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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처분 받은 MBC박성호 기자회장이 시청자에게 띄우는 편지

풍월 사선암 2012. 6. 21. 07:38

[사회]해고처분 받은 MBC박성호 기자회장이 시청자에게 띄우는 편지

2012 06/26주간경향 981

저희가 기댈곳은 여러분밖에조금만 더 응원해주세요

 

95일 동안 파업을 벌인 KBS새노조와 반 년 넘게 파업을 벌인 국민일보 노조가 각기 지난 7일과 14일 현장으로 복귀했다. 두 노조 모두 사측과 공정보도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반면 15일로 138일을 채운 MBC의 경우, 노사는 전속력으로 마주보며 달리고 있다. MBC11일 오전 인사위원회를 열고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했다. 박 기자회장은 파업 시작 후 두 차례나 해고처분을 받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지난 2월의 제작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처음 해고처분을 받았다. 이후 재심에서 6개월 정직으로 감경됐다가 530일에 또 다시 해고처분을 받았는데, 이날 인사위원회에서 해고처분이 확정된 것이다. 현직 기자회장이 해고된 것은 MBC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11일 오후에 열린 인사위원회에서는 노조원 34명에 대해 사측이 대기발령을 냄으로써 파업 이후 사측이 대기발령을 낸 노조원이 모두 69명으로 늘었다.

 

<주간경향>은 초장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MBC 파업을 조명하기 위해 박성호 기자회장의 글을 싣는다. 박 기자회장은 두 통의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파업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연대를 호소하고, 파업을 외면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해를 구하는 내용의 편지다. <편집자 주>

 

◀박성호 기자회장(왼쪽)이 지난 125일 조합원들과 함께 MBC 여의도본사 현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MBC 사태에 관심 갖고 지켜보시는 분들에게

 

추운 겨울 칼바람을 안고 파업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반소매를 입고 다니는 무더운 여름입니다. 130일부터니까 13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아무리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기 위한 의로운 싸움이라지만, 그래도 저희들이 불편을 끼쳐드리는 기간이 길어져 마음이 무겁습니다. <무한도전>을 못 보니 생활이 허전하신 분들도 계실 테고, 채널 돌릴 때 으레 <11>은 건너뛰게 되는 분들도 많으실 테죠.

 

하지만 염치 불구하고 또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네요. KBS는 노사 타협으로 파업이 풀렸다는 소식 들으셨겠지만 MBC 파업은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여서요.

 

피바람입니다. 제가 두 번째 해고라는 초유의 기록으로 처단됨으로써 이번 파업 이후 해고자 4, 정직 31명이라는 대량 징계가 자행됐습니다. 게다가 무려 69명의 조합원들이 대기발령 조치를 당했습니다. 최일구 앵커, 김수진 기자를 비롯해서 <나는 가수다>의 신정수 PD, <내조의 여왕>을 연출한 김민식 PD까지. 다들 MBC 화면을 빛냈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인재들입니다. 이런 일꾼들을 파업 끝나면 전부 해고시키겠다고 한 임원이 엄포를 놓더군요. 이렇게 계속 칼 휘두르면 MBC에 누가 얼마나 남을는지요? 아예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지 김재철 측은 또다시 경력사원 수십 명을 뽑겠다고 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해고자는 계속 나올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자비한 칼춤에 대해서 회사의 한 간부께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누구나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요. 맞는 말씀이죠. 그런데 칼춤추면서 회사를 결딴내는 분들은 나중에 어떤 책임을 지실지.

 

힘든 싸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도 확고해지고요. 4개월 넘게 월급 못 받아가며 생계를 걸고 싸우는 언론인들에게 정치 파업운운하는 건 이제 모욕이라고 맞받아치고 싶습니다. 장기 파업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다치는 사람이 많이 나올수록 저희들이 기댈 곳은 시청자 여러분들밖에 없네요. 조금만 더 인내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일에 아침뉴스 앵커에서 잘리고, 229일에 제작거부 주도로 해고되고, 잠시 복직됐다가 530일에 회사 질서 문란으로 또다시 해고됐습니다. 목이 세 번 달아났는데, 그래도 만져보면 제 목 붙어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MBC 사태를 외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적법 절차로 임명된 사장을 퇴진하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저희 회사의 공식 입장입니다. 이 말이 설득력 있게 와 닿으시나요? 물론 적법 절차로 임명돼 임기가 보장된 조직의 장을 중간에 교체한다면 조직의 안정을 해할 우려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적법 절차에 따라 임명한 각료도 업무 수행에 커다란 과오가 있거나, 혹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면 교체하죠. 공영방송 사장만 예외라면 억지로 들리네요.

 

회사 업무용 법인카드로 업무시간에 미용실 가서 40만원어치 결제를 하고, 업무 연관성을 밝히는 소명자료는 없이 주말에 특급호텔에서 2년 동안 15000만원 정도 결제를 한 사장님이라면 어떤가요? 자신과 지방에 아파트를 함께 보러 다니고 집을 서로 사고 팔 만큼 가까운 사이의 지인(知人)에게, 자기 회사에서 벌이는 행사에 7년간 20억원어치의 일감을 몰아줬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어떤 유력 정치인은 이러시더군요. “MBC 파업 사태는 회사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노사 분쟁이다. 방송사도 민간 기업이다. 정치권에서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 역시 원칙적으론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죠. 하지만, 사기업인 한진중공업 사태는 시민사회의 관심에 이어서 나중에 정치권이 해결에 나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죠?

 

공영방송 MBC가 그저 민간 기업일까요?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국정감사 때 국회 감사를 받습니다. 사장 선임은 어떤가요? 사장을 선임하는 방문진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합니다. 감사하고 사람 뽑을 때는 국회와 정부가 관여하면서, 막상 일이 터지면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건가요? 그렇다면 인선에도 정치권이 개입하면 안 되는 게 논리상 맞을 것 같습니다.

 

공영방송이 전파를 허가 받을 때는 공정성을 준수하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바로 그 존립근거인 공정성을 놓고 분란이 생겼다면 감독기관이 조사에 나서든지, 국민의 대표기관이 해법을 모색하든지 하는 게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겠지요. 공영방송제를 택하고 있는 유럽에선 과거에 다 그렇게 했습니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615

박성호 MBC기자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