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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덕춘 골프채·새미 리 수영복, 문화재 된다

풍월 사선암 2012. 6. 19. 09:13

연덕춘(한국인 첫 프로골퍼) 골프채·새미 리(올림픽 남자 다이빙 첫 2연패) 수영복, 문화재 된다

 

연덕춘, 일 선수권대회서 우승, 프로골퍼 해외 진출 첫 세대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 인종차별 극복한 다이빙 영웅

 

1941년 스물다섯 연덕춘이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후 귀국하자 환영 인파가 경성 시내를 뒤덮었다. 5년 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에 견줄 만한 쾌거였다. 골프 불모지 조선의 청년 하나가 쟁쟁한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으니 그럴 만했다. '일본 치하의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단 한 사람이 출전해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선수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전적이다.' 한 일본 신문은 최근에도 연덕춘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기고를 실을 정도였다.

 

연덕춘(1916~2004)1930년대 일본 골프계 제패의 꿈을 키우며 사용했던 골프채가 18'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연덕춘은 열네 살 때 집 근처 경성구락부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처음 골프를 접했다. 막대기와 헌 공으로 장난삼아 놀다 일본인 프로골퍼가 준 낡은 아이언 하나로 골프실력을 키웠다. 열여덟에 일본에 골프유학을 간 연덕춘은 1935년 일본프로골프협회의 프로 자격증을 따 첫 한국인 프로골퍼가 됐다.

 

연덕춘은 해방 후 불모지였던 한국 골프를 개척한 선구자였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내엔 변변한 골프장도 없었고, 대회도 열리지 않았다. 해외로 나간 그는 1956년 필리핀에서 열린 극동오픈골프선수권에서 6, 같은 해 출전한 영국 골프월드컵에선 24위를 기록했다. 최경주·양용은·박세리·신지애 등 세계무대를 휩쓴 프로골퍼 해외 진출 첫 세대가 연덕춘인 셈이다. 연덕춘은 1963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모태가 된 '프로골프회'를 만들었고, 1968년 협회 출범도 주도했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골프클럽은 아이언과 숏아이언, 퍼터, 드라이버 각 1점씩으로 영국 잭 화이트사() 제품이다. 연덕춘은 이 골프클럽을 1985년 독립기념관에서 유물을 모을 때 기증했다.

 

(왼쪽 사진)1941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오픈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고 있는 연덕춘.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하자 환영 인파가 경성 시내를 뒤덮었다, (오른쪽 사진)1953년부터 3년간 새미 리(왼쪽)는 한국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다이빙선수를 지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새미 리를 만나 격려하고 있다. /대한골프협회 제공(왼쪽)

 

올림픽에서 연거푸 남자 다이빙 금메달을 딴 새미 리(Sammy Lee·92) 선수가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우승 당시 입었던 수영복과 수영모·운동복도 함께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는 하와이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다이빙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을 2연패 했다. 1960년과 1964년 미국의 다이빙 코치로 있으면서 미국에 금메달을 안겨줬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때 손기정옹과 함께 성화 봉송 주자로 뛰었다.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 미국의 다이빙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2010년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에 뽑혔다. 그해 미국 LA 한인타운 내에 그의 이름을 딴 '새미 리 광장'이 지정되기도 했다.

 

새미 리는 IOC 위원 등 국제 스포츠 인사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뛰어들어, 2018년 평창 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 새미 리는 독립기념관이 미주한인들의 유물을 수집하던 2010, 수영복 1점과 모자 2, 운동복 상의 2, 하의 1점을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181920년대 초 전()조선야구대회 청년단 우승기, 1961년부터 34년간 사용한 전국체육대회 우승기 등 근대체육유물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조선일보 김기철 기자 : 201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