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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 치유하자] "선배 세대와 달리, 저희는 꿈 꾸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풍월 사선암 2013. 1. 8. 17:34

 

[2013 신년특집] "선배 세대와 달리, 저희는 꿈 꾸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박종찬·고려대 제45대 총학생회장

 

[세대 갈등 치유하자] 20305060에게 보내는 편지

 

선배들은 가난했지만 나아질 거란 꿈이 있었죠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 아르바이트 전전하는 우린

연애·결혼·출산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씁쓸한 별명만

SNS에서만 활발했던 우리선배들 투표율 보고 깜짝 놀라

대선, 특정세대 승패가 아니라 서로간 소통의 계기 됐으면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생 박종찬이라고 합니다.

 

'5060세대에 보내는 편지'라고 하니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같은 기분이 듭니다. 혹한에 감기 걸리지는 않으셨는지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저희 2030세대는 겨울보다 더 냉혹하고 감기보다 더 걱정되는 일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한창 취업 시즌이었거든요. 제 주변에는 취업이 잘돼 기뻐하는 이들도 있지만 불합격 통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5060세대 선배들은 잘 모르실 것 같아요. 선배들이 제 나이 때에는 대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어려움 없이 취직하고, 집을 얻었던 5060세대 선배들을 다소 과격한 친구들은 "전쟁 세대의 노력으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한 세대"라고 일갈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대학 졸업장은 모두가 갖고 있어서 스펙 축에도 못 끼고, 취직에 성공해도 집은커녕 방도 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요. 오죽하면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씁쓸한 별명까지 얻었겠어요.

 

이런 우리가 선배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우리가 가끔 "힘들다"고 하소연을 할 때 선배들은 "우리 때는 훨씬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알아요. 선배들이 어려운 시기를 견뎠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걸요. 하지만 선배들은 가난하게는 살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꿈이 있었잖아요. 지금 우리에겐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성장사회'가 아니라 혹시 '정체사회', '도태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려대학교 제45대 총학생회장 박종찬씨. 박씨는 본지에 보낸 ‘5060세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각 세대가 서로 생각을 열고 소통하는 시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지호 객원기자

 

그토록 바라던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경제성장도 이룩했는데도 고통을 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비싼 등록금으로 빚더미에 앉은 친구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 인생으로 전락한 친구들, 먹고살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친구들. 오늘날 2030세대가 안고 사는 비애는 선배들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아닐까요?

 

요새 대학은 선배들이 대학생이던 시절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성의 요람이자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그저 취업만을 준비하는 학원이 되었어요. 학점 관리와 스펙 쌓기에 열중하느라 선후배·동기 간 유대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동아리·학생회를 하려는 이들도 별로 없어요.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경쟁만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팍팍한 대학 생활을 거치고도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이런 와중에 이번 대통령 선거는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세대별 투표율'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기사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5060세대의 투표율이 2030세대의 투표율보다 훨씬 높았고, 이게 결정적이었다는 내용이었죠. 사실 우리 2030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선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아주 컸어요.

 

하지만 웬걸요. 투표함을 열어보니 우리 세대의 투표율은 전체 평균보다도 낮더군요. 선배들의 투표율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선거를 통해 표출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선배들에게 한 수 배웠지요. SNS에서만 활발한 우리들의 정치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정부에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라는 요구가 큽니다. 하지만 정부의 힘만으로 문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2030세대와 5060세대의 간극(間隙)은 각 세대가 겪었거나 겪는 삶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를 단순히 특정 세대의 승리 혹은 패배로 규정짓기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배경을 서로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삼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에는 세대가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각 세대가 서로 생각을 활짝 열어놓고 소통하는 시대를 만들어 가길 소망합니다.

 

 

[2013 신년특집] "절망만 하기엔 짧은 청춘앞세대 아닌 세계와 상대하라"

 

[50602030에게 보내는 편지]

 

어릴 땐 IMF 실직 부모 보고 자라나선 청년실업의 늪그대들의 삶, 왜 고통이 없겠나

태안반도에 기름 떠다닐 때 무작정 달려가던 모습을 봤다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그대들 그 어느 세대보다 아름다웠다

그대들 절반은 이 땅이 아닌 지구촌을 무대로 뛰게 될 거다

힘내라! 그대들 뒤엔 우리가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030세대에게 앞선 세대를 넘어서 세계로 나아가라. 나는 여러분이 열어젖힐 세상이 그동안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나으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반갑습니다. 어느덧 가벼운 일상의 대화마저 버거워진 우리가 이렇게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에 대해 나름 적지 않은 고민과 투쟁을 해온 사람입니다. 자연환경에 대한 개발과 보전 간의 갈등,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남녀 갈등,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불러온 세대 갈등. 그런데 겪어보니 남녀 갈등과 환경 갈등은 언젠가는 어떻게든 합의를 볼 수밖에 없지만, 세대 갈등은 자칫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거나 점점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2030세대와 5060세대 간의 격세는 그냥 덮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불씨입니다.

 

5060세대와 그 이전 세대들은 여러분의 빈곤한 역사관을 심히 우려합니다.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도 변변찮은 나라가 불과 반여 세기 전에는 전쟁으로 완벽하게 쑥대밭이 되었다가 지금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이 엄연한 현실에 지나치게 관대한 여러분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여러분의 삶이라고 왜 고통이 없겠습니까? IMF 사태로 실직한 부모를 보며 자랐는데 아연 청년실업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우리 세대의 죄가 큽니다.

 

그래서 저는 이쯤에서 5060세대에게 한 말씀 드리렵니다. 이전 세대는 왜 늘 다음 세대를 못마땅해할까요?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못한 게 사실이라면 지금쯤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2030세대를 '공감의 세대'라고 부릅니다. 우리 5060도 봉사활동 합니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 때 우리도 자원봉사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저것 따져보고 덤빕니다. 2030세대는 그냥 달려갑디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앞뒤 재지 않고 그냥 참여합니다. 내일 당장 시험인데,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하건만. 도대체 생각이 있는 녀석들인지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멈춥시다. 그동안 성현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이라는 데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눈을 들어 2030 친구들을 둘러보십시오. 무작정 남을 도우러 뛰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나요?

   

우리와 우리 부모 세대는 일단 눈앞에 놓인 모든 걸 거머쥐며 살았습니다. 보릿고개를 겪었거나 그 그늘 아래 살아온 우리는 어쩌면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2030세대가 세상의 주인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일단 거머쥔 다음 너무 많이 쥐었다 싶으면 슬며시 조금 내놓는 게 우리 삶의 방식으로 남아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세상이 지금 2030 친구들의 손끝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흥분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인생 100세 시대'를 살 2030세대는 평생 직업을 적어도 대여섯 차례씩 바꾸며 산답니다. 저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종종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희 중 아마 절반가량은 이 땅에 살지 않을 거라고. 일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촌 어디라도 달려갈 거라고. 그 어느 세대보다 한층 세련된 국제 감각을 갖췄고 이 세상 누구와도 공감할 줄 아는 여러분입니다. 스펙을 쌓으려거든 세계를 상대로 쌓으십시오. 조금 늦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아름다운 방황을 하십시오. 방황은 젊음의 특권이니까요.

 

감히 2030 친구들에게 고합니다. 새 세상을 열 사람들이 이전 세대를 배종(陪從)하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열어젖힐 세상이 그동안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아름다우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5060 동료들의 손을 붙들어 여러분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우리가 내미는 손을 반갑게 잡아줘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세대 갈등은 서로 간의 각별한 노력 없이는 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걷고 멀리 가려면 함께 걸으라 했습니다.

 

조선일보 : 2013.01.0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