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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결혼시킬 때마다 재산의 20% 사라져…

풍월 사선암 2012. 4. 7. 16:44

"결혼시킬 때마다 재산의 20% 사라져노후대책? 꿈 같은 얘기"

 

"평생 걸려 아등바등 35000만원 모았어요. 딸 시집갈 때 1억 헐었어요. 나머지 탈탈 털어 아들 신혼집 얻어줬어요. 애들한테 '엄마는 너희들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서글퍼요. 아끼고 살았는데 그 결과가 온데간데없어요. 몸은 나이 먹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20대로 되돌아간 느낌이에요. 감정적으로 힘들어요. 내가 그동안 뭐했나. 이렇게 쓰려고 그만큼 아꼈던 걸까. 내 인생인데 내 몫이 하나도 없구나."(최영희·가명·59·초등학교 교사)

 

'부모의 눈물로 올리는 웨딩마치' 시리즈는 반향이 뜨거웠다. 편집국에 격려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종이 신문 독자 180만명 외에도 1000만명 넘는 네티즌이 조선닷컴(652만명)과 포털사이트 다음·네이트를 통해 시리즈를 읽었다. 7000개 넘는 댓글 대다수가 "이참에 결혼문화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장 절박한 게 50~60대 혼주들 목소리였다. 나라가 가난할 때 개미처럼 청춘을 보낸 세대, 이젠 머리도 세고 어깨도 저린데 조기퇴직 긴 노년 자녀 결혼의 삼각파도에 휘말려 겨우 마련한 집 한 채가 위태로운 세대다.

 

특히 아들 가진 부모들의 고통이 컸다. 본지가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310쌍을 조사한 결과, 전체 결혼비용 4분의 3을 신랑 측이 부담하고 있었다(2808만원 중 15707만원). 부모 자산에 따라 전 재산 5억 미만 5억 이상 10억 미만 10억 이상으로 나눠 분석해보니, 잘사는 집이나 못사는 집이나 아들 장가보내는 비용이 딸 시집보내는 비용보다 세 배 들었다.

 

"9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어요. 보험금으로 옷가게(100·30) 해서 시어머니 부양하고 외아들(30)을 가르쳤어요. 얼마 전 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어요. 200만원 버는 처지라 저축도 없고. 고민 끝에 가게를 팔아 아들한테 1억원을 줬어요. 남은 돈으로 대출 끼고 절반 크기 가게를 얻어 다른 장사를 해보려고요. 참 힘드네요. 요즘 안 쓰던 가계부를 쓰고 있어요. 몰던 차도 팔았습니다."(안경옥·가명·53)

 

 

신랑·신부 결혼비용 분담비율은 어느 계층이나 31이었지만, 그 액수가 각자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컸다. 5억 미만 서민 가정에서 아들 결혼에 쓰는 돈은 부모 자산 중 최소 24%(12062만원), 5억 이상 10억 미만 중산층 가정에서 쓰는 돈(17807만원)은 최소 18%였다. 아들 장가보내는 일이 부모가 평생 걸려 마련한 삶의 기반을 허무는 일이나 진배없단 얘기다.

 

"서울 강북에서 구멍가게를 하다 지금은 가게를 접고 남편(64) 경비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요. 10월 외동딸(32)이 결혼하는데, 서울 시내 아파트는 작은 것(66·20)2억이 넘고 다세대주택도 1억 갖곤 어려워요.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자기 힘으로 그 돈 모을 수 있는 월급쟁이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예비 사돈도 어렵게 사는데 '어떻게든 전셋값 보태주겠다'고 했어요. 우리는 딸 가진 부모라 마음의 짐이 덜하지만 그쪽은 울고 싶겠지요."(한영희·가명·59)

 

독자 박선영(가명·45)씨는 "요즘 엄마들 모임에 가면 '무자식은 금메달, 딸만 있으면 은메달,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아들 셋 이상이면 거꾸로 목메달'이라고 한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박씨도 '목메달'을 무겁게 멘 주부다.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과거를 돌아봐야 합니다. 저희 시댁은 버스도 안 들어가던 충청도 깡촌입니다. 고학해서 대학 다니던 남편과 지하 월세방에서 출발했습니다. 고급스러운 패물은 못 받았지만 남편이 아르바이트해서 사준 가느다란 사파이어 목걸이가 저는 3부 다이아보다 좋았습니다.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쌍 캠페인'이 정말 고맙습니다."

