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한 사람을 사랑했네 / 이정하

풍월 사선암 2012. 5. 20. 20:43

 

한 사람을 사랑했네 / 이정하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도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 이정하

 

사랑을 얻고 나는 오래도록 슬펐다.

사랑을 얻는다는 건

너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아니었으므로.

 

너를 체념하고 보내는 것이었으므로.

너를 얻어도, 혹은 너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

 

아아 나는 당신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네.

미치도록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 다 살았네.

세상살이 이제 그만 접고 싶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2 / 이정하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강물이 흐르고 있지만 내 발목을 적시던

그때의 물이 아니듯, 바람이 줄곧 불고 있지만

내 옷깃을 그치던 그때의 바람이 아니듯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네가 내 앞에 서 있지만

그때의 너는 이미 아니다.

내 가슴을 적시던 너는 없다.

네가 보는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때의 너와 난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번 떠난 것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아,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

그 부질 없음이여.

 

한 사람을 사랑했네 3 / 이정하

 

오늘 또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말았다.

나는 그를 잊었는데

 

내 발걸음은...,

그를 잊지 않았나 보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4 / 이정하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할 때

당신은 또 내게 오십니다.

한동안 힘들고 외로워도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 할 때

당신은 또 이미 저만치 오십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그대여,

잊고자 할 때

그대는 내게 더 가득 쌓이는 것을.

너무 깊숙이 내 안에 있어

이제는 꺼낼 수도 없는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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