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칼858기 유족들, “우리를 ‘종북·좌파’라니…”

풍월 사선암 2012. 6. 26. 13:06

858기 유족들, “우리를 종북·좌파라니

 

김현희 종편 발언 내용에 격노 사과 한번 않고

실종자 가족회, 김씨에 715일 공개토론회 제안

 

차옥정(75)씨에게 김현희는 거론조차 하기 싫은 이름이다. 지난 19871129일 차씨의 남편 박명규(당시 52)씨가 탄 바그다드 발 대한항공 여객기(KAL858)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실종됐다. 박씨를 비롯한 승무원 20명과 승객 95명 등 115명도 사라졌다.

 

테러범으로 지목된 김현희는 같은해 12북한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 선거 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 내 계급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칼858기를 폭파했다고 자백했다. 외국에 비행갔다 올 때면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꼬박꼬박 사오던 자상한 남편을 앗아간 이름이 김현희.

 

그 이름을 최근 다시 접하면서 묻어뒀던 분노가 다시 치밀었다. 김현희(50)씨는 지난 17일과 18일 이틀 연속으로 <티브이(TV)조선>의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무현 정부와 좌파단체가 나를 가짜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차씨는 25<한겨레>와 만나 유가족들이 요청한 면담에는 한번도 응하지 않던 김씨가 조갑제 기자와 함께 <티브이조선>에 얼굴을 드러낸 이유를 대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차씨는 당시 실종된 탑승객 가족들의 모임인 858기 실종자 가족회’(가족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실종자 가족회 집행부 5~6명이 김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실도 다른 가족들은 나중에야 알았다고 차씨는 말했다. 그 일을 포함해 김씨가 가족들을 직접 만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게 차씨의 주장이다.

 

실제로 김씨는 지난 2005년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할 당시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강제 조사를 검토했으나 김씨의 비협조 탓에 무위로 돌아갔다. 노무현 정부가 두 차례 재조사를 통해 칼기 폭파 사건은 북한 소행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가족회가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고 직후 군사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사건 내용 외에는 김씨에 대한 투명한 조사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유인자(55)씨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유씨는 “87년 안기부가 작성한 자료를 재검토하는 수준에 그친 조사 결과를 믿으라고 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가족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족회는 김씨가 <티브이조선>에 출연해 당시 발표 내용은 한달 만에 수사해 발표한 거라 미흡한 점이 많았다면서도 “(실체에 대한) 의혹은 숫자 등 지엽적인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당시 수사 결과를 보면) 김씨는 자기가 설치한 폭발물의 종류가 뭔지도 몰랐고, 자기가 틀리게 말한 것에 대해 우리가 진실을 밝혀놓으면 슬그머니 자기 자서전에서 해당 부분을 수정하곤 했다고 유씨는 말했다.

 

민주정부 시절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에 협조하지 않았던 김씨가 느닷없이 등장해, 과거 진상 규명과 관련한 활동을 좌파·종북으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차씨는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858기 폭파 사건과 관련해서는 국정원조차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사고 항공기로 추정되는 동체가 지난 19903월 발견됐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 폭파 흔적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가족회는 25일 김씨에게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가족회는 오는 715일까지 공개토론회에 응하지 않으면, 그동안 숱하게 말을 바꾼 사례 등을 토대로 김씨의 실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등록 : 2012.06.25  /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전 감사원 직원의 편지

김현희씨, 이제 진실을 말하세요

 

베일 벗는 KAL858 폭파 의혹 / 김현희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1987KAL기 사건 발생 당시부터 16년간 이 문제를 추적 해 온 사람이라 김현희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이젠 당신을 보는 관심법(觀心法)까지 터득했다고 자부합니다.

 

요즘 이 사건의 진상규명운동이 뜨거워 마음고생이 심하겠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당신과 당신의 가정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에 도움을 주고자 글을 쓰게 됐습니다.

 

나는 115명이나 증발한 엄청난 KAL858 사건을 추적하면서도 당신을 떠올리면 마음이 가볍습니다. 당신이 폭파범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남에게 죄와 벌을 주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무고한 사람의 죄와 벌을 벗겨주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는 KAL기 사건의 실종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일각에선 가족들이 당신을 해칠까 봐 특별보호 한다지만 가족들도 당신이 폭파범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당신의 양심선언을 요구하고 있지요. 정작 당신을 세상과 차단하려는 무리들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두려워하는 어둠의 자식들이 아닐까요.

 

김현희씨, 당신은 위선이라는 말을 압니까. 잘못을 감추고 착하고 예쁘게 보이려는 행동. 그러나 위악이라는 말은 못 들어봤죠. 잘못이 없음에도 악인처럼 행세하는 것. 위선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위악은 본성에 반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배후에 사연이 있지 않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귀는 지문과 같이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입니다. 나는 사건 초기 당신의 칼귀와 평양의 화동과의 귀가 완전히 다른 것을 발견하고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계속 폭파범이라고 우기며 위악적 행동을 해왔는데, 나는 그 배경에 대하여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해서 '김현희 처녀 구하기'에 돌입, 이렇게 10년이 넘었군요.

