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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골든타임] 내장 나온 환자 뱃속에 ‘의사 손가락’ 넣고…

풍월 사선암 2013. 4. 21. 18:24

내장 나온 환자 뱃속에 의사 손가락넣고

 

손가락으로 환자 심장을 막고 뛰어라

[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 어느 외과의사의 용기

 

우당탕탕! 다른 병원 의사들이

수술대를 밀고 들이닥쳤다

환자는 내장이 튀어나온 상황

그런데 환자 옆 의사의 손이

환자 뱃속에 있는 거였다

 

배 찌른 칼은 횡격막을 찢고

심장을 건드리고 말았다

수술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일반외과 의사는 심장을 몰랐고

그곳엔 흉부외과가 없었다

고민 끝에 그는 결단하는데

 

1989년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때 나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에서 레지던트 2년차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은 지금의 최신식 건물이 아니었다. 응급실은 1층 외래건물 옆에 소박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한 뒤에 응급실 스테이션(의사·간호사가 처방을 하고 진료를 기록하는 등 행정을 보는 곳) 앞에 서서 방금 진료한 환자의 차트에 진료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우당탕탕 소리가 내며 갑자기 응급실 문이 활짝 열렸다. ‘뭔가 긴급한 환자가 들어왔나 보다하며 고개를 돌린 나는 매우 특이한 풍경을 보게 됐다.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 6명이 환자를 실은 침대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들은 우리 병원 소속이 아니었다. 다른 병원 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병원의 의료진이 수술복을 입은 채 응급실에 들어오는 걸 처음 본지라 나는 깜짝 놀라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1989년 어느 일요일, 응급실의 낯선 풍경

 

낯선 의사들의 출현에 응급실은 웅성거렸다. 자세히 봤다. 환자 한 명에 의사 여섯 명이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침대를 앞과 뒤에서 끌고 있었고, 두 사람은 손에 수액주사를 들고 쫓아가고 있었고, 한 사람은 인공호흡기를 환자 입에 대고 있었다. 나머지 의사 한 사람은 무엇을 하는 것인지 환자 옆에 딱 붙어 있었다.

 

소독포를 가슴에 덮은 환자의 모습이 흘깃 보였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끔찍한 상태였다. 복부의 내장이 대부분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소독포는 밖으로 나온 장을 미처 다 덮지 못하고 있었다. 수액을 든 의사는 밖으로 튀어나온 장을 싸고 있는 소독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 옆에 붙어 있던 의사의 손이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 수술 중에 사고가 터졌나 보구나. 일반외과 의사들 고생 좀 하겠군.’

 

나는 다시 뒤돌아서서 쓰다 만 차트를 마저 쓰기 시작했다. 복부 수술은 흉부외과와 상관없는 일반외과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응급실에 들이닥친 수술팀 중 한 사람이 내 뒤를 지나가며 여기 흉부외과 의사 누구 없어요?” 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장이 밖으로 나왔는데 흉부외과라니?

 

제가 흉부외과 레지던트인데요.”

 

놀란 내가 뒤돌아서며 답했다. 그가 반색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잘됐습니다. 이 환자 좀 빨리 봐주십시오. 아무래도 심장을 칼에 찔린 것 같습니다.”

 

심장?

 

환자는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남동생과 말다툼을 하던 중 큰 싸움으로 번졌다고 했다. 남동생은 칼을 휘둘렀고 형은 복부에 칼을 맞았다. 그리고 이내 인근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것이었다. 환자는 출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1분이라도 빨리 출혈을 막아야 했다.

 

복부가 깊게 찔린 것을 확인한 그 병원의 일반외과 의사는 바로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배를 열어보니 출혈은 뱃속의 장기가 아닌 횡격막(가로막)으로부터 나오고 있더라는 것이다. 횡격막이란 배와 가슴 사이를 횡으로 나누는 근육성의 막을 말한다. 사람이 서 있을 때를 보자면, 심장과 양쪽 폐가 횡격막 위에 얹혀 있는 셈인데, 횡격막에 경련이 발생할 경우 딸꾹질이 난다. 횡격막은 두께가 2가 채 되지 않는 얇은 근육으로 되어 있는데, 환자의 경우 아래에서 침입한 칼에 의해 이 횡격막이 살짝 찢어져 있었고, 찢어진 부위에서 피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진행한 외과의사는 횡격막을 통해 피가 나오고 있었으므로, 일단 오른쪽 검지를 밀어넣어 출혈을 막았다. 쑥 들어간 의사의 손에서 뛰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그는 곧 피가 칼에 찔린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맨 처음 칼은 복부를 찔렀지만 칼끝이 위를 향하는 바람에 칼이 횡격막을 찢고 심장의 우심실을 건드린 것이 확실해 보였다. 심장에서 나오는 피가 구멍 뚫린 횡격막을 통해 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는 고민에 빠졌다. 일단 출혈은 손가락으로 막았는데, 문제는 손가락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복부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일반외과 의사였다. 흉곽 수술은 해본 경험이 없었다. 아마 의과대학 학생 때 구경한 것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만일 심장의 출혈을 그대로 두고 횡격막만 꿰매면 어떻게 될까? 복강으로의 출혈은 더이상 없겠지만, 피가 심장 주위에 고여 환자는 곧 사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가슴을 열고 심장의 출혈부위를 찾아 꿰매야 한다. 하지만 그 종합병원에는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다. 흉부외과 전문의를 둘 정도로 큰 규모의 병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진을 솔직히 인정한 그가 존경스럽다

