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MBC사우회

'北김왕조', 門열면 살고 門닫으면 죽는다!

풍월 사선암 2012. 3. 2. 20:12

'김왕조', 열면 살고 닫으면 죽는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사태 관리 빈틈없는 국제적 협조망구축해야

 

북한에는 일단 김정은 시대의 막이 올랐으나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변화가, 가까운 시일 안에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한국 국민들의 생각이 아닐까.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 하겠는가? '김 왕조''선군통치체제''민생'으로 바꾸겠는가? 오히려 국내안정을 이유로 '김 왕조' 방식인 김정일 유훈통치가 강화되고 당장은, 아마도 1년 정도는 더 굳게 문을 잠글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추성춘 생활정치아카데미 원장. ©브레이크뉴스

 

1219일 정오 무렵. 부산행 고속열차 안. 차내 뉴스 화면에 '긴급뉴스 김정일 사망'의 자막이 떴다. 12시에 '북한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소식을 알고는 있었으나 '놀랄 만한 뉴스'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차내 승객들의 표정은 너무나 차분했다. 한 두 사람이 휴대폰으로 어딘가 연결해 "뉴스 봤느냐'고 물어보는 정도. 나는 경남 고성에서 오후에 있을 '생활정치 텃밭포럼' 결성식을 격려하러 가는 중이었다. 고성 행사장. 포럼회원 60여명이 모여 포럼 결성을 하고 나는 예정된 '주민참여에 의한 지방자치 개혁'에 관해 말하기 전에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참석한 주민과 지방의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하늘의 섭리에 따라 이 순간에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는데, 반응은?. 별다른 표정이나 관심을 읽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

 

19일 저녁 7시 서울역에서 탄 택시의 기사에게 승객들이 무슨 말을 하드냐고 묻자 "별로 말 안한다. 무관심 한 것 같다.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지 누가 알겠는가. 언론·전문가들의 흥분과 일반 시민과는 거리가 있나 봐요. 살림살이 걱정이 더 커서 인가요?라는 설명이다.

 

그냥 길 오다가다 잠시 듣고 본 장면이지만 김정일 사망 발표 직후 거리표정에서는 어떤 기대나 그렇다고 불안을 느낄 정도의 동요는 없었던 것 같다. 경제장관이 "사재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뉴스 자막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이것은 국민들의 북한문제에 대한 일종의 체념(諦念)상황을 반영하는 듯 싶다. 한편으로는 안보의식이 해이된 측면도 있겠으나 결국은 북한에서 어떠한 바람직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버린 무관심과 체념의 심리상태가 아닐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관계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면서 '퍼준다'는 비난도 샀지만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현 정권은 '무관심도 외교전략'이라면서 연락을 끊고 압박을 가했지만 변화는커녕 국지적 도발로 맞섰다. 더 이상 북한에 무엇을 기대하고 무슨 변화를 기다릴 수 있는가. 북한문제에 대한 국민적 심리상태는 이제 통일의 꿈마저도 멀리 사라지게 했고 급한 것은 갈수록 격화되는 경제의 격차, 양극화로 쪼개지는 한국사회를 어떻게 봉합해 갈 것 인가다.

 

북한의 새 지도부는 무엇보다 한국국민들의 '김왕조'에 대한 냉엄한 평가와 인식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북한은 스스로 변하지 못할 것이라는 남한동포들의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절망감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번기회가 하늘이 준 기회로 알고 국제사회를 향해 국가를 과감히 '열어가야'한다. 국제사회의 협력 없이 북한은 살아 날 수 없다. 지금도 중국의 도움 없이는 지탱할 수 없지 않는가? 북한이 주장하는 '자립'은 고립일 뿐 지금은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류와 협력만이 국가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경제도 안보도 모두 다자간 협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확립하는 가장 빠른 길은 국제사회와의 대결이 아니라 협조로 가는 것이다.

 

어차피 당장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지도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대결을 피하고 경제를 회복시켜 인민생활을 개선해 가는 것이다.

