게 하되 문을 조금 열어 놓고 자는 것,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고산증세 예방에 좋다고 한다.

 

일부 산악인은 고산증세에 대비해 비아그라 등을 지니고 간다. 비아그라가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에 고산증세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씨는 임상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어떤 효과가 있는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먹었다가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씨는 고산증세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다만 증세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과 고산증세로 인한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1년 중 13월에는 킬리만자로, 35월에는 터키 리키안웨이, 79월에는 몽블랑을 중심으로 한 알프스 또는 캐나다 로키, 122월에는 파타고니아 트레킹이 좋다고 추천했다. 이는 날씨와 현지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잉카트레일은 68월이 성수기지만 하루에 200명 정도만 입장시키기 때문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잉카트레일과 파타고니아를 동시에 다녀올 생각이 있다면 11월이 적기라고 한다.

 

이러한 곳들을 다녀오는 일정은 보통 1020일 소요되며 수십 km에서 수백 km를 걷는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곳이든 그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이 한 씨의 설명이다. 비용은 1인당 300800만 원 선이다.

 

한 씨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유럽의 몽블랑, 국내는 전북 부안의 내변산이다.

 

기사입력 2013-05-04 03:00:00 / 이원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