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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문화재 '서울 4대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풍월 사선암 2012. 3. 13. 10:57

소중한 문화재 '서울 4대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임금님이 살던 경복궁을 중심으로 홍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 동서남북에 4개 대문을 만들었어요.

북쪽의 숙정문은 북한산에 묻혀 서울 시민도 위치를 잘 몰라요.

4대문 사이에 있는 4소문은 외적 침입 땐 비밀 통로가 됐어요.

 

2008210, 우리나라 '국보 1' 숭례문이 어이없는 화재로 새까맣게 불타버렸습니다. 4년이 지난 현재, 숭례문은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자'는 국민의 소망을 담아 예전의 얼굴을 되찾아가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상량식(上樑式)도 치러졌습니다. 상량식은 건물의 중심인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면서 공사와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을 적은 상량문을 받들어 모시는 의식이지요. 상량식을 한다는 건 숭례문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돈의문은 2013년에 들어설 복원 가상도. 숭례문은 2008년 화재 이전의 사진.

 

숭례문은 우리나라 최고의 장인(기술자)들이 전통도구와 전통기법을 동원해 복원하고 있어요. 복원에 무려 1678500만원의 돈이 쓰인다고 해요. 숭례문이 어떤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사람, 비용이 들어가는 걸까요? 

 

숭례문은 서울 4대문 중 가장 큰 문이에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고려시대의 수도 개경(황해도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1394년에 수도를 옮겨왔어요. 이후 한양을 지키기 위한 성벽을 쌓고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네 개의 큰 문과 작은 문을 각각 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4대문과 4소문입니다. 이 중 숭례문은 성곽의 정문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관문을 상징해요. 남쪽에 위치해서 '남대문'이라고 불리지만, 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단지 방향만 가리키며 4대문에 담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의미를 낮춰 부른 이름입니다. 숭례문은 서울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절제미와 균형미가 있는 조선 초기 건축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국보 1호로 정했습니다.

 

나머지 4대문은 흥인지문(동쪽돈의문(서쪽숙정문(북쪽)이에요. 흥인지문은 우리나라 보물 1호로 장식과 기교가 화려한 조선 후기 건축물의 특징이 나타나 있지요. 돈의문은 우여곡절이 많은 대문입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폐쇄되었다가 다시 수리해 사용되기도 했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5년 강제 철거되어 흔적조차 사라져 지금은 복원하는 중이에요.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에서 출발하여 내사산(인왕산, 백악산, 낙산, 목멱산)과 4대문, 4소문을 돌아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으로 돌아오는 총 10시간의 서울성곽일주코스에서 펼쳐진다.(출처 : KYC)

 

숙정문은 북한산 동쪽 계곡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서울 시민조차 위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후 이름이 바뀌었죠. 북쪽 방위에 맞춰 세우기는 했지만 문앞에 거대한 북한산이 버티고 있어서 실제로 대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지형이 험해 사람의 왕래가 적었고, 평소엔 문을 닫아 비밀 통로로 사용했죠.

 

4대문 사이사이에 위치한 4소문으로는 동북쪽의 혜화문, 서남쪽의 소의문, 동남쪽의 광희문, 서북쪽의 창의문이 있습니다. 4대문보다 눈에 덜 띄어, 외적의 침입 땐 비상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이 주로 숭례문을 통해 입성한 반면, 북쪽 여진족이나 남쪽 왜(일본)의 사신은 4소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또 광희문과 소의문은 한양 백성들의 저승문으로 통했는데, 이곳으로만 시체가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죠.

 

4대문·4소문으로 이뤄진 한양도성은 임금이 사는 경복궁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군사방어선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지요. 그중 숭례문은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숭례문은 지붕에 기와도 얹고 단청 작업도 하면서 주변정비에 들어가 올해 말 우리 곁으로 다시 옵니다.

 

조선일보 박정민 기자 / 입력 : 20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