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문화 아이콘, 제과업계의 지존 성심당(聖心堂)을 찾아서
[성심당] 동네 허름한 빵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대전 시민의 사랑 듬뿍 받아
“보름에 한 번 정도 단팥빵을 꼭 사러 와요. 성심당 빵을 먹으면 속이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아서 근처에 나오면 꼭 들리게 됩니다.” 장정훈(50세, 男, 대전시 월평동)
작은 찐빵집에서 시작된 ‘나눔의 문화’
지난 3월 11일(일),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점인 성심당(중구 은행동 소재)에 들어선 취재진은 계산을 하기 위해 매장을 반 바퀴 둘러선 사람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 시간이었지만, 시식용 빵을 맛보며 고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성심당의 창업주 故 임길순 회장은 6·25 전쟁 중인 1951년 1·4후퇴 때 내려와 대전역 앞에 찐빵집을 차렸다. 당시는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팠기에 먹을 것 하나가 생명과도 같았던 시기였다. 경제적 이익보다 나눔에 더 큰 의미를 둔 임길순 회장은 전쟁고아 등 배고픈 이웃들에게 당일 팔지 못한 빵을 전부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現 임영진 사장은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물려받아 지금도 당일 팔지 못하고 남은 빵은 전부 고아원·양로원·공부방 등으로 보낸다고 한다. 그 빵의 양을 계산하면 매년 2억~2억5천만 원 정도를 기부하는 셈이다. 여기서 오늘날 성심당의 성장 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대전 시민들은 바로 성심당의 이런 시민사랑 정신에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담은 손맛으로 만듭니다”
56년 전 허름한 찐빵집에서 시작된 성심당은 현재 1층에 베이커리 성심당을 중심으로 테라스 키친(베이커리 레스토랑), 플라잉팬(이탈리아 레스토랑), 우동야(일본식 우동), 삐아또(파스타) 등 외식업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성심당의 박삼화 부장에게 전국에서 많은 고객들이 성심당 빵 맛을 잊지 못해 찾게 되는 비결을 물어봤다.
“식품을 다루기 때문에 위생과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담아 직접 손으로 만드는 손맛이 중요하다. 또한 인공 발효제보다 최고 18시간 이상 발효시키는 천연 발효법을 추구해 언제 어디서 누가 드셔도 속이 편한 빵을 만들려고 한다.”
직원 모두 한마음 되어 대기업 제과점 물리쳐
창업 때부터 대전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성심당에도 시련은 있었다. 8년 전 화재로 3층 빵공장과 1층 매장의 3분의 1이 전소되어, 당시 제과업계에서는 성심당이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화재 다음 날 실습생부터 전 직원에 이르기까지 복구에 힘써 거의 일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정상영업을 재개했다고 한다.
박 부장은 “평소 사장님이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직원들이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치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다면 아마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심당 내에는 전 직원(약 160명)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임영진 사장의 뜻에 따라 ‘한가족 신문’이 매주 발행되어 일주일 동안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 직원이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프랜차이즈 기업에도 흔들림이 없다.
박 부장은 “고객의 성향에 맞춰 원하는 제품을 재빨리 만들어 낼 수 있는 윈도우 베이커리가 프랜차이즈보다 장점이 더 많다. 대기업이라는 것에 먼저 위축되지 말고,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장점을 잘 살리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수많은 중소 제과점 사업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새 힘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주간기쁜소식 | 2012.03.16 정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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