 

김현희씨, 1987년 이후 현재까지의 세월을 돌이켜보세요.

당신은 아무 증거 없는 거짓 시나리오에 폭파범 꼭두각시 노릇을 했고, 언론은 당신을 스타로 띄웠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성상품으로 팔아 엄청 벌었고, 당신의 인기는 인기 연예인 저리 가라였지요. 물론 제일 재미를 본 곳은 당신을 반공투사로 내세워 남북대결구도를 굳힌 정부였지요. 각본대로 당신은 청초한 이미지로 사면 받았으나, 115명이나 희생시킨 테러범에게 이것이 어디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까.

 

그때 사람들이 진정 당신을 살리고자 했다면 '김현희는 범인이 아니다, 귀를 봐라'고 주장했어야 하는데, 변호사도 언론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죠. 뻔히 알아도 사실대로 말하면 불이익이 올까 봐. 결국 대법원은 사형을 내려 당신을 처녀귀신으로 만들 뻔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벌거벗은 임금님' 쇼였습니다. !

 

김현희씨, 당신은 그런 위악적 인생이 성공했다고 봅니까. 스타라면 돈도 엄청 벌었어야 하는데 그간 책 쓰고 강연 나가 번 돈 대부분을 KAL기 가족들에게 헌납했고, 결혼 이후 개업한 일식집도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았다지요. 물론 행복은 돈만이 아닙니다. 당신의 수기를 보면 당신의 간절한 소망은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늦둥이를 포함한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사는 것이란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등 그야말로 세상의 관심에 의해 포위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20037월 일본 아사히TV에서 방영한 내용을 보면, 시댁 친척들은 당신에 대해 침묵하는 게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고, MBC PD수첩에선 당신이 유모차를 끌고 산보할 때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보도했습니다.

 

왜 폭파범도 아닌데 죄인처럼 삽니까. 친척들 말대로 침묵한다고 지금 상태가 바뀝니까. 이제 조금 있으면 애들도 유치원에 보내야 할 텐데 엄마가 115명이나 희생시킨 테러범이라는 걸 알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침묵은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고 엄마로서 할 일도 아닙니다.

 

나는 오매불망 국가의 안전을 기획하는 기관들과 당신과의 관계를 잘 모릅니다. 10여 년간의 관계 때문에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범인이 아니다. 증거를 대봐라'고 외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이 침묵의 감옥을 깰 수 있습니까. 결국 당신의 위악과 침묵으로 당신은 물론, 당신의 가족, 115명의 KAL기 희생자 가족, 남북 7천만 민족, 나아가 전 인류가 피해를 입고 있는 중 입니다.

 

따라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현재 여러 관계에 얽매여 당신 스스로 양심선언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때마침 세상이 이렇게 요구하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진실은 결국 밝혀집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지겠지만,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당신 말고는 누구도 진실을 말하기 힘듭니다.

 

어쨌든 침묵할 것인가, 밝힐 것인가, 당신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당신의 현명한 선택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립니다.

 

첫째, 세상에서 가정 이상 소중한 게 없으며 부모자식 간은 '천륜(天倫)'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싶다면, 당신이 진실을 숨기게 된 다른 인간관계는 한 수 아래의 것입니다. 당신의 가정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히세요.

 

둘째, 어느 편이 정의이고 대세인가 보십시오. 1987년은 남북대립 시대로 이 사건이 남북을 이간질했지만, 이젠 남북화해시대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두려워하는 세력은 한 줌에 지나지 않으나 사실이 밝혀지기 바라는 편은 7천만 민족과 전 인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이 사건이 엉터리라고 알려진 이상 이제 위악은 안 통합니다. 국민들도 몰랐을 땐, 당신의 위악을 이해하지만, 이렇게 드러난 마당에 계속 침묵과 위악을 한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과 가정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기관이나 언론과는 대책회의도 말고 만나지도 마십시오. 그들은 당신을 용도폐기한 지 오래고, 막상 들통이 날 땐 '나 몰라라' 먼저 도망갈 테니까요.

 

김현희씨, 이젠 믿을 건 진실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이 감옥 같은 생활에서 당신을 해방시키고, 단란한 미래를 보장합니다. 부디 대의의 편에 서서 하루 빨리 양심선언 하십시오. 세상은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시면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편안히 사세요. 본의 아니게 분단국가 남북대립의 소용돌이에서 태어나고 보니 허비하게 된 인생의 황금기. 더 이상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진상을 밝힌 당신이 세상 그 어디에 있을지라도 인류는 당신과 당신의 가정을 축복할 것입니다. 늦둥이들 예쁘죠. 내내 행복한 가정이 되길 빕니다.

 

2003년 겨울, 현준희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