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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교역 이상정(78) 회장 '이동 화장실'

풍월 사선암 2013. 4. 4. 10:18

정몽준이 직접 만져보며 감탄한 '이동 화장실'

 

냄새나는 변소가 어떻게 바뀌었나난 대한민국 품위 지킨 개척자였네

대통령 취임식장에 4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도 화장실은 100개만 남자 2, 여자는 5분 평균 사용

 

“86 아시안게임 때 재일교포들이 이동 화장실 250대 기증해줘 이병철 회장 장례식에도 설치

 

한 노신사가 '나의 인생시(人生詩), 화장실 문화'라는 최근 출간된 책을 들고서 자신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찾아왔다.

 

"화장실 문화에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 이 일을 내 소명으로 알고 해왔어요. 캄캄하고 고독한 길이었어요. 나이가 들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심한지 모르지만, 제대로 조명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는 이동 화장실을 제조판매임대하는 무림교역의 이상정(78) 회장이다.설령 생업이 그렇다 해도, 세상에는 멋있고 영예로운 것들이 많은데 이를 자신의 '인생시()'로 표현할 것까지야. 화장실은 뒷전에 감춰둘 만하지 않은가.

 

"저는 긍지를 갖고 있어요. 대한민국의 품위를 지키는 개척자로 살아왔으니까요. 냄새 나는 '측간' '변소'가 어떻게 해서 화장실로 바뀌게 됐는지 다들 잘 몰라요. 그냥 좋아졌다는 것만 알지. 나 이상정이가 혼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온 사실을 몰라요."

  

◀이상정 회장은 사람은 먹어야 살고 먹으면 배설해야 하니 화장실은 생활필수품이라고 말했다.

 

회장님은 매스컴에도 소개돼 알 만한 사람은 알 텐데, 무엇을 더 조명받고 싶은 건가요?

 

"하수구나 담벼락, 전신주에 무단 방뇨를 했던 시절이었잖아요. 길거리에서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숭어뜀을 해도 공용 화장실을 못 찾았죠. 건물 화장실에는 굵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지요. 정부도 화장실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 불모지에서 제가 시작한 것은 화장실 문화에 대한 신념과 애국심이었지, 결코 사업적으로만 보지 말라는 겁니다."

 

애국심이든 사업적 동기이든 간에, 그가 뛰어들면서 공용 화장실 풍경이 바뀐 것은 맞는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야생' 상태였다. 대규모 행사장에서는 참석 인파들이 알아서 해결했거나, 한 제약회사가 원료 수거를 겸해 놓아둔 하얀 플라스틱 소변통을 이용했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 그 양 편에 발 받침대로 판자 두 개를 걸쳐놓은 것은 대변용이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겁니까?

 

"제가 공무원을 하다가 퇴직한 뒤였어요. 1984년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의도 부활절 예배'를 집전하고 있었어요. 여의도에는 100만명의 신도가 운집했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저 많은 인파가 화장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 여의도를 관할하는 서울 영등포구청에 근무한 적이 있었거든요. 정치종교 집회가 열리면 여의도는 '오물 집회판'이 됐으니까요."

 

부활절 여의도 예배를 보고 어떤 이들은 경건함과 신심을 느꼈을 텐데, 회장님께서는 화장실 사업을 착안한 것이군요.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으니까요. 아무도 화장실 문제를 얘기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 뒤로 남한산성과 관악산·설악산의 간이 화장실도 둘러봤어요. 배설물이 뒤범벅돼 이용하려면 코를 막고 발뒤꿈치를 들어야 했지요. 사업도 사업이지만, 문화 운동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

 

그는 주한 외국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간이 화장실 팸플릿을 부탁했다. 대사관이 화장실 정보(情報)까지 취급할 리 없다. "본국에 조회를 해봐야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러던 중 미국을 여행한 지인이 한 이동 화장실 업체의 제품 카탈로그를 구해줬다.

