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시진핑시대 서방 모델 버리고 ‘중국의 길’ 간다

풍월 사선암 2012. 12. 23. 13:58

서방 모델 버리고 중국의 길간다

 

시진핑시대 10년 담은 3만자 보고문

 

  지난 11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서 신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내외신 기자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왼쪽부터 장가오리(7), 류윈산(5), 장더장(3), 시진핑(1), 리커창(2), 위정성(4), 왕치산(6). 괄호안은 당 서열.

 

누군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가까운 장래에 지구상에 미국보다 부강한 나라가 등장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본주의 민주국가가 아니라 사회주의 독재국가 중에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내에 이런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구상에 이 질문에 예스(yes)’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134000만명이나 있고, 그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 중이며,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인이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의 힘을 갖춘 국가로 도약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빈부 격차와 도농 격차, 부정부패, 정치적 독재, 언론 탄압, 소수민족 차별 등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또 과학기술력, 국방력, 교육의 질, 창의적 연구 풍토 등의 측면에서도 아직 미국의 상대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이 구 소련이나 독일, 일본처럼 미국을 따라가다가 제 풀에 지쳐 주저앉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국가가 일등 국가를 제치고 패권을 차지했던 과정은 그렇게 신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았다. 패권은 오히려 야만적이고 거칠게 느닷없이 다가왔으며,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2~13세기 몽골의 칭기즈칸은 말과 활, 말린 양고기만으로 문명국 중국과 유럽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은 아시아 진출 과정에서 필리핀 주민을 잔인하게 학살했으며, 20세기 중반 자신에게 도전하는 일본에 인류가 개발한 가장 잔인한 대량살상무기인 원자폭탄을 사용했다.

 

2020년 중국의 모습은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14월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 정찰기가 중국 영공을 넘나들며 군기지를 촬영한 명백한 주권 침해 행위를 했지만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중국 최고지도부는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베이징올림픽 유치를 위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굴욕을 참아야 했다. 그해 말 WTO에 가입한 중국은 미국이 정해놓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후진타오 집권 첫해인 2002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미국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1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절반으로 따라붙었고, 시진핑(習近平) 집권 시기(2012~2022)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 9향후 4(2016) 안에 중국이 미국의 경제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20021000달러대에서 20115000달러대로 도약했다. 중국의 군사비는 일본의 2배를 넘었으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빠르게 쫓아가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은 시점에 중국의 종합 국력이 미국을 추월하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 일본의 국력은 나날이 쇠퇴하고 있다. 2002년 후진타오 시대가 시작됐을 때 중국이 10년 만에 G2(주요 2개국)로 부상할 줄 아무도 몰랐듯이, 이제 막 출범한 시진핑 시대가 끝나는 2022년쯤 중국이 어떤 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때 세계는 미국보다 부강한 사회주의 강대국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후 주석, 1시간30분간 낭독

 

주목해야 할 것은 대다수 선진국들이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에 허덕이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21세기 중화제국의 부활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며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진핑은 지난 1115일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云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등 새 지도부를 대동하고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여유 있으면서도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공산당은 창당 이래 인민과 대동단결하여 앞으로 나아갔고, 완강히 분투하여 가난하고 낙후한 구() 중국을 날로 번영·부강해지는 신중국으로 바꿔놓았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이전에 없었던 밝은 전경(前景)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국식 표현으로는 전면적 소강사회(小康社會·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회)의 건설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초강대국으로의 도약이다.

 

중국 지도부가 그리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어떤 모습인가. 즉 중국은 과연 어떤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가. 난해한 사회주의식 표현으로 묘사된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118일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낭독한 보고(報告)’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이 보고문은 떠나는 권력인 후진타오 주석의 보좌진과 새로운 권력인 시진핑 보좌진이 협력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 주석이 일부만 발췌해 읽는 데만 1시간30분이 걸린 약 3만자의 방대한 보고문 속에는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와 함께 향후 10년의 청사진과 방법론이 들어 있다. 그림이 당대회 과정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은 세계 언론의 관심이 7인의 상무위원 인선(人選)에 쏠렸기 때문이다. 나무에 집착하다 숲을 등한시한 격이다.

 

중국특색 사회주의 견지와 승리 쟁취

 

이 보고는 모두 12개 장()으로 이뤄져 있고 각 분야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과거 5년의 업무와 10년의 총결 중국특색 사회주의 길의 견지와 새로운 승리의 쟁취 전면적인 소강사회 완성과 개혁개방 목표의 전면적 심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완비와 경제발전 방식의 신속 전환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정치발전의 길과 정치체제 개혁 사회주의 문화강국 건설 민생 개선과 기업 창업 관리에 있어서 사회복지 강화 생태문명 건설 국방과 군 현대화 일국양제(一國兩制) 실천과 조국통일 인류의 평화발전 사업 촉진 공산당 건설의 과학화 제고 등이다.

 

전체 보고의 내용을 요약한 첫 부분을 제외하고 11개 장()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은 제2중국특색 사회주의 길의 견지와 새로운 승리의 쟁취이고, 나머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란 용어는 1980년대 초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용어는 의미와 중요도가 크게 달라졌다. 118일 당대회 개막식에서 후 주석의 보고를 인용해보자.

 

(道路)은 당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 민족의 운명, 인민의 행복에 관계되는 것이다. 중국처럼 경제와 문화가 낙후한 국가가 민족 부흥의 길을 찾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임무다. 과거 90여년 동안 우리 공산당은 인민에 긴밀히 의지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리를 중국 현실에 결합해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자기의 길(自己的路)’을 걸어왔다. 온갖 고난과 대가를 지불하여 혁명건설과 개혁에서 위대한 승리를 획득하였고,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열고 발전시켰으며, 근본적으로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미래 운명을 바꿔놓았다.”