 

양가가 의논해 1000만원 안팎으로 간소하게 식을 치르고 예물·예단만 생략해도 평균 결혼비용이 3000만원 이상 줄어든다. 신부 부모가 지금보다 더 부담하지 않아도 신랑 부모가 한숨 돌릴 수 있는 돈이다.

 

조선일보 김수혜, 김효정 기자 / 2012.04.07

 

 

"아파트 팔아 아들 전세금 주고 다세대로 이사'집은 남자'라는 통념이 '체면의 치킨게임' 조장"

 

[이것만 바뀌어도 변한다] '집은 남자, 예단은 여자' 통념

 

"회사원 아들(33)에게 신혼집 얻어주려고 살던 집 담보 잡고 대출받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남편(62)이 기술이 있어 아직 중소기업에 다니니 다행입니다. 수입이 없는 제 친구는 송파구 아파트(142·43) 팔아 봉천동에 아들 전셋집 마련해주고 아파트 관리비 안 나오는 수도권 다세대주택으로 이사 갔습니다. 우리 부부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입니다." (독자 정영자·가명·60)

 

노후를 준비해야 할 50·60대가 평생 모은 재산을 뭉텅 끊어 다 큰 자식 결혼시키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해마다 뛰는 집값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손 놓고 있으면 영원히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집은 남자, 예단은 여자'라는 공식만 깨도 숨통 트일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 공식이 힘을 갖는 한 양가가 끊임없이 '체면의 치킨게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치동 아파트(142·43)에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들 결혼시키려니 감당이 안 되더군요. 아파트 팔아 아들 전셋집 얻어주고 우리 부부는 과천으로 이사 갔습니다. 우리도 이런데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감당하는지 상상이 안 됩니다. 아들 보내고 정신이 팍 드는 게 아, 딸아이는 어쩌나." (중앙 부처 1급 공무원 김영수·가명·53)

 

김씨가 팔았다는 대치동 아파트는 아버지 대()부터 2대에 걸쳐 쌓아올린 재산이었다. 김씨는 '집은 남자가 해와야 한다'는 통념에 밀려 2대의 땀을 허물어뜨렸다.

 

"우리 세대는 아들이 좋다고 양수 검사받아가며 아들 낳았는데 아들 셋 결혼시켜 보니 아들 가진 부모는 돈이 있으나 없으나 괴롭습니다. 시부모가 집 얻을 돈 못 대주면 시부모나 아들이나 며느리 앞에 기가 죽습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집 사주면 며느리가 고마워하는 줄 압니까? 당연한 줄 압니다. 얼마나 쓸쓸하고 괘씸한 줄 압니까? 딸 가진 엄마는 사위 호주머니에 동전이 몇 개 들었는지 알아도 아들 가진 엄마는 집 사줘도 며느리 찬장 못 열어봅니다."(정인옥·가명·65)

 

문제는 아들 부모만 괴롭고 끝나지 않는 데 있다. 한 독자는 "신혼집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었는데, 신문에선 '예단 욕심 내지 말라'고 시어머니만 욕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그 바람에 딸 가진 부모는 '차라리 이 돈 그냥 애들 주자' 소리를 꾹꾹 삼키며 너나없이 이불·반상기·은수저를 사고 명품 가방에 현금을 넣어 사돈댁에 보내게 된다. 집안 싸움 상당 부분이 바로 이 대목에서 난다. "핸드백 때문에 새벽에 엄마와 아들이 대성통곡하며 싸우는 집안도 여럿 봤다. 누구를 위한 핸드백인가." (조선닷컴 댓글·아이디 theandersens)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유성렬 소장(백석대 교수)"예식 규모를 줄이고 예물·예단을 생략해 그 돈으로 양가가 집값을 분담하는 것이 보편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남자가 집 해와야 한다'는 통념부터 깨져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석남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