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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골든타임] 그 45분간, 할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있었을까

풍월 사선암 2013. 4. 21. 18:39

45분간, 할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있었을까

 

[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 심장을 멈추고 하는 수술

 

무리한 관상동맥우회술 결정

나는 수술을 피하려고 숨었다

연신 호출기가 울려댔다

85살 환자는 마취 상태라 했다

아아, 결국 집도를 하고 말았다

 

수술 도중 대동맥 벽이 터졌다

발생확률 0.1% ‘대동맥 박리

뇌로 가는 피를 멈추게 하고

인조혈관을 이식해야 했다

심장과 폐호흡이 정지됐다

부활 가능한 시간은 45

 

◀우리 몸의 생명의 주관자는 심장과 두뇌다. 현대의학은 심장과 두뇌가 멎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워왔다. 심장과 두뇌를 산 채로 보존하거나 되돌릴 수 있다면 생명의 역사는 다시 쓰일지 모른다. 서울지역의 119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두 가지 궁금증. 권위 있는 웹스터 사전에는 사망의 정의를 심장박동과 호흡 등 활력 징후의 영구적 정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의 목을 졸라 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불과 몇분 만에 뇌가 손상돼 사람이 죽는다. 그런데 한 시간 가까이 심장박동과 호흡이 중지되고 뇌에 산소공급조차 중지되었다가 깨어났다면 그는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 더 궁금한 것. 그동안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었을까?

 

수술 잡힌 날에 교수님이 휴가를 떠난다고?

 

10여년 전,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조교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내 주전공은 관상동맥 우회로 조성술대동맥 수술등 성인 심장 수술 분야였다. 관상동맥은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의 모양이 임금님이 쓰던 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상동맥이 좁아지면 심장에 공급되는 혈액량이 적어져 심장근육에 쥐가 난다. 이 증세는 대개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고통을 환자가 느끼기 때문에 협심증이라는 병명이 붙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어느 순간 관상동맥이 꽉 막혀 심장근육에 피가 전혀 배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심근경색이라고 부르고 심장근육의 세포가 죽게 되는 것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다. 북한의 김정일도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심증을 치료하는 이유는 심근경색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관상동맥이 부분적으로 막혀 피가 잘 흐르지 않을 경우 치료방법이 여러 가지인데, 가장 흔히 하는 게 스텐트 시술이다. , 혈관의 좁아진 부분을 풍선으로 넓힌 뒤 다시 좁아지지 않도록 스텐트(혈관 안에 삽입해 혈관을 벌려주는 원형·금속망 형태의 기구)를 그 자리에 넣는 방법이다. 이것은 가슴을 절개하는 수술을 하지 않고 허벅지나 팔의 동맥 혈관을 통해 하는 편리한 시술이다.

 

관상동맥이 너무 많이 망가진 환자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가운데 일부는 가슴을 열고 관상동맥우회로조성술(관상동맥우회술)이라는 수술을 한다. 도로가 막히면 돌아가는 우회도로를 이용하는 것처럼, 혈액이 혈관이 막힌 부위를 피해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다른 팔이나 다리 혈관을 이용하여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혈관이 좁아진 정도가 가볍거나 심장근육이 이미 많이 손상된 경우에는 약물치료만 하기도 한다. 스텐트 시술과 약물치료는 심장내과 의사가 하고, 관상동맥우회술은 흉부외과 의사의 몫이다. 내가 일하던 대학병원은 흉부외과 교수가 넷 있었는데, 과장님과 내가 관상동맥 수술을 담당했다.

 

협심증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통상 심장내과 의사다. 내과적인 스텐트 삽입술과 가슴을 여는 외과적 수술인 관상동맥우회술 중 어느 게 환자에게 적합할지 심장내과 의사와 심장외과 의사가 함께 모여 의논하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심장 콘퍼런스를 열어 이런 논의를 했다.

 

