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11년째 '아침편지' 배달하는 남자, 고도원

풍월 사선암 2012. 6. 23. 08:07

[김윤덕의 사람] 11년째 '아침편지' 배달하는 남자, 고도원

 

앞만 보고 뛰는 사람들 당신만의 북극성을 띄우세요

 

''이 필요한 시대

청와대서 5년 일하니 고개가 안 돌아가마라톤으로 몸 고친 뒤 마음 고치려 시작

기름 떨어지고 엔진에 불난 것 같은 사람들 들여다보면 마음에 통증 하나씩 있더라

 

아침편지, 초심 잃었다?

기부금으로 명상센터·건강식품 쇼핑몰초심을 못 지켜도, 변화에 대응 못해도 소멸

은행 돈 1원도 안 쓰고 국가 예산도 안 받아

몇백억 수익? 다 공적 재산100% 재투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200181'희망이란' 제목으로 배달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1호는 우리 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메일로 편지 쓰기'라는 소박한 행위를 넘어 '이메일 마케팅'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요즘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힐링(치유)'의 물꼬를 틔웠다. 아류가 무성한데 '원조'의 힘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이 300만명을 넘어섰다. 회원들 기부금으로 충주 7만여평 숲 속에 건립한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은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이 붐빈다. 100억원대 매출의 건강식품 쇼핑몰까지 운영할 만큼 몸집이 커졌다. 그래서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이 자리한 충주의 숲에는 낙엽송이 우거져 있다. 고도원은 명상의 한 방법으로 냉온욕을 권했다. “몸의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보세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방 안에서 방 밖으로, 정신노동에서 육체노동으로!”

 

18, 낙엽송 쭉쭉 뻗은 숲 속에 그림처럼 들어앉은 '깊은산속옹달샘'에서 고도원(60)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해냄)는 신작을 펴냈다.

 

初心 잃지 않으려 기도한다

 

'아침편지' 회원이 300만명을 넘었다.

 

"숫자는 내려놓은 지 오래다. 어떤 사람은 숫자를 돈으로 보고, 표로도 보지만 내게 숫자와 물량은 큰 의미가 없다. 나의 편지가 누군가의 가슴에 꽂혀서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TV 프로그램에다 여행 상품까지 힐링이 유행이다. 마음 산업 시대다.

 

"예견된 일이었다. 속도의 부작용, 앞만 보고 달리다가 고장이 나고 기름이 떨어지고 엔진에 불이 났다.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 문제, 내 가족의 문제로 닥친 것이다. 명상센터에 오는 사람들이 겉보기엔 건강해 보여도 만나서 속속들이 이야기해보면 저마다 마음의 통증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더라. , 잠깐 멈춤이 필요한 시대다."

 

11년이면 시들해질 만도 한데, '아침편지'의 위력은 왜 지속되는 걸까.

 

"매일매일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 보통 일인가(웃음). 중간중간 슬럼프도 있었다. 이런 글을 누가 읽고 감동할까 하는 두려움이 내게도 있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이어가니 진정성을 봐주시는 것 같다. 믿을 만하다 여기는 것 같다."

 

'깊은산속옹달샘'은 아침편지 회원들의 기부금을 통해 건립됐다고 하더라.

 

"명상센터는 아침편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꿈이었고, 일찌감치 회원들과 그 꿈을 공유했다. 우선은 내 집을 팔아 종자돈을 마련했고 1000원부터 거액의 기부금까지 다양한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다. 이게 누군가의 웅변과 선동을 통해 되는 일이 아니다. 진심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몸집이 커지니 '아침편지'의 초심이 흔들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데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가 초심을 지키는 것. 둘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초심을 잃어도 소멸하지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도 소멸한다. 명상센터만 해도 직원 70명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거미줄이 생기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변해서는 안 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분별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이를테면 은행 돈은 1원도 쓰지 않는다. 헛돈을 바라지 않고 국가 예산도 지원받지 않는다. 여유 있으면 성큼성큼 가고, 여유가 없으면 멈춰 서서 기다린다."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온라인 쇼핑몰 '꽃피는 아침마을'100억원대 매출 규모라더라.

 

"놀랍게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저게 나중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든다.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그 결과물이 개인의 부로 가지 않고 재단으로 간다는 것이다. 몇백억원 수익이 생겨도 다 공적인 재산이다. 수익의 100%를 재투자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든다."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나.

 

"꿈은 무궁무진하다(웃음). 플럼빌리지 같은 명상 마을을 만드는 꿈, 아침편지를 영어와 중국어·일본어로도 써서 전 세계로 배달하는 꿈까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슬프고 힘든 일. 분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마운 벗이기도 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아니면 끝내 모르고 말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으니까요'('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중에서).

 

고도원의 글이 널리 읽히는 이유는 간결하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사람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방송인 이금희는 "동서고금 현인들의 지당하신 말씀들뿐이었다면 아침편지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꿈보다 나은 해몽처럼 장기판 훈수꾼의 한마디처럼 짤막하게 덧붙이는 고도원의 글 몇 줄이야말로 아침편지의 참맛"이라고 했다. , 행복, 희망 같은 추상 개념들을 매일 새로운 맛으로 요리해내는 '노하우'는 고도원 자신의 인생 역정, 그리고 그의 독특한 독서력(讀書歷)과 관련 있었다.