 

"그 회사는 세계 60개국에 화장실을 수출하고 있었어요. 강화플라스틱(FP) 소재의 간이 화장실 샘플 하나를 구했어요. 경비원에게 양해를 얻어 아파트 지하실에서 조립한 뒤 매일 두세 시간씩 변기에 앉아 고민했어요. 그때는 남이 한 번 앉았던 양변기 위에는 안 앉으려고 했으니까요. 쭈그려 앉아 볼일 보는 방식으로 개조해야 했지요. 그 뒤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화장실 50대를 들여왔어요."

 

그는 "애국심" "개척자" "캄캄한 시절" "기구한 인생" 등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했고, 한숨도 많이 쉬었다.

 

"대규모 국제행사가 눈앞인데 관청에서는 공용 화장실 인식이 전혀 없었어요. 공무원들을 상대하면 숨이 막혔어요. '왜 행사장에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해야 하느냐'고 하니. 제가 대신 결재 서류를 작성해준 적 도 있었어요."

 

1985년 태릉 육사 교정에서 열린 세계양궁대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동 화장실 20대를 설치할 수 있었다.

 

"환기가 잘 되고 깨끗한 이동 화장실을 처음 보고는 모두들 놀라워했죠. , 원더풀이었죠. 제가 화장실 청소까지 맡아서 했어요. 요즘 같으면 상상도 안 되겠지만, 당시 정몽준 양궁대회장이 직접 화장실을 만져보면서 '어떻게 이런 게 다 있나'며 감탄했어요."

 

이듬해 '86 아시아게임'에는 재일교포들이 화장실 250대를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그의 회사는 300대를 납품할 수 있었다.

 

"화장실 평균 10대당 청소부 한 명이 필요합니다. 대회 중간에 추석이 끼어있어 '절대 결근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어요. 하지만 추석 전후로 청소 아줌마 절반이 안 나왔어요. 아내와 처제, 처제 친구까지 동원해 화장실 청소를 했지요. 그 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장(1987)에도 우리 이동화장실이 설치됐어요. 재벌 회사에서 그렇게 하면서 소문이 났어요. "

 

그는 이동 화장실 세계의 왕자(王者)가 됐다. 88서울올림픽 때에는 1500대를 독점 납품했다. 그 무렵 한강시민공원에도 1000여대의 조립식 화장실이 설치됐다. 1만명 이상 참가한 세계 잼버리대회(1991), 관람객 연인원이 1400만명이었던 대전엑스포(1993)에도 그의 이동 화장실이 보급됐다. 국립공원을 비롯해 유원지와 주차장, 예비군 훈련장 등으로도 확산해 갔다.

 

"초창기에는 아줌마들이 화장실 휴지를 가방에 넣어가곤 했어요. 생리대를 변기 속으로 던져, 분뇨 수거 과정에서 호스가 막혀 일일이 그걸 제거하느라 애먹었지요. 그때 제가 '화장실 문화'라는 말을 쓰면 다들 웃었어요. 화장실 인식을 바꾸기 위해, 언론사와 정부에 많은 관련 자료를 공급했어요. 나밖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요. 사람은 먹어야 살고, 먹으면 배설해야 하니 화장실은 생활필수품입니다. 화장실의 품위가 우리 사회의 품위가 되는 거죠. 식사 자리에서도 그런 열변을 토하면 '밥 먹는데 그만하시죠'하는 반응이 나왔어요."

   

식사 자리에 화장실 얘기를 해 박수받을 수는 없지요.

 

"물론 그렇지만, 이를 감추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죠. 기자들이 취재해간 뒤 '9시 메인뉴스에 방송하기에는 맞지 않는다며 데스크가 잘랐다''아침 식탁에서 독자들이 신문을 읽는데 화장실 기사를 게재하긴 어렵다'고 전해왔어요. 내 목만 아팠지. 많이 실망했어요."