 

손가락을 횡격막 속으로 집어넣은 그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손가락으로 심장 출혈을 막은 채,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흉부외과 의사를 부를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병원 의사를 응급상황에서 부르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다른 병원의 응급 호출에 의사를 찾아 즉각 보내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환자를 수술중인 상황 그대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기기로 그는 결정을 내렸다. 기약할 수 없는 희망에 운명을 맡기다가는 자칫 환자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호자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는 수술팀이 수술하던 상태 그대로 내가 일하던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환자를 데려온 것이었다. 피가 흘러나오는 심장을 손가락으로 막은 채.

 

나중에 그에게 왜 미리 연락하고 환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오지 말라고 할까봐서라고 대답했다. 어쨌든 그는 환자의 배에 손가락을 넣은 채 우리 병원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이 시작되자 그 외과의사의 오른쪽 검지는 우리 쪽 의료진의 손가락으로 대체됐다. 전임의가 손가락을 대신 넣어 우심실을 막고 있는 동안 4년차 전공의가 가슴을 전기톱으로 열었다. 가슴이 열리자 심장이 드러났다. 예상대로 칼은 우심실을 찔렀고 전임의의 손가락도 정확히 그곳을 막고 있었다.

 

사실 심장 봉합은 흉부외과 전문의에게는 비교적 간단한 일에 속한다. 고도의 전문적인 수술로 다양한 심장질환을 치료하는 흉부외과 의사에게 심장을 꿰매는일은 단순한 수술이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 이뤄진 다음 처치는 간단했다.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전임의는 손가락으로 출혈 부위를 계속 막았다. 동시에 다른 의사가 테플론 패치(실의 압력으로 인해 조직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덧대는 패치)를 심장에 댄 다음 나일론 실로 출혈 부위 둘레를 꿰매어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손가락을 빼면서 마치 복주머니 끈을 조이듯 출혈 부위의 매듭을 지었다. 출혈은 깔끔하게 멎었다. 다행히 그 환자는 감염증도 생기지 않고 잘 나아 입원 뒤 약 열흘 만에 합병증 없이 퇴원했다.

 

그 사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되었다. 흉부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그 환자를 처음 진료한 일반외과 의사의 용기와 빠른 판단이 환자를 살렸다며 처음 집도했던 일반외과 의사의 용기가 한동안 회자됐다.

 

생각해 보라. 처음 배를 열었을 때 예상과 달리 횡격막을 통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고 그 외과의사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 의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한 손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으면서 그는 어떻게 할지 판단을 했다. 수술 외적인 부분도 포함해서 말이다. 휴일에 다른 대학병원에 연락해 의사에게 와달라고 하면 과연 달려와줄 것인가? 반대로 지금 환자를 보낼 테니 받아달라고 하는 방식은 어떨까? 둘 모두 어렵다는 판단을 한 그는 이런 절차 대신 그냥 밀고 들어가는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의 행동 중 가장 빛이 나는 부분은, 오직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오진을 인정하고 보호자들에게 솔직하게 말한 뒤 환자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밀고 들어온 용기였다. 지혜롭게 대처한 그가 생각할수록 존경스럽다. 만일 그가 오진을 인정하기 싫어 섣불리 횡격막만 꿰매고 배를 닫았다면 환자는 사망했을 것이고 아마도 가족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보호자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더라도 의학 상식이 없는 보호자가 진실을 알 길이 없다. 그의 용기 있는 선택 덕분에 환자도 살리고 환자의 동생도 살인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환자뿐 아니라 그의 동생까지 두 명을 살린 것이다.

 

댐의 구멍 막았다는 네덜란드 소년처럼

 

우리는 손가락으로 물이 새는 댐의 구멍을 막아 붕괴를 막아냈다는 네덜란드의 소년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한스 브링커라는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데 댐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다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그 둑에서 물이 새어 무너지기라기도 하면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될 참이었다. 소년은 가방을 팽개치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았다. 처음엔 그저 작은 구멍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커져 소년은 그것을 팔뚝으로 막았고, 점점 커져가는 구멍과 물의 압력 때문에 더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소년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네덜란드 스파른담에 동상이 서 있고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나와 실화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1865년 메리 메이프스 도지가 지은 <한스 브링커 혹은 은빛 스케이트>의 동화다.

 

네덜란드의 소년은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경험한 외과의사 이야기는 실화다. 나는 지금도 이 외과의사의 결연한 눈빛을 기억한다. 물론 의사가 환자 앞에서 진실한 용기를 내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의료 현실이다. 의사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사라지고 의사에 대한 비난이 박수를 받는 세상이 됐다. 가장 큰 책임은 신뢰를 잃은 의사에게 있다. 더불어 훌륭한 의사를 만들고 키우는 사회의 제도도 우리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만일 동생의 칼에 찔린 환자가 이 용감한 의사를 만나지 않고 비겁한 의사를 만났다면 형제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명의 위기에 처한 환자의 운명이, 어떤 의사를 만나는가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의료의 특수성이고, 모든 의사들이 훌륭해야 하는 이유이며, 모든 의사들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