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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구당 선생 미스터리 03,04]

풍월 사선암 2011. 12. 24. 12:39

[COVER STORY | 구당 선생 미스터리 03]

YS·장준하·박태환도 다 고쳤다?

한두 차례 치료를 과대포장연이은 논란에 책 내용 일부 삭제하기도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 구당이 치료했다고 밝힌 김영삼 대통령, 장준하 선생, 박태환 선수(왼쪽부터). 알고 보니 한두 번 치료한 것을 침소봉대하거나 전혀 치료한 적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광복군 출신 재야 정치인 장준하 선생,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선수.

 

구당 김남수 옹이 인터뷰나 자서전 등을 통해 치료했다고 밝힌 인물들이다. 침구사로서 무명에 가깝던 구당이 유명해진 것은 정치·연예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명사(名士)를 치료한 사람이라 알려진 점도 한몫했다(상자기사 참조). 실제 구당의 치료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은 한두 번 구당의 치료를 받았고 실제로 효과가 좋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간동아의 취재 결과, 구당이 치료했다고 밝힌 명사 중 상당수가 치료 사실이 없거나 한두 번 치료를 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치료했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실을 널리 알리고, 한두 차례 치료한 것을 침소봉대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치료했다고만 알려졌을 뿐 효과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준하 선생 큰아들 호권 씨 구당에게 치료받은 적 없어

 

구당이 치료했다고 밝힌 대표적인 인물이 재야 정치인이었던 고 장준하 씨. 구당은 월간 신동아’ 20055월호 인터뷰에서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치료한 사람이 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428여의도통신’, 2008929서울신문에 실린 인터뷰 등에서도 장씨의 치료 사실을 밝혔다. 저서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정통침뜸연구소, 2008)에는 더욱 자세하게 실려 있다.

 

나를 찾았던 많고 많은 디스크 환자 가운데 잊히지 않는 이로 장준하 선생이 있다. 정치인이면서 언론인인 장준하 선생은 (중략) 장 선생은 디스크가 너무 심해 일어나 앉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크게 못하고 기침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장 선생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집에 살고 있었다. 자택이 제기동 홍파초등학교 앞에 있었는데 지붕 위로 바로 고압 전류선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중략) 신문을 보다가 장 선생이 산에서 실족사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납득할 수 없음을 넘어 기가 막혔다. (중략) 디스크가 심해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으며 낮은 계단도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울퉁불퉁한 산비탈을 혼자 오른단 말인가! (중략)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장 선생을 치료한 이는 아마 나일 것이다.’(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에서)

 

하지만 824일 만난 장씨의 큰아들 장호권(64) 씨는 아버지 장준하 선생은 김씨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김씨는 아버지의 디스크를 치료했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디스크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병으로 협심증은 있었으나 그 밖에 디스크 등 질병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새벽 4시에 기상해 냉수목욕을 했던 양반이고 워낙 건강해 등산도 잘했다. 집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안 좋았다면 장남인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구당은 저서와 인터뷰를 통해 서울 제기동 홍파초교 앞집에서 돌아가시기 보름 전까지 치료했다고 주장하지만 장호권 씨에 따르면 장씨 가족은 1968년부터 69년까지 서울 제기동 홍파초교 앞에 살았고, 1970년부터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난 75년까지는 서울 상봉동에 살았다. 만약 장씨 사망 보름 전에 김씨가 장씨를 치료했다면 치료 장소는 제기동이 아닌 상봉동이어야 한다. 장호권 씨는 “1970년 전후로 동대문 사는 사람이면 고압선 철탑 아래 집이 우리 집인 걸 다 알았다. 원래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집인데 집값이 싸니까 가난한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2001년부터 장준하 선생 사망과 관련된 진상조사를 벌였다. 장씨가 12m 아래로 추락, 실족사했는데 시신의 상태가 온전한 점, 시신에서 주삿바늘 자국 3개가 발견된 것 등에 의심을 가진 것. 당시 조사관이었던 고상만 씨는 구당이 평소 저서를 통해 장씨를 치료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고 참고인 자격으로 구당을 3차례 조사했다.

 

의문사위 조사관 3차례 구당 조사

 

고씨는 조사 결과 김씨가 제기동에서 장씨를 치료했다고 밝힌 시기와 장씨가 제기동에 거주한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김씨는 장씨의 부인, 남동생 등을 치료했다고 진술했으나 부인은 조사 과정에서 치료받은 적이 없다고 직접 밝혔으며, 당시 남동생은 미국에 이민 가 한국에 없었다. 이전에 장씨가 김씨에게 진료받은 적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모든 내용을 종합해 장준하 선생은 사망 직전 김남수 씨에게 치료받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 초,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뒤 동대문구 김씨의 진료실을 찾았던 때를 회상했다.

