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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세계사] 마리아 몬테소리

풍월 사선암 2012. 7. 22. 17:28

 

어린이의 감춰진 힘을 알아내어 칭찬하고 그 힘의 성장을 돕고 보조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겸손히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의 진정한 품성이 내면의 힘을 가지고 우리 앞에 드러날 것이다. - 마리아 몬테소리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몬테소리는 익히 들어본 단어이다. 특히 미취학 아동이 있는 집에는 몬테소리 교육법이라던가 몬테소리 교재도구등등, 몬테소리라는 말이 붙은 유아교육과 관련된 책이나 도구가 한 두 개쯤은 꼭 있다. 몬테소리는 유아교육의 대명사처럼 사람들에게 불려 지지만, 정작 몬테소리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몬테소리는 놀잇감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개발해낸 이탈리아의 여의사이며 심리학자, 아동교육자였던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가 개발한 아동 교육방법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와 우리의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이탈리아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사랑하는 딸이 그저 당시 여성들이 살아가는 대로 무리 없이 살기를 원했다. 이에 비해 어머니는 진취적이었다. 어머니는 똑똑하고 총명한 딸이 자기개발을 해나가도록 도왔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결국 평소 흥미를 가졌던 기술학교에 진학을 하였고, 이어 이탈리아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의대에 입학하였다.

 

어렵사리 진학한 의대였지만, 공부 또한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많은 수업에서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다. 해부학 실습에서는 아예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격리되어 다른 방에서 해부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는 대부분의 차별을 극복하고 학점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 6년 만에 로마대학교 의과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이것은 마리아 몬테소리가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전문적 지식을 가진 여성으로서 19세기 말 이탈리아 여성을 대표하는 선구자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몬테소리는 1896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여성권리대회에 이탈리아의 특사로 파견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임금, 그리고 남녀 평등 문제에 대해 강도 있는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 받았고 당시 유럽에서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 사회적, 학문적인 측면에서 유럽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고민하게 했으며 여성 교육을 현실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

 

비록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의사로 주목 받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녀를 현장 의사로 뽑아주는 데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의 구직 활동을 통해 아픈 사람을 직접 만나 치료하는 자리가 아닌, 로마정신병원의 보조의사로 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정신병원에서 정신지체 아동들이 그저 동물처럼 수용되어 있는 끔직한 환경을 목도하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뚜렷이 결정할 수 있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지체아동들의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전 아동들의 교육에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24년 네덜란드 덜햄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는 몬테소리 여사.

 

당시 유럽에서 정신지체 아동들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 격리대상일 뿐이었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 조차도 그들을 동물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경멸하고 있었고, 그저 때가 되면 밥을 주는 것 외에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 몬테소리는 그곳에서 치료의 희망을 발견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로 노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가 그 놀이과정을 통해 점차로 감각과 행동이 향상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장난감을 주고 그것을 가지고 노는 동안 아이들의 지능이 향상되는 것을 발견하고 감각의 자극을 통한 교육과 치료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1898년 이탈리아 교육학회에 장애 어린이들의 교육개혁을 요구하였다. 또한 그녀 스스로 정신 지체 아동들 사이로 뛰어 들어 그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치료의학자 이타르와 세겡의 저술에 감명을 받은 마리아 몬테소리는 그들의 이론을 실제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정신지체 어린이들의 감각을 개발하기 위해 특수한 도구를 만들고, 이를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들이 변해 가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도구를 만지고 느끼면서 산만하던 아이들은 집중력이 생기고 이전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몬테소리의 교육법으로 많은 정신지체아들의 지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시험에 합격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교육계, 의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의사에서 교육자로

 

실험은 성공하였지만, 마리아 몬테소리에게는 개인적인 불행이 닥쳤다. 동료의사 주세페 몬테사노와 사랑에 빠졌던 마리아는 그 사이에 아들 마리오를 낳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양가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의 아버지 몬테사노는 곧이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당시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존재였다. 아이는 은밀히 양부모에게 맡겨졌다. 어린이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녀였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는 돌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불행이 그녀에게 닥친 것이다.

 

이즈음 마리아 몬테소리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녀는 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1904년 로마대학 인류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개인적 불행과 어린이 교육에 대한 관심을 승화시켜 그녀는 다시 한번 교육자로의 길을 선택했다. 1907년 그녀는 로마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 빈민들을 위한 탁아소를 열었다. 2세에서 6세 사이의 어린이들이 그녀가 세운 탁아소에서 보살핌을 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어로 카사 데 밤비니’, 즉 어린이의 집이라고 명명된 그녀의 탁아소에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몬테소리는 의사 시절 정신 지체 아동들을 교육하던 방법을 더욱 발전 시켜 일반 아동들에게 이 교육법을 적용하여 보았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작은 물건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은 그것을 만지고 느끼며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고 그것은 아이들의 지력을 향상시키고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성도 교정하였다.

 

몬테소리 학교의 풍경

 

무조건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치던 방법은 카사 데 밤비니에서는 배제되었다. 아이들의 인격을 그대로 존중하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실시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아이들의 신체 구조에 맞는 책상과 의자가 이때와서야 처음 개발되었다. 아이들이 흥미로워 하는 갖가지 교재 도구가 개발되었고 이를 통해 아이들은 나날이 발전하여갔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교육이란 어린이의 생명에 대한 원조 활동이며,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의 존재 그 자체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어린이가 성숙하기 위해서 나아가려고 할 때 필요한 도움 즉,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다는 기본 원칙 하에 어린이 그 자체로 정서적, 지적, 신체적으로 고루 키워져야 할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 받아야 할 존재라고 여긴 것이다.

 

▲ 몬테소리 교육법 중의 하나인 촉감을 통해 물체를 파악하는 학습과정의 모습

 

몬테소리 교육법

 

마리아 몬테소리의 카사 데 밤비니에서의 성과는 점차 입소문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책을 펴내 이를 널리 알렸다. 많은 나라에서 몬테소리의 어린이 교육법을 알고 싶어했다. 몬테소리 식의 어린이집과 그녀의 교육법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페인, 네덜란드, 인도 등지에서 살면서 갖가지 저술활동과 강연을 통해 그녀가 알아낸 어린이 교육법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1950. 말년의 몬테소리 여사.

 

그 와중에 그녀는 15세가 된 자신의 아들 마리오를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들 마리오 몬테소리는 어머니를 도와 그녀의 교육법을 알리는 데 앞장서 평생을 두고 그녀의 조력자가 되었다.

 

오늘날 어린이 보호와 어린이 입장에 맞는 유아교육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만 하여도 어린이는 통제 할 수 없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다. 어린이는 그야말로 가혹하기 그지없는 체벌과 주입식 교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이는 무조건 정신 지체로 분류되어 도태되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어린이에 대한 애정과 관찰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에 어린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마리아 몬테소리에 의해 하나의 인격체가 만들어내는 세계로써 어린이의 세계가 인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여러 번 올랐으나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모두가 어린이들이 보여준 것이라며 상을 양보하기도 하였다.

 

글 김정미/시나리오 작가, 역사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