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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금 분배, 법을 따르자니 형제가 싸운다

풍월 사선암 2012. 7. 14. 10:48

조의금 분배, 법을 따르자니 형제가 싸운다

 

법엔 'N분의 1'

조문객 많이 온 형제는 "내가 뿌린 돈, 내가 가져야"

적게 온 형제는 "부모 사망 때문에 온 돈동등하게 나눠 가져야"

사이 안 좋고 액수 크면 다퉈

형편 어려운 형제에 조의금 더 줄 수 있는 문제

형제·자매 우애 없을수록 다투다 상하는 경우 많아

 

6형제 중 셋째인 회사원 김모(46)씨는 최근 모친상을 당했다. 장례비용으로 4000만원이 들었고 조의금(弔意金)7000만원 정도가 들어왔다. 대기업 직원이던 김씨와 사업을 하는 넷째에게만 각각 3000여만원의 조의금이 들어왔다. 사회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다른 네 형제 앞으로 온 조의금은 100~200만원에 그쳤다.

 

문제는 장례를 치르고 조의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겼다. 여섯째가 '남은 조의금을 형제 수대로 6등분 하자'고 한 것이다. "조의금도 결국 돌려줘야 할 빚인데 그걸 왜 나눠야 하냐"는 셋째·넷째와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생긴 돈 아니냐"는 여섯째의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대체 어떻게 나누는 것이 맞을까.

 

단순한 도움인가 빚인가

 

조의금을 두고 이런 문제가 끊이질 않는 것은 조의금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우선 부모의 사망으로 인해 생긴 돈인지, 자식들의 인맥 때문에 생긴 돈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전자가 조의금을 일종의 '상속금'으로 보는 반면, 후자는 조의금을 일종의 ''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상을 여러 번 치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의금을 둘러싼 이야기는 주변에 알릴 일도 아니다 보니 막상 상을 당했을 때 참고할 만한 사례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조의금 문제로 인해 자식들 간 의()가 상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김씨의 경우도 결국 셋째와 넷째가 각각 1500만원, 나머지 형제들이 200만원씩 가지기로 했다. 장례에 4000만원이 들었으니 일종의 타협을 한 셈이다. 하지만 몇 달 후 명절에 여섯째가 "그때 균등하게 나눠야 했다"며 다시 이 문제를 들고나와 지금은 거의 의절 상태다. 서울의 한 대형 장례식장 김모(46) 실장은 "조의금 분배를 놓고 자식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는 것만 일주일에 수차례"라며 "형제들 요청으로 1년에 1~2번은 내가 직접 조의금을 나눠준다"고 했다. 조문객이 많이 온 형제가 적게 온 형제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헛살았냐"는 비난도 한다고 했다.

 

사실 조의금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법률상 기준은 나와 있다. 대법원은 지난 1992"장례비용에 충당하고 남는 부의금은 사망한 사람의 공동상속인이 각자의 상속분에 응해 권리를 취득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상속인들이 상속 지분대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형제들의 상속 지분은 같다. 서울가정법원도 지난 2010"부의금 피교부자의 지위에 상관없이 나머지 금액을 평등하게 분배함이 옳다"고 판결했다. 법대로라면 사람 수대로 나누자 했던 여섯째의 안(), 'N분의1'이 정답인 셈이다.

 

사이 안 좋고, 액수 많으면 싸우기 쉬워

 

명확한 법적 기준이 있는데도 조의금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것에 대해 강동구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은 "법적 기준이 잘 안 알려져 있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문제를 법대로 하기엔 야박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형편이 더 나은 집에서 장례비용을 더 부담할 수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집에 조의금을 더 줄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없을수록 조의금 문제로 다투기 쉽다는 게 강 원장의 주장이다.

 

과거에 비해 조의금 액수가 불었다는 것도 싸움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예전 같았으면 조의금으로 장례 비용을 겨우 충당했겠지만 조의금 액수가 계속 늘어나며 '목돈'이 자식들에게 남는다는 것이다. 올해 초 조부상을 치른 이모(27)씨는 "공무원·사업가 등 아버지 3형제 1인당 손님이 2000명이 넘게 왔다""조의금이 1억원을 넘었다"고 했다.

 

강 원장은 "사회 안전망이 불투명했던 과거에 일종의 '품앗이'로 작용했던 조의금 문화가 경제 성장·가족 해체와 맞물리며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라며 "'내가 뿌린 돈 내가 가져가겠다'는 태도보다는 유족을 위한다는 조의금의 원뜻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곽래건 기자 / 2012.07.13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