어느 날, 심각한 심장병을 앓고 있는 만 85살 여자 환자의 사례가 콘퍼런스에 올라왔다. 관상동맥이 여러 곳 많이 좁아져 있고 관상동맥의 전반적인 상태가 워낙 안 좋아 스텐트 삽입술이 부적절한 환자였다. 게다가 두차례 심근경색이 발생한 적이 있어 심장근육이 많이 손상돼 있었다. 환자의 나이가 비교적 적고 심장근육 상태가 괜찮았다면, 가슴을 열고 하는 수술이라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환자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환자의 주치의였던 심장내과 의사가 스텐트 삽입술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콘퍼런스에 올렸지만 수술도 적합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동의하시죠?”라고 물으며 다음 사례로 넘어가던 순간이었다. 흉부외과의 교수님이 갑자기 손을 드시더니 수술을 하겠습니다하고 말씀하셨다. 내 얼굴은 저절로 일그러졌다. 당시 그는 건강과 다른 몇 가지 이유로 수술의 대부분을 내게 맡기던 상황이었다. 본인이 수술을 하겠다 해도 그 환자의 수술은 내 몫이 될 게 틀림없었다. 수술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교수님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무리한 결정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술하는 게 맞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 한번 재고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저는 이 환자 수술 안 합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며칠 뒤, 그 환자는 심장내과에서 흉부외과 환자로 소속이 바뀌었고 곧 수술 일정이 잡혔다. 나는 이 환자만큼은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고 혼자서 결심했다. 이윽고 수술 당일, 여느 때처럼 아침 7시 환자들의 엑스레이를 다 함께 보는 것으로 흉부외과의 아침 회진이 시작됐다. 나는 나보다 연배가 높은 교수님이 이 위험한 환자의 수술을 분명히 내게 맡길 것으로 생각해, 회진 직후 호출기를 끄고 잠적할 작정이었다. 30분에 걸친 엑스레이 보고가 끝나자, 교수는 나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 선생, 나 오늘 휴가를 좀 가야겠어. 내 환자 노 선생이 수술했으면 하네. 보호자 설명은 다 되었으니, 그냥 수술만 하면 되네.”

 

이럴 수가자신의 환자를 수술하는 날에 휴가를 떠난다니. 수술이 부담스러웠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즉시 수술실로 전화해 그 환자 수술을 취소할 테니 마취를 진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이미 마취가 되었다고 답했다.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누르고 아무 말 않고 회진을 떠났다.

 

회진이 끝나자마자 수술실에서 나를 찾지 못하도록 동료 연구실에 숨었다. 업무의 특성상 호출기를 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0여번의 호출을 계속 무시했다. 끝내 안 받을 수는 없었다. 비록 내 환자는 아니었지만, 이미 마취가 된 환자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고민고민 하다 결국 수술실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수술 준비된 지 한참 됐어요.” 나는 과장님을 찾으라고 했다. 간호사는 과장님은 휴가를 떠나셨다고 답했다.

   

순식간에 검붉은 큰뱀처럼 변한 대동맥

 

피하고 싶었던 환자는 결국 내 몫이 되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끝낸 뒤 수술실에 들어갔다. 하필 그날 수술의 제1조수는 그날 처음 전임의(전공의를 마친 뒤 교수가 되기 전 단계의 전문의) 생활을 시작하는 흉부외과 전문의였고, 2조수는 1년차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였다. 1조수를 하게 된 의사는 전문의를 취득하고 3년간 군대를 다녀온 뒤 2년간 개업을 했다가 다시 대학병원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군의관 3년에 개업의 2, 즉 최근 5년 동안 수술실 경험이 없었다. 5년 만에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를 데리고 위험한 환자의 수술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당시 젊은 혈기에 수술 실력에 지나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나는 경험이 부족한 조수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만이고 교만이었다.

 

여느 때처럼 환자의 가슴을 열었다. 요즘은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수술 부위만 고정을 시킨 채 하는 관상동맥우회술, 즉 무심폐관상동맥우회술(OPCAB·Off-Pump Coronary Artery Bypass Grafting)이라는 수술을 많이 하지만, 당시는 이 방식이 부분적으로 도입된 때라서 비교적 위험이 적은 환자들에게 시범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이 환자에게는 심장을 멈춘 뒤 심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심폐기를 사용하면서 해당 혈관에 우회도로를 만든 뒤 다시 심장이 뛰게 하는 일반적인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대동맥에 혈액을 공급할 굵은 관을 삽입해야 했다. 심장 가까이 있는 압력이 높은 대동맥에 관을 삽입하면 관을 꽂은 주위로 혈액이 흘러나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관이 들어갈 부분의 대동맥의 벽에 가는 실로 복주머니 입구 모양을 떠놓은 뒤 이 안에 관을 꽂고, 복주머니 입구를 조이듯 관 주위를 실로 지그시 당겨주면 관 주위로 피가 새지 않는다.

 

할머니의 대동맥 벽은 매우 얇았다. 조심스럽게 대동맥 벽에 복주머니 입구 모양을 만들었다. 이제 내가 관을 꽂고 그 즉시 조수가 실을 조이면 된다. 관을 꽂았다. 조수가 실을 지그시 조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세게 조인다는 느낌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얇디얇은 할머니의 대동맥 벽이, 잡아당기는 실의 압력을 지탱하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대동맥의 벽이 순식간에 찢어지기 시작했다. ‘대동맥 박리라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대동맥 박리란 세 겹의 층으로 이뤄진 대동맥의 벽 중 안쪽 층이 파열되어 대동맥의 벽이 세로로 쭈욱 찢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파열된 곳으로 높은 압력의 혈액이 빠져나가면서 쭈욱 찢어지는 것이다. 대동맥 박리는 고혈압 등으로 자연 발생할 수도 있고 드물게는 외상에 의해서 발생할 수도 있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 대동맥 박리가 수술 중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심장 수술 중 대동맥 박리가 발생할 확률에 대한 국내 연구자료는 없다. 외국의 연구로는 발생 확률이 약 0.1%로 보통 1000번의 수술 중 1번꼴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연구를 보면, 고령, 동맥경화, 얇은 대동맥벽 등이 있을 때 잘 생긴다고 하는데, 모든 조건을 갖춘 85살 할머니에게 바로 그 일이 발생한 셈이다. 대동맥은 순식간에 검붉은 큰 뱀 모양으로 변했다.

