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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 유비의 성공 포인트는 '도원결의' 인맥

풍월 사선암 2012. 5. 5. 10:00

 

촌사람 유비의 성공 포인트는 '도원결의' 인맥

인맥, 인생 성적표

 

일 때문에 만난 분이었는데 어쩌다 고향 얘기가 나왔다. 알고 보니 그분 고향은 내 아버지의 고향과 멀지 않았다. 나도 어렸을 때 거기 가서 들판의 수숫대를 빨아먹으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더라. 처음에는 나를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 압구정동 카페 같은 데나 어울리는 사람으로 봤던 모양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일 관계로 알고 지내던 분인데 아이 문제로 고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아는 정보를 알려줬더니 큰 도움이 됐다며 정말로 고마워했다.

 

인맥은 형성보다 관리. 개인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눈 녹듯 사라진다. 인맥관리에는 조건보다 무조건의 만남, 일만 아니라 일 이외의 동질감이 있어야 한다. 30명을 만나면 그중 3명은 내 사람으로 만든다는 식의 목표도 필요하다. 당장 뭔가를 주고받겠다는 뜻이 아니다. 주는 만큼 언젠가는 돌려주는 게 인간관계다.”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한 기업체 간부급 여성의 말입니다. 그 앞에서 인맥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줄줄 쏟아내더군요. 이분만이 아닐 겁니다. 사회적 이력이 어느 정도 쌓인 분들이라면 대개 인맥에 대한 저마다의 철학과 방식이 있게 마련이죠. 그만큼 인맥은 우리네 사회생활에서 비중이 큽니다. 직장인들이 잘하든 못하든 인맥관리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몇몇 대기업은 간부 승진을 앞둔 사원들을 대상으로 인맥관리를 따로 교육하기도 합니다. 물질적 재산만이 아니라 인맥, 즉 사람도 자산인 시대입니다. 불리고 유지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든다는 점 역시 인맥이나 재산이나 비슷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가장 큰 자산도 바로 사람입니다. 유비가 강력한 경쟁자 조조를 제칠 수 있었던 데는 도원결의로 맺어진 관우·장비를 비롯해 여러 인재의 공이 큽니다. 카리스마 강하고 스스로의 지략도 뛰어났던 조조에 비하면 유비는 사실 화려하게 내세울 게 많지는 않습니다. 집안이나 재력도 그렇죠. 조조가 기세등등한 최고위층 가문에서 자란 데 비해 유비는 황실의 후예라고는 해도 짚신·돗자리를 만들며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조조보다 유비가 나은 점은 흔히 인덕(人德)이 높다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렇다고 인덕이 저절로 사람을 불러모은 건 아닌 듯합니다.

 

삼국지에는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유명한 고사가 나옵니다. 유비가 제갈량의 집을 세 번 찾아간 끝에 자기 사람으로 얻은 일이죠. 당시 제갈량은 27, 유비는 47세였다고 합니다. 스무 살 손아래 젊은이를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건 제갈량이 대단한 인재임과 동시에 유비가 이 사람에게 들인 공을 짐작하게 합니다.

 

현대의 인맥관리 달인들이 인간관계에 들이는 공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인맥관리에 서툰 사람들은 대개 서둘러 열매를 얻으려고 조급증을 내다 관계를 그르치기도 하는데, 중앙SUNDAY가 만난 고수들의 조언은 달랐습니다. “인맥관리는 나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 말을 한 기업인은 아날로그 시대부터 모은 명함이 2만 장이 넘고, 디지털 시대에는 휴대전화 3개와 트위터까지 활용해 수시로 인맥을 관리하는 마당발입니다. 인맥의 씨를 뿌릴 터는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습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덕분입니다. 지금은 생판 모르던 사람들과도 인터넷카페·블로그·미니홈피·트위터 등등을 통해 친구가 되고 정보를 나눌 수 있습니다. 평범한 개인이 만든 디지털 공간이 수만 명이 드나드는 광장이 되기도 합니다. 수세기 전 사람들이 한평생 알게 된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도 지금은 하루아침에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전부 인맥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도 혈연·지연·학연 등의 전통적 연줄을 넘어 인맥을 확장하는 길이 넓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인맥이라는 말이 늘 긍정적 뉘앙스인 건 아닙니다. 어떤 인맥이든 그들만의 리그가 될 때는 적잖은 폐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인맥을 관리한다는 표현에도 거부감을 갖는 시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듯해서죠. 인맥관리의 달인들이 뛰어난 점은 여기에도 드러납니다.

 

이들의 인맥관리 노하우는 예로부터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도리로 강조해온 덕목들과 닮았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내가 자리에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운다’ ‘내가 일을 이루고 싶으면 먼저 남을 이루어준다같은 말은 현대의 인맥관리에도 요긴합니다. 지금 바로 내 이해득실을 따지는 대신, 상대에게 먼저 베풀면서 인간관계를 다져가는 인맥관리 고수들의 방식과 비슷합니다. 여기저기 퍼져 있는 이른바 인맥관리 18계명·10계명 등과도 통할 듯합니다. 이런 데 나오는 계명이란 남다른 묘수라기보다 네 밥값은 네가 내고, 남의 밥값도 네가 내라’ ‘평소에 잘해라’ ‘남의 험담을 하지 마라’ ‘먼저 인간이 돼라등등 인간관계의 기본기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채근담에도 좋은 말이 여럿 입니다. 여기에는 하늘이 내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내 덕을 후하게 닦아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채근담의 저자는 중국 명나라 때 사람 홍자성입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덕을 잘 닦았다면 적어도 인복(人福)은 누렸을 겁니다. 복은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라지요. 인맥관리는 사람 사이에 묻혀 있는 인복이라는 금맥을 캐는 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