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담쟁이 - 도종환

풍월 사선암 2012. 7. 10. 10:34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 - 도종환시 / 김정식곡 / 노래 김정식과 딸들

시인은 자신이 가장 어렵고 해직되어 직장도 없을 좌절의 순간에야 비로소 담쟁이란 식물에 눈이 가게되고, 그 담쟁이를 깊이 묵상하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잘 나가고 돈 잘벌고 잘 먹고 잘 살 때는 하잘 것 없는 담쟁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자기가 낮아질 때 남이 보이고 볼품없는 담쟁이에서도 인생과 사랑과 서로 돕는 인생의 진수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외부의 여건 보다는 스스로 바라고 꿈꾸며 스스로 설정하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일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시대 요구되고 있다.

 

도종환 시인 자신의 설명

물 한 방울 없고 흙 한 톨 없는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보면서 저 담쟁이들은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조급했고 나 혼자만이라도 이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담쟁이는 아주 천천히 그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고 옆의 이파리들과 전부 함께 손을 잡고 벽을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내 처지도 어렵지만 저 담쟁이 중에 처음에 저런 벽에 살게 된 작은 이파리들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안 받았고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 담쟁이를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도 담쟁이처럼 손에 손을 잡고 내 앞에 놓인 벽을 혜쳐 나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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