 

나는 곧 서혜부(허벅지)의 동맥을 열어 상태를 확인했다. 대동맥 박리는 허벅지까지 이미 진행된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동맥 박리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장 근처의 대동맥을 모두 인조혈관으로 바꾸고 머리로 가는 혈관을 이식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3분만 혈액 공급 차단돼도 뇌세포는 죽는데

 

휴가를 간다고 했지만 교수님은 걱정이 되었는지 수술실에 들어와 계셨다. 그는 손을 소독한 뒤 조수 자리로 들어왔다.

 

예정됐던 관상동맥우회술 외에도 대동맥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우선 대동맥 혈관을 바꿔주는 대동맥혈관치환술을 해야 했다. 허벅지의 동맥과 정맥을 이용하여 인공심폐기를 돌렸다. 신속히 환자의 체온을 섭씨 37도에서 18도로 낮췄다. 심장 근처에서 찢어진 상행대동맥(머리 쪽으로 올라가는 대동맥)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머리, 즉 뇌로 가는 혈류를 잠시 중단시켜야 한다. 관상동맥우회술을 하려면 생명의 주관자인 심장을 잠시 멎도록 해야 하는데, 더 나아가 대동맥혈관치환술을 위해서 또하나의 생명의 주관자인 뇌로 공급되는 혈액까지 막아야 했던 것이다.

 

뇌는 3분만 혈액 공급이 차단돼도 뇌세포가 죽는다. 뇌세포의 죽음을 잠시 지연시킬 방법은 있다. 체온이 18도 이하로 내려간 상태에서는 뇌세포가 약 45분 정도 혈액 공급을 받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체온을 18도 아래로 내린 뒤 혈류가 없는 상태에서 45분 안에 혈관 교체를 완료하고 다시 체온을 올리는 방법으로 수술을 할 수 있다.(초저체온하 순환정지요법이라고 하며, 요즘은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여 체온을 많이 내리지 않는 방법도 많이 사용되지만, 14년 전인 당시는 대부분 그런 방법을 사용했다.)

 

체온이 내려가자 나는 인공심폐기를 중단시켰다. 이제 심장도 정지되었고 폐호흡도 정지됐다. 펌프가 없어졌으니, 피의 흐름이 멈춘 전신순환정지상태다. 물론 뇌로 가는 혈류도 없다. 환자는 사망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부터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45분 안에 끝내야 했다. 실수도 주저함도 용인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찢어진 대동맥을 잘라 떼어내고 인조혈관으로 대체했다. 뇌로 가는 혈관들을 인조혈관에 이식했다. 이른바 대동맥을 인조혈관으로 바꾸는 대동맥치환술이 척척 진행됐다. 그사이 교수는 관상동맥우회술에 사용할 정맥혈관을 다리에서 떼어냈다.

 

40분이 좀 넘었을까? 대동맥을 인조혈관으로 바꾸는 대동맥치환술이 끝났다. 꺼두었던 인공심폐기를 다시 돌리면서 체온을 서서히 올렸다. 사망 상태와 다름없던 환자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이후 다리에서 떼어낸 정맥혈관으로 인조혈관과 관상동맥의 막힌 부위 너머를 연결시켰다. 관상동맥우회술도 완료됐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심장근육 회복이 관건이었다. 인공심폐기를 돌리면서 조금 더 심장근육의 회복을 기다렸다.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지만 끝내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했다. 몇 시간 뒤 환자는 심장보조장치를 달고 중환자실로 나가게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며칠 뒤 할머니의 심장기능은 크게 회복됐다. 결국 인공호흡기와 심장보조장치도 제거했다. 그러나 고령으로 인해 뒤늦게 폐 기능에 문제가 생긴 할머니는 다시 인공호흡기 신세를 지다가 두 달이 넘어서야 일반 병실로 올라갔고 그로부터 한두 달 뒤 퇴원하셨다.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은 환자들이 보통 수술 뒤 하루이틀 만에 병실로 올라가고 일주일 안팎에 퇴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할머니와 가족은 너무 많은 고생을 하며 수술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뼈아픈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고 돌아와 주신 할머니가 지금도 고맙다.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초저체온하에서 수술을 할 때 환자는 심장과 폐 그리고 뇌 기능이 함께 멈춰 있는 상태로 사망한 상태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사망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되는 45분 동안 할머니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