 

의문사위의 결론을 알려주러 갔는데 그토록 사실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기억하던 양반이 약간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 그런가요? 제가 틀렸군요라고 담담히 사실을 받아들이더군요.”

 

처음에는 관련 대응을 하지 않았던 장호권 씨는 김씨가 2008TV에 출연해 화제의 인물이 되고 덩달아 장준하 씨 치료 경력까지 화제가 되자 사상계등을 통해 김씨는 장준하 선생을 치료한 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저자인 MBC 이상호 기자는 2009129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댓글을 통해 장준하 선생 건은 치료 당시 코흘리개에 불과하던 아드님이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요? 구당 선생 측의 항의 서한에 대해 장준하 선생의 아드님께서는 아직 묵묵부답이라고 하는군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장호권 씨는 항의 서한을 받은 적도 없을뿐더러, 내가 1946년생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1975년이면 서른 살이다. 서른 살 먹은 코흘리개도 있는가? 이상호 기자는 1968년생으로 아는데 당시 코흘리개였던 건 이 기자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한편 2008년판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에 실려 있던 장준하 씨 치료 내용이, 20097월 개정·발행된 책에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빠져 있다. 그 밖의 내용은 그대로인 것과 대비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치료했다는 것도 구당이 곧잘 하는 얘기다. 저서 침사랑 뜸사랑 아~내 사랑!’(정통침뜸연구소, 2002)에 실린 내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겨울 제14대 대통령선거 기간이었다. ‘조용히 혼자 와달라는 비서의 부탁대로 침통만 챙겨들고 김 대통령 후보의 상도동 자택을 찾았다. (중략) 김 대통령 후보는 어깨가 심하게 굳어 있었다. 하루 종일 선거유세를 하며 만나는 이마다 악수했더니 오른쪽 어깨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중략)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김 대통령은 수시로 나를 불렀다.’

 

저서에서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치료한 인연뿐 아니라 침과 뜸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S의원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81010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 20081219브레이크뉴스와의 인터뷰 등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치료했다고 말했다.

 

YS 대통령을 이름 이용 말라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김현철 부소장은 김씨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김씨에게 단 한 번 발목을 치료받은 적이 있는데 이를 부풀려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로 재임하던 1988년부터 32년간 김 전 대통령의 보좌를 맡고 있는 김기수 전직대통령 비서관 역시 재임기간 김 전 대통령이 조깅을 하다 다리를 약간 삐끗해 김씨를 불러 딱 이틀간 치료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선거운동 당시에 만나 어깨를 치료받거나 국회 보사위원장을 소개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김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대 의대 쪽 주치의가 있었으나 주변에서 발목이 삐었을 때는 침뜸으로 치료해야 더 빠르다고 말해 단 한 번 경험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전 대통령님을 매명(買名)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인연은 더욱 극적이다. 구당은 저서 침사랑 뜸사랑 아~내 사랑!’에서 ‘19791025, 박정희 서거 전날 김 부장을 치료했다고 밝혔다.

 

그때 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꽤 가까운 사이였다. 간이 좋지 않은 데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밤이면 가려움증이 심해 고생하던 김 부장은 나에게 치료받은 뒤 증세가 한결 호전돼 짬이 나면 늘 나를 찾았다.’

 

이 책에서 구당은 이 인연으로 김 부장이 1030일 대통령과 만나는 약속을 잡아주었다고 주장했다. 침뜸을 놓으며 김 부장과 가까워졌고, 1962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침구사 제도 부활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할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1026(중략) 김재규 부장은 불과 몇 시간 전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나를 찾아와 여느 때와 같이 침을 맞으며 김 선생, 이제 나흘 남았소라며 박정희 대통령과의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20055신동아와 인터뷰에서는 김재규에게 갈 때는 거의 자정 넘은 시각에 정보부 차가 날 데리러 와요. 비상등을 켜고 신호를 무시한 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라며 당시 상황도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전날 나눈 대화를 전하며 ‘10·26은 극히 우발적으로 생긴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당시 김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강 변호사는 “(가족들에게) 물어봤는데 예전에 치료받은 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날 만났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김재규는 당시 간이 나빠 서울대 김정용 박사에게 주로 치료를 받았지 김씨에게 치료받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10·26 전날 김재규 부장을 만났다고?