 

아침편지 1호에 루쉰의 글을 띄웠다.

 

"내 삶이 가장 힘들 때, 경제적으로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이정표가 되어준 글이다. 루쉰의 '고향'은 원래 아버지의 책이다. 절망과 혼돈의 시간이 오면 아버지의 책을 꺼내 읽었다. '희망이란'도 아버지가 먼저 밑줄 그어놓은 문장이었다."

 

선친이 시골 교회 목사였다.

 

"평생을 사례비 없이 교회 개척만 하신 분이라 우리 7남매의 유년기는 굉장히 궁핍했다. 가난 속에서도 아버지는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도 책을 강제로 안겨주신 뒤 밑줄 그어가며 읽게 하셨다. 온화한 성품이신데 책을 잃지 않으면 종아리를 때리셨다."

 

그때부터 고도원의 책 읽기가 시작됐나 보다.

 

"2가 극심한 반항기였다. 교회에 사는 게 싫고 목사의 아들인 게 싫고 배고픈 게 싫더라. 그래도 책은 좋았다. 만화, 음란물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지. 당시의 마광수가 방인근이었다는 걸 아나? '벌레 먹은 장미' '밤이 그리워' 같은 음란물을 썼던(웃음). 그 덕에 내가 속독법을 터득했다. 30분에 한 권씩 읽어야 하니까(웃음). 어릴 때부터 써온 독서 카드가 아침편지 쓰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2001년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이미 5~6년은 쓰고도 남을 목록이 있었다(웃음)."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까지는 우등 장학생이었다. 그런데 '연세춘추' 편집국장을 하면서 필화 사건을 일으켰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되고 강제 징집되면서 인생이 쫑났다. 운동권 출신이란 딱지 때문에 도통 취업이 안 되더라. 포장마차도 해보고 문방구 하다 사기도 당하고 웨딩드레스 사업하다 망하고. 우연히 잡지 '뿌리깊은나무'의 기자가 되면서 글쟁이 길로 들어섰다. 다시 중앙일보로 가서 15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나름대로 특종 기자였다(웃음)."

 

그러다 청와대로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 담당 비서관으로 5년을 일했다.

 

"평민당 출입할 때 DJ를 처음 만났다. 내 인생을 바꾼 분 중 한 사람이다. 한 번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 대해 말씀하시더라. 나는 그 책을 아버지한테 매 맞으면서 중학교 때 처음 읽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와 함께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영감을 받아 15번이나 읽은 터라 토인비 책을 암송하다시피 했는데 그걸 DJ가 좋게 보시고 내게 관심을 보이셨다."

 

김대중 대통령이 무척 꼼꼼한 성격이었다더라.

 

"하늘을 찔렀지(웃음). 철두철미하고 분석적이고 용의주도하고. 그분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철학, 표현 방식을 연구해서 내 것처럼 토해내야 하는 연설문을 5년간 쓰면서 내 인생의 멘토로 모시게 됐다. 연설문은 서생(선비)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로 써야 한다고 충고해주신 분이 DJ."

 

당신만의 북극성을 띄워라

 

'아침편지' 1호를 쓴 게 청와대 재직 시절이었다.

 

"대통령 연설문 쓰는 게 글쟁이 최고의 관직이라는 둥, 고스트 라이터라는 둥 부러움을 받았지만 결국은 피 빨아먹는 직업이더라(웃음). 5년 동안 딱 사흘 쉬면서 일하다 보니 몸에 마비가 왔다. 고개가 안 돌아가더라. 몸은 마라톤으로 회복했지만 머리를 맑게 해줄 뭔가가 필요해서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마침 이메일이 확산되던 시점이라, 아는 사람 몇몇에게 띄운 글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거다."

 

처음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정치를 하려는 거다, 돈을 벌 요량이다 하면서.

 

"청와대 안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그래도 썼다. 그걸 쓰지 않으면 내가 죽을 판이니. 아침편지는 누구보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쓴 글이다."

 

책에 보니 '청와대는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그대로 표출되는 장'이라고 썼더라.

 

"마흔아홉 가지 은혜를 입고도 한 가지 일 때문에 등에 비수를 꽂는 사람이 허다하더라. 정치적 욕망을 꺾었다. 휴식할 겸 동유럽을 한 달간 여행하면서 인생의 밑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때 많은 수도원과 명상센터를 보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명상센터까지 운영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침편지를 몇 달 배달하면서 이 일이 단지 글재주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절감했다. 나 자신이 명상적 삶,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그날부터 명상공부를 시작했다. 잠자기 전 샤워를 하듯 마음의 샤워를 하는 방법에 대해. 종교적 해법과는 다르다. 종교는 자신의 문제를 절대자에게 맡기고 간구하는 것이다. 명상은 자기 안에서 찾는 거다. 자기 안의 신()을 통해서 찾는 것이다."

 

'아침편지'에 인용하는 문장은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하나?

 

"내 삶과 관련된 문장들이다. 그날 나를 성찰하게 한 글, 바로잡아준 글. 그게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꽂히더라. 미사여구 화려한 명문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오늘의 20대에게 '아침편지'를 준다면.

 

"꿈꿔라. 너만의 내비게이션을, 북극성을 띄워라. 방향만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달한다."

 

김윤덕 기자 : 2012.06.22 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