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숫자로 본 대선>박정희는 5.16쿠데타, 박근혜 득표율 51.6%

풍월 사선암 2012. 12. 22. 12:05

 

<숫자로 본 대선>박정희는 5.16쿠데타, 박근혜는 투표율 51.6%

108만 득표차아버지 과거사108배 참회 의미?

5.16 군사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

 

아버지는 5.16으로 나라를 살렸고, 딸은 516개월 뒤, 51.6% 득표율로 나라가 북한에 넘어가기 직전에 구한다.”

 

정치 블로거 '일베'가 지난 20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516의 숨겨진 비밀이라는 짧은 글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블로거는 이건 하늘이 한 일이지 인간이 한 일이 아니다며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인이 18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치켜세웠다.

 

단순히 숫자로 끼워 맞췄다지만 뜻 풀이로 보면 묘하게도 신통방통한 해외 토픽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516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그의 딸인 박 당선인은 516개월 만에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51.6%로 정권을 거머쥐었다.

 

이를 두고 박 당선인의 지지자로 보이는 트위터 아이디 ***iru@는 박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1577’만표를 득표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격차가 ‘108’만여표인 것을 두고 전국대표 전화번호인 ‘1577’도 의미심장하지만 5.16 쿠데타로 어두운 과거사에 독재자의 딸이었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 ‘108’배 참회하는 심정으로 국정에 임해 주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블로그에는와 소름돋는다또는평행이론이다등의 긍정과 부정적인 말들이 엇갈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박정희는 5.16으로 정권을 잡았고,

박근혜는 51.6%득표로

516개월 만에 정권을 잡았다.

 

육영수여사는 문씨의 총탄에 숨졌고,

박근혜는 문씨를 투표로 이겼다.

 

박정희는 18년(1961~1979) 집권했고,

박근혜는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는 61세에 돌아가시고,

박근혜는 61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이 진정 하늘의 뜻이 아닐까?

 

 

[박근혜 시대]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신기록 풍년'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갖가지 신기록을 세웠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일 최종 완료된 개표 결과에서 박 당선인은 15773128표를 얻고 51.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로써 박 당선인은 1987년 이후 '첫 과반 대통령'이 됐다. 뿐만 아니다.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첫 부녀 대통령''첫 공대출신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당선인은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225'첫 여성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선다.

 

41년만의 '첫 과반 대통령'

 

당초 박 당선인 측은 높은 투표율에 긴장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젊은 층이 투표소로 몰려 진보진영으로 대변되는 야권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여권의 '투표율 징크스'를 보기 좋게 깼다. 그는 최종 투표율 75.8%에서 과반수를 넘기며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특히 과반 득표율은 41년만의 일이다. 대선에서 마지막으로 과반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당선인은 그의 선친인 박 전 대통령이었다. 19717대 대선 때 김대중 후보와 맞대결에서 53.2%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이후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없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보수와 진보의 일대일 세대결 양상이 투표율을 높이는 동시에 보수성향이 짙은 5060세대의 응집력을 키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박 당선인은 지난 14년여 동안 여성으로선 드물게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해왔다. 당의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해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침몰 직전의 당을 구했다. 200417대 총선과 20066·2 지방선거, 19대 총선의 승리는 박 당선인의 희생과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 당선인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내세우며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한 분 한 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국민 여러분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동행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첫 여성 대통령의 꿈을 이룬 박 당선인은 최초의 '미혼 대통령'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사촌오빠인 박재홍 전 의원이 결혼을 권했지만 당시 박 당선자는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며 단칼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 당선자는 자서전을 통해 "이미 나라와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가 롤 모델로 꼽은 정치인도 평생 독신으로 지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다.

 

아버지 딛고 '첫 부녀 대통령'

 

박 당선인은 부친 박 전 대통령의 정치를 보고 배웠다. 박 전 대통령은 19615·16 군사정변을 통해 권력을 잡아 5~9대 대통령을 지냈다. 이에 따라 박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의 재임 대부분 동안을 청와대에서 머물렀다. 특히 1974년부터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사망하면서,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에서 대통령이 된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박 전 대통령은 박 당선인의 양날의 검이었다. 선거기간 내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으로 과거사에 얽힌 문제에 부딪혔고, 정수장학회 논란으로 위기에 내몰렸다. 그는 결국 지난 1026일 박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재차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제 아버지를 놓아 드렸으면 한다"는 박 당선인은 "아버지 시대에 이룩한 성취는 국민께 돌려 드리고 그때의 아픔과 상처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마의 10% 벽 넘은 호남 득표율

 

박 당선인은 보수진영 후보 처음으로 호남에서 두 자리 득표율을 거뒀다. 실제 우파 후보가 호남에서 두 자리 득표율을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당선인의 최측근 이정현 공보단장이 "꿈의 숫자", "소원"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광주 7.8%,전남 10%, 전북 13.2%를 얻어 평균 10.4%를 득표했다. 보수정당 사상 처음으로 호남에서 득표율 10%를 돌파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역대 보수정당 후보의 호남 최고 득표는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8.9%였다. 그는 광주 8.6%, 전북 9%, 전남 9%를 기록해 평균 9%를 득표했다. 16대 대선에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광주 3.6%, 전북 6%, 전남 4.7%를 얻어 평균 4.8%에 불과했다. 15대 대선에선 더 낮은 수치다. 이회창 후보는 당시 광주 1.7%, 전북 4.5%, 전남 3.2%로 평균 3.1%에 그쳤다. 14대 대선에 출마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는 광주 2.1%, 전북 5.7%, 전남 4.2%를 얻어 평균 4% 기록했다. 13대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도 10%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전자공학과 출신의 '첫 공대 대통령'

 

박 당선인은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역사학과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박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김완희 교수의 말을 전해 듣고 '교육자'에서 '산업 역군'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자서전에서 "수출을 늘리려면 전자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공계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4년 동안 B학점 7과목, C학점 1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A를 받은 모범생이었다. 이공계 수석으로 서강대를 졸업했으나 육 여사와 박 전 대통령을 흉탄에 여읜 뒤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한편, 역대 대통령의 대학전공을 보면 이승만(정치학), 윤보선(고고학), 박정희·전두환·노태우(육사), 최규하(영문), 김영삼(철학), 김대중·노무현(고졸), 이명박(경영)이다.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