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경제기적 씨앗 된 해외건설… 어느덧 5000억달러

풍월 사선암 2012. 6. 14. 09:46

경제기적 씨앗 된 해외건설어느덧 5000억달러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 47년 만에 5000억달러 돌파

70·80년대 유일한 달러벌이, 석유수입 대금 상당액 충당지금도 단일 품목 수출 1

최대 규모 리비아 대수로,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세계 건설 역사 새로 써

 

1966년 태국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도시 '파타니' 고속도로 건설 현장. 작업복 차림의 한 사내가 전화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멀쩡한 아스팔트가 왜 이렇게 녹아내리는 거야! 대한민국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아스팔트 기술자를 당장 찾아와!"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파타니 고속도로 공사는 1965년 우리나라가 최초로 수주한 해외공사였다. 현대건설은 태국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고려하지 못한 탓에 아스콘을 배합해 만든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수주액은 540만달러(60여 억원).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지만, 공사액의 절반이 넘는 300만달러(34억원)에 달하는 손해가 났다. 정 회장은 "손해로 끝났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사를 끝내, 천금을 주고서도 사지 못할 신뢰를 격전의 훈장처럼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시작한 대한민국의 해외건설 공사수주액이 진출 47년 만에 5000억달러를 돌파했다. 국토해양부는 한화그룹이 지난 5월 계약을 체결한 이라크 신도시 사업(78억달러)14일자로 신고해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이 5013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해외건설, 1970~8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원천

 

지금은 대한민국이 만든 자동차와 반도체, 휴대전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기술과 자본력이 없던 1970~80년대 해외건설은 사실상 유일한 '달러벌이' 창구였다. 해외건설협회 김종현 이사는 "1970~80년대 한국이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근로자들이 40~5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과 정글에서 밤새워 일하며 외화를 벌어들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2차 석유파동(1979)의 후유증을 겪었던 1981~19844년 동안 우리나라 석유수입 대금의 36'중동 달러'로 메울 정도로 경제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었다.

 

해외건설 시장에서 수주한 공사의 60%가 집중돼 있는 중동 지역에 1호로 진출한 기업은 삼환기업. 삼환은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 도로 확장공사를 수주했다. 당시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성이 '40일 이내에 완공해 달라'고 요구하자 '8시간 3교대' 공사라는 저돌적인 공사를 강행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서 야간 공사를 하기 위해 수백개의 횃불을 밝히고 공사를 했다.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은 "파이잘 사우디 국왕이 건설현장에서 한국 기업이 공기를 맞추기 위해 횃불로 불야성을 이루고 공사하는 것을 보고 감명해 '2차 공사도 삼환기업에 주라'는 특명을 내리기도 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한국 건설사들 세계적인 기록 갈아 치워

 

한국 건설업체들은 전 세계 건설사에 굵직한 기록을 세웠다. 현대건설은 1976년 당시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라던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을 94000만달러에 수주했다. 당시 공사액은 4600억원.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25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워낙 초대형 공사여서 현지 근로자 수가 한때 20만명에 달했다""급여도 당시 한국의 근로자 임금보다 3~4배 많아 서로 중동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남아 있는 부인을 노린 '제비족'이라는 신종 직업이 생기기도 했다.

 

동아건설이 1983년 리비아에서 대수로공사를 1056000만달러에 수주, 단일공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19846월에 시작된 공사는 200312월에 마무리되는 19년간의 대역사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도 한국 건설사가 지었다. 삼성물산이 2005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수주해 2009년 완공한 '부르즈 칼리파'828m(160)로 전 세계 최고층 빌딩이다. 삼성물산은 이 공사를 3600만달러에 수주해 47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자동차·반도체 앞지르고 수출산업 1

 

최근 해외건설 공사는 플랜트와 원전건설, 대규모 도시건설 등으로 옮겨가 한 건 공사 금액이 10억달러가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수주한 UAE 원전은 공사비가 186억달러 선. 당시 한국전력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프랑스의 아레바, 미국의 WEC, GE 등 원전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해 공사를 따냈다. 지난달 한화그룹이 이라크에서 수주한 신도시 건설 공사도 775000만달러에 달한다.

 

해외건설 공사 금액이 커지면서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상품 수출 1위는 2006년에는 반도체(332억달러), 2007년에는 자동차(345억달러), 2011년에는 조선(566억달러)이 차지했다. 이에 비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2007398억달러를 기록해 단일품목 1위로 올라선 뒤 4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재덕 해외건설협회장은 "지금 먹고살 만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해외건설 현장에서 피땀을 흘린 근로자에게 모두 빚을 지고 있다""세계건설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해외건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석우 기자 / 입력 : 2012.06.13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