 

어쨌든 이동 화장실 사업을 독점했으니 수입은 좋았겠습니다.

 

"그때 독점한 것은 맞지만 수익이 높진 않았어요. 화장실 한 대를 하루 빌려주면 6만원을 받았어요. 운반·청소·처리 비용까지 포함된 거죠. 요즘에는 남자용 대변기 2, 소변기 4, 여성용 5, 세면대 한 개로 구성된 '트레일러형 화장실'도 설치해요. 첫날은 100만원, 그 다음 날부터는 하루 20만원 받아요. 대통령 취임식의 경우 경호 문제로 통상 닷새 전에 설치하는데 임대 비용은 하루 사용치만 줘요."

 

그러고 보니 '새 시대가 열린다'는 대통령 취임식장에도 이동 화장실은 필요하군요.

 

"노태우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까지 우리가 쭉 독점 납품했지요. 취임식장에는 평균 4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지만, 화장실 주문은 100대를 넘지 않았어요. 내 기억으로 어느 대통령 취임식에도 그 숫자는 마찬가지였어요."

 

취임식장에 이동 화장실 100대로는 부족한가요?

 

"남자 한 명당 화장실 평균 사용 시간은 2분이고, 여자는 5분쯤 되죠. 선진국에서는 행사장 인원 10명당 화장실 1대를 기준으로 설치해요.우리는 행사 예산을 절약한다고 화장실 예산부터 깎아요. 화장실 숫자가 적으니 그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관리가 안 돼 주변에 분뇨가 흘러요. 공무원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안 통합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도 독점 공급합니까?

 

"독점은 아니고, 우리 책임하에 합니다. 소변기 89개와 대변기 203개가 설치돼요. 과거보다 장족의 발전을 했어요."

 

이동 화장실의 시장 규모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전국 10개 지역에서 시합이 분산 개최되면서, 화장실 업체들 간에도 경쟁이 불붙었어요. 이윤이 남을 턱이 없죠. 요즘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의 화장실 업체에 맡겨요. 작년 여수엑스포에서는 전남 업체만 참가했어요. 게다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4대강'에 건설 예산이 다 들어가 동네 공원에 화장실을 짓는 사업이 올스톱됐어요. 이래저래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어요."

 

업체 간 경쟁으로 이동 화장실의 기술적 진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변기 한 개인 이동 화장실에서 출발해, 분뇨 찌꺼기를 줄이는 자연 발효형, 방열 방한이 되는 박스형, 캡슐형, 트레일러형, 펜션형, 전산시스템으로 물과 휴지가 떨어졌는지를 체크하는 최첨단형까지 나왔다.

 

과거 공용 화장실의 상징물은 요석(尿石)이 낀 누런 변기에 매달려 있는 나프탈렌이었지요.

 

"냄새와 벌레를 없애려고 그랬지요. 선진국에서는 나프탈렌은 독성물질로 분류돼 있어요. 우리 이동 화장실이 보급된 뒤로 소취제를 쓰고 있어요."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닌데, 이제는 화장실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뽑히는 시절이 됐습니다.

 

"1998년부터 한국관광공사에서 전국 화장실을 대상으로 '베스트 5와 워스트 5'를 선정했지요. 디자인이 뛰어나 이게 화장실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될 정도가 됐어요."

 

개인적으로 꼽는 국내에서 가장 멋진 화장실은?

 

"한때 수원시가 평당 1200만원 가까이 들여 공용 화장실을 지었어요. 호화 논란을 놓고 수원시장과 토론한 적이 있어요. 그분은 사치스럽게 꾸며놓아야 사용자 인식이 바뀐다는 논리였어요. 하지만 꽃향기가 나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속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표시가 되는 첨단시스템까지 갖춘 화장실을 보면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면 어떤 화장실이 최상입니까?

 

"화장실은 깨끗하고 위생적이면 되죠. 무엇이 더 필요하죠?"

 

<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 : 2013.02.25 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