 

남북관계 20년 주기

 

남북관계는 재목에 옹이와 매듭이 있는 것처럼 20년 전후를 한 고비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왔다. 19727.4 남북공동성명이 나왔고 1991126일 문선명·김일성 단독회담에 이어 6일 뒤 서울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정식 채택됐다. 그런데 이 20년 주기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20년 전후로 격변을 거치면서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19727.4남북공동성명은 닉슨 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과 이어지는 일본·중국 수교와 물려 있고 199112월 남북합의서는 같은 달 소련의 붕괴와 독일통일이라는 국제정세와 동시진행형이다.

 

20년 전 김일성 주석이 통일그룹의 문선명 평화연합총재와 회담하고 남북화해를 언급한 뒤 곧바로 남북합의서가 채택된 지 꼭 20년이 된 같은 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해 남북관계는 또 한 고비를 맞게 된 것이다. 2010년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몰고 온 것은 G20 서울정상회의로 그동안 G7이 장악했던 국제문제가 신흥국들의 이니셔티브로 전환된 것이다. 또한 세계경제의 성장 센터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오고, 미국이 태평양국가임을 선언했으며,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중심센터로 부상. 글로벌 무역체제가 한층 더 고착되고 북한의 고립화가 심화되는 그야말로 급변사태가 휘몰아치고 있다.

 

국제정세든 남북관계든 이렇게 보면 체제(體制)20년이 되면 제도로서의 피로와 노쇠 현상이 오고 따라서 수정과 과감한 변혁이 나타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일은 핵무기를 갖고 벼랑 끝 외교전술로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300만명이 굶어 죽었다. 이런 가운데 내년 4월 김일성 출생 100주년에 강성대국을 어떻게 선언 할 것인가? 스스로가 만든 낡고 비합리적인 체제의 덫에 걸린 김정일은 극도의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것이 아닌가. 또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보름정도 앞두고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경우도 당시 엄혹한 국제정세로 인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 절체절명의 극한상황을 넘어설 수 없었다. 김 부자의 죽음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 국가나 집단의 리더의 죽음은 단순히 자연수명이라기 보다는 그가 부딪치게 되는 격변하는 정세와 체제의 한계가 몰고 오는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핵무기나 미사일 외교도 수명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유훈통치를 빌미로 군사우선정치라는 고립노선을 계속하면 북한체제는 붕괴의 길로 달리는 것이다. ·당 보다 인민의 생명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여라! 이것이 김정은 체제 안정의 지름길이요 북한이 사는 길이다.

 

북한에도 하늘의 섭리에 따라 뉴 리더가 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6자회담 관련국들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되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고 북한체제의 안정을 기다리면서 주민들에 대한 실속 있는 생계지원을 본격화 할 시점이다. 북한지도부가 '의사 결정이 가능한 수준 까지' 체제안정이 이뤄져야 핵사찰과 모든 협상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으로서는 북한정세판단 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지나친 예단이나 평가는 서둘 일이 아니다. 아울러 중국이 혼자 책임지고 도우라는 것 보다 관련국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 중국의 현실적 영향력을 인정 하지만 그럴수록 북한을 중국에 떠넘기는 듯한 자세는 온당치 못하다.

 

한국정부로서는 정권의 마지막 해라는 시간적 한계가 있고 지금까지 밀고 왔던 정책의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 볼 때 운신의 폭이 그리 크지 않다. 미국과 일본도 대통령선거와 국회해산이 예정돼 있어 정권기반이 약해지는 상황이라 '통 큰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 사태를 관리하는데 빈틈없는 국제적 협조망을 구축해야 한다. 상황이 유동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할 것이다. 북한 새 지도부는 한반도 관계국들의 민주정부의 리더십 변동이 진행되는 2012년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무리한 요구나 도발로 국제사회를 긴장시키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오히려 북한 새 지도부가 국제사회가 갈망하는 '통 큰 결단'을 내림으로서 북한에도 희망의 리더십이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는 뜻 깊은 '2012'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필자/추성춘 ()생활정치아케데미 원장. MBC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