 

요컨대 중국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들만의 발전의 길,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는 길을 찾아냈으며, 이 길을 따라온 결과 오늘날과 같은 큰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후 주석은 이어 “‘중국의 길막히고 좁은 낡은 길(老路)’도 아니고, ‘기치를 쉽게 바꾸는 잘못된 길(邪路)’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란 자신들이 한때 걸었던 문화혁명식 교조주의나 서구식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중국만의 길이라는 것이다. 이 길에 대해 후 주석은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길이란 공산당 영도하에, 기본적으로 국내사정에 발을 딛고, 인민민주독재와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마오쩌둥 사상을 고수하면서,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조화사회 건설을 통해 전체 인민의 공동의 부를 점진적으로 실현하여, 부강하고 민주적이고 문명화되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림의 제목은 중화민족의 부흥

 

요약하자면,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그리는 미래 그림의 제목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며, 그림의 내용은 부강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현대국가이며, 그림을 그리는 화법(畵法)은 교조주의나 서방식 방법이 아닌 중국만의 화법이라는 것이다. 후 주석은 이 길을 흔들림 없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관되게 걸어간다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시기(2021)에 우리의 목표를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이제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정치경제 체제다. 한국식 경제발전과도 다르고 동유럽이나 러시아와도 다른 이 정치경제 체제는 중국인들에게 특허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이 18차 당대회에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편전쟁 이후 1세기 이상 서방을 따라 배우던 모델을 버리고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즉 서방으로부터 이념적·정책적 독립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과거 30여년의 개혁개방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의 길을 가도 얼마든지 서방을 능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시진핑 체제가 이러한 목표를 이뤄낼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고도성장이 낳은 후유증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후진타오 집권기를 잃어버린 10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시진핑 지도부는 가장 어려운 10년을 맞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1115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시진핑은 겸손한 가운데서도 단호한 결의와 명확한 문제인식, 그리고 문제해결의 방향까지 보여주었다. 전에 없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도 피력했다. 공산당 지도부가 스스로 우리들 앞에는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자인하는 것은 어쩌면 강대국의 경계심을 풀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엄살 전략일 수도 있다.

 

정치개혁은 보수적으로

 

후진타오·시진핑 두 지도자는 일주일 간격으로 정치·경제·사회·민생·복지·환경·국방·외교·공산당건설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그중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시진핑 지도부가 제시한 해법은 7~8%에 달하는 비교적 빠른(較快)’ 성장 유지와 위험수위에 달한 빈부 격차의 축소를 통해 2020년까지 소강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후 주석의 보고문에서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통해 발전의 균형성, 조화성, 지속가능성을 뚜렷하게 증강하는 기초 위에서 GDP와 도농 주민의 1인당 소득을 향후 10년간 2010년의 2배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수출·투자 중심의 경제구조를 내수·소비 위주로 전환하고, 소득분배 개혁과 중서부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7대 신흥전략산업에 투자를 집중해 미래산업에서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중국의 미래산업은 한국의 신성장동력산업과 많은 부분이 겹쳐 한국 정부와 기업을 긴장시키고 있다.

 

정치개혁에서 시진핑 지도부는 당분간 보수적 입장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대회 보고문에서 언급된 정치개혁의 내용은 법치주의와 당내 민주선거, 민주적 정책결정 등이다. 이는 서방이 기대하는 직접선거나 다당제, 삼권분립과는 거리가 멀다. 즉 서방이 기대하는 정치개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서 점증하는 기층 민중의 욕구 폭발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신속한 정보의 확산, 중화민족주의의 고양 등은 시진핑 지도부에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 농민의 소득 증대, 물가와 부동산 가격 안정, 의료·양로보험 확대 등을 통해 국민의 경제생활을 개선하고 당간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과감한 조치로 민심을 달래려 할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요구와 공산당의 리더십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시진핑 체제의 중요 과제 중 하나다.

 

새로운 외교안보전략 필요하다

 

외교적으로 시진핑 체제는 이전과 달리 ‘G2’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후 주석과 시진핑 총서기가 미국을 향해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은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이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미국과 중국이 함께 대등한 입장에서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관계를 뜻한다. 기존의 패권국 미국이 이를 순순히 받아줄 리 없다. 최근 미국이 아시아로 외교안보의 중심축을 이동(Pivot to Asia)하고, 일본·인도·베트남·미얀마 등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포위전략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평화로운 문제해결을 내세우면서도, “국가주권과 안전, 발전이익을 견결히 보호하고 어떠한 외부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 영토분쟁 등을 둘러싼 갈등의 파고(波高)를 예고했다. 과거 어떤 지도부보다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이 강한 시진핑 지도부는 증대하는 중화민족주의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 미·, ·일 간의 신냉전(新冷戰)이 도래할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지금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것은 5세대 지도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와 세계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달려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 전략 환경의 급변에 대비한 외교안보전략을 다듬는 일이다. 한반도는 미국이 만든 20세기 질서와 중국이 만들려는 21세기 질서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미·중 간 갈등이 고조됐을 때 가장 영향을 받을 나라가 한국이다. 오는 12월 결정될 한국의 신정부는 중국의 미래 10년을 내다보면서,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외교안보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2012년 12월 23일 / 지해범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