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사람도 사업도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

풍월 사선암 2012. 7. 14. 10:26

[송병락 교수의 '승자병법'] 보다 빠른 때론 간접 공격이 효과적

 

迂直之計의 이치_가파른 산에 오를 때 직선으로 만든 길 보다

구불구불한 우회로 통해 더 쉽게 오를 수 있어

迂直之計의 지혜_거래처 돕다 보니 자기 사업도 덩달아 번창

사람도 사업도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

 

과거 학생 데모가 많을 때 어느 분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누가 학생 데모를 옹호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다면, '데모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읽자마자 바로 데모하러 뛰쳐나가게 된다면 아주 잘 쓴 글이다." '손자병법'에서 강조하는 우직지계(迂直之計)로 이를 풀어보면, '학생 여러분, 데모해야 합니다' 하고 직접 강조하는 것은 직()이요, 우회적 표현으로 데모하게 만드는 것은 우().

 

20세기 세계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武元甲) 장군은 실제 우직지계로 승리했다. 그는 프랑스군과 벌인 디엔비엔푸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길고 긴 프랑스 식민통치를 끝냈다. 이는 식민통치받는 약소국이 선진 종주국과 싸워 승리한 첫 케이스이다. 이 전투에서 지압장군은 접근하기 쉬운 길이 아니라 정글을 통과하게 만든 우회로를 통해 프랑스군을 포위했다.

 

프랑스군은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접근로에 지뢰, 철조망 등을 이중삼중으로 설치해 놓았다. 심지어 전투에 불리할 때 도망을 가려고 해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압 장군이 만약 정면공격을 시도했다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을 것이다. 모택동을 비롯한 세계적인 전략가들은 모두 우직지계의 고수이다.

 

전쟁에서 보다 빠르게 만든 사례도 있다. 6·25전쟁 당시 한 중공군 사령관은 미군 포로들을 데리고 거짓으로 후퇴하면서 무기를 길가에 버리면서 이런 말을 하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이제 우리는 중국으로 돌아간다. 당신들을 잡아갈 이유가 없어서 놓아주는 것이니 당신들도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라." 그리고는 바로 군 장비를 경장비로 바꾸어 신속한 우회기동으로 미군 후방에 침투시켰다. 이 말에 완전히 속아 방심하고 있던 수많은 미군은 포로로 잡혔다. 청천벽력 같은 사태를 맞은 것이다.

 

우직지계의 은 접근하기 쉬운 빠른 길, 편안하게 바로 가는 길(직진로)을 뜻하고, 는 좁고 돌아가는 길, 힘들고 구불구불한 길(우회로)을 말한다. 우직지계의 핵심은 이런 으로, 곧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요컨대 가파른 산을 오를 때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직선으로 길을 만들어 놓고 차로 올라가면 뒤집히기 쉽지만 구불구불 우회로를 만들어 올라가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우직지계의 이치다.

 

20세기 초반의 저명한 군사전략가인 영국의 리델 하트(Hart)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간접접근법'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업이나 인간관계도 그렇다고 했다. 그의 간접접근법도 '손자병법'의 우직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손자병법'에서는 직공(直攻)을 피해야 할 8가지 경우를 밝히고 있다.

 

, 적이 높은 언덕에 진을 치고 있거나 언덕을 등지고 있거나 거짓으로 패주한 척하거나 사기가 왕성하거나 아군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를 던지거나 사력을 다하여 자국으로 철수 중이거나 퇴로 없이 포위되었거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있다면, 직공을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직장 상사, 인생 선배, 비우호적 고객이나 거래처, 심지어 아랫사람에게도 직공이나 직언을 피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사업에서도 우직지계의 지혜는 중요하다. 어느 음식점 주인은 돈 벌 생각을 접고 최고의 식재료로 정성껏 먹기 좋게 만들었더니 손님이 들끓게 됐다고 했다. 거래처를 돕다 보니 자기 사업도 덩달아 잘되더라는 사업가도 있다.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어느 분은 돈 벌려고 벤처 기업을 경영한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 못 봤다고 했다. 사람을 가장 잘 피해 다니는 것이 돈이라고 한다.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은 로 접근해야 된다고 한다.

 

우직지계는 문화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문화인류학자 폰스 트롬페나스(Trompenaars)는 말한다. "미국인은 남미에 도착해서 고객을 만나자마자 바로 상품의 우수성을 설명하면서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스웨덴인은 첫 5일간은 상품에 대해 입도 벙긋 않고 우의만 다지다가, 마지막 6일째에 비로소 상품 이야기를 꺼내니 품질 면에서 미국산보다 뒤처졌지만 계약에 성공했다."

 

헨리 키신저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강조하듯 적의 중심을 찾아서 직접 공격하는 것을 중시하나, 동양인들은 '손자병법'이 강조하듯 적의 전략이나 외교관계를 먼저 치는 간접 공격을 중시한다. 미국 문화는 '존 웨인식' 의 문화라고도 한다. 문제 해결에는 당사자가, 단도직입적으로, 핵심부터 파고든다는 것이다. 직의 문화에도 물론 강점이 있다.

 

'손자병법'은 우직지계를 먼저 아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고 했다. 지금 같은 초경쟁시대일수록 어렵고 힘들지만 돌아가는 길, 곧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서양 속담에 구부러지지 않는 길은 길이 아니라 했고, 일본 속담에도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사업가가 빠르게 돈을 버는 길만을 찾다 보면 돈도 사람도 놓치게 된다. 또 직장인이 출세에 눈이 멀면 동료도 가정도 잃어버리기 쉽다.

 

목전의 작은 이익, 작은 명예, 미색(美色), 안일을 가져다주는 길은 쉽고 빠른 길이다. 지뢰가 매설돼 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 이런 길만 찾는 사람은 유약한 인간이 된다. 선진국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도 이런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좁고 어렵고 돌아가는 길을 개척해 대승을 거둔 지압 장군처럼 한국에도 우직지계의 고수(高手)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조선일보 2012.07.13  /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