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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小國)의 생존법

풍월 사선암 2012. 4. 3. 11:02

 -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Lowendenkmal) -

 

소국(小國)의 생존법

 

국토의 75%가 산악지대고, 별다른 자원도 없는 스위스가 부국(富國)이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스위스 국부(國富)의 기초를 닦은 것은 외국에 용병으로 나간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시절 우리 선배 세대가 독일 탄광과 중동 사막에서 땀을 흘렸듯이, 스위스의 선조들은 유럽 각국에 용병으로 고용돼 '외화벌이'를 했다. 루체른의 빙하공원에 있는 '죽어가는 사자상'선조들의 이런 희생을 잊지 않으려는 기념물이다. 용병을 상징하는 사자는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프랑스 왕을 상징하는 흰 백합이 새겨진 방패를 보호한다. 1792년 파리 튈르리 궁전(현재 루브르 미술관)에 시민혁명군이 몰려와 루이 16세는 도망을 갔지만, 스위스 용병 700여명은 장렬히 옥쇄했다. 시민군이 항복을 권했지만 "우리가 항복하면 스위스인들의 신용이 떨어져 후손들이 더이상 용병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스위스에 신용이 생명인 은행업이 발달한 데는 용병들이 보내는 외화를 송금·환전하는 과정에서 금융 노하우가 축적된데다, 유럽 귀족들이 스위스인들에 대해 갖는 신뢰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스위스인들이 쌓은 신용 자산은 로마 교황청이 500년 이상 스위스 용병을 근위병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약속을 지키는 데 필수도구인 시계 산업이 스위스에서 유독 발달한 것도 이런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스위스가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번영을 구가하는 또 다른 비결은 철저한 실용주의 정신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스위스 철도를 이용해 동맹국인 이탈리아로 무기를 보내자, 스위스는 독일 열차를 세워 무기를 압수했다. 독일이 불만을 품고 침공하려 하자, 스위스는 40만 민병대를 총동원해 터널과 교량을 모두 파괴하겠다고 맞받아쳤다. 그런데 입으론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뒤로는 협상을 했다. 스위스군 최고사령관 앙리 기장 장군은 베른 인근 시골마을 레스토랑에서 나치스 친위대 최고간부와 극비리에 만났다. 스위스 쪽엔 기록이 없지만 독일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당시 기장 장군은 "독일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민병대 동원령을 내리지 않겠다"면서 독일을 구슬렸다.

 

스위스에는 직업군인이 3700명뿐이고, 민병대가 국방을 담당한다. 민병대원이 되면 20세부터 42세까지 매년 10여일씩 훈련을 받는다. 병역 의무를 귀찮아할 만도 하지만 스위스 국민들은 2001년 민병제 폐지안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다. 찬성률은 21%에 그쳤다. 스위스는 바다가 없는 나라지만 자국 상선들의 물자보급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24척의 함대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스위스 국민들은 연간 유급휴가 일수를 4주에서 6주로 늘리는 안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다. 유급휴가의 증가가 기업의 비용부담을 늘려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는 걸 걱정해 '돈 받고 놀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권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복지 공약, 한미 FTA 철폐,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같은 이슈를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스위스를 보면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소국(小國)의 생존법이 보인다.

 

조선일보 김홍수 경제부 차장 / 입력 : 201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