 

구당이 유명 인사들의 치료 사실을 과대포장하는 것은 비단 과거의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 및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등 맹활약을 하던 수영선수 박태환. 그는 200612월 당시 오른쪽 엄지발가락 밑에 있는 사마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마귀를 칼로 절제하면 어렵지 않게 완치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한 달가량 물에 들어가지 못해 훈련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박 선수는 계속 사마귀 뿌리 부분에 주사를 맞고 고름이 굳으면 그것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응급치료만 해왔다. 하지만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응급치료를 해도 계속해서 사마귀가 자라는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 선수의 사정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구당은 박 선수의 아버지인 박인호 씨에게 전화를 걸어 한두 번 침뜸 치료를 하면 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고, 침뜸 치료 후에는 바로 물에 들어갈 수 있다며 치료를 제의했다. 그해 1221일 박 선수는 서울 동대문구 홍릉동 김씨의 침술원에서 20여 분간 침뜸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이뤄진 구당의 인터뷰에는 수영선수 박태환도 구당을 찾아가 발바닥 티눈을 뜸으로 제거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하지만 박 선수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당시 두세 번 침뜸 치료를 받았으나 (구당의 말과 달리) 사마귀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선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원래대로 사마귀에 주사를 맞고 긁어내는 방식으로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사마귀의 크기만 작아졌을 뿐 뿌리는 제거되지 않은 상태다. 박씨는 구당이 나이도 많고 어려운 사람도 잘 도와주는데 공짜로 태환이를 도와준다니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찾아갔던 것인데, 자꾸 우리 애를 데리고 (마치 뿌리를 다 제거해 완치시킨 것처럼) 자기 홍보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구당과 명사들 화려한 인연

김춘진·이상득 의원시인 박노해, 문선명 총재도 치료받아

 

구당 김남수 옹이 치료했다고 밝힌 인물 중에는 유난히 명사가 많다. 그중 한나라당 김춘진 의원이 있다. 김 의원은 20092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뜸시술의 자율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료법 제한사항을 준수하며 재산상 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누구든 자유롭게 뜸 시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 김 의원은 최근 들어 뜸 등 전통적인 한방영역의 치료효과에 관해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므로 뜸시술이 자연의술로서 대체의학적 가치, 비용의 경제성 등 그 효용성이 인정된다. 뜸시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를 절감해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려고 한다며 제안 이유를 밝혔다.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도 구당과 인연을 맺은 명사로 거론된다. 이상득 의원은 2008년 뜸사랑 산하 효행봉사단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을 만큼 구당과 남다른 친분을 과시했다. 이상득 의원 측은 피로가 잘 풀린다며 뜸하고 침을 맞으러 자주 갔었다. 외국 갔다 와서 시간 나면 (국회의원 회관에서) 맞고는 했다고 말했다.

 

오늘은 누가 아픈가, 느린 걸음으로 찾아다니며, 따뜻한 맨손으로 어루만지는 사람.’ 시인 박노해 씨가 200411월 뜸사랑 봉사 20주년을 맞아 구당에게 바친 축시 우리들 나눔의 성자여의 한 구절이다. 본문에는 그는 첨단 장비를 들지 않았다네/ 가늘고 순한 오래된 침 하나라네/ 그는 비밀스런 영약을 들지 않았다네/ 이 땅의 가장 흔한 마른 쑥 한 톨이라네/ 그는 값비싼 면허장을 들지 않았다네/ 그대 자신이 의사고 병원이라고 임명해준다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감사원장,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장관 등을 지낸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전윤철 석좌교수 역시 대표적인 구당 예찬론자다. 재임시절 감사원과 재경부에 ·뜸 치료실을 열어 직원과 일반인에게 개방했을 정도다. 전 교수는 “70년대 중반, 경제기획원(현 재경부) 과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테니스를 치다 허리를 다쳤을 때 한국전기공사 모 간부의 소개로 김씨를 만났다. 이후 등산을 하면서 몸이 뻐근할 때, 특히 내가 재경부 장관 시절 국회 침뜸 봉사실을 자주 찾아 진료받았다고 말했다.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2008년 구당에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는 일에 써달라1억 원 상당의 침, 뜸쑥, , 진료대 등 봉사물품을 지원했다. 200810오마이뉴스“(2008) 문 총재 가족이 탄 헬리콥터가 추락해 문 총재 부인이 다쳤을 때 구당 선생의 치료로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그동안 언론을 통해 김지하 시인, 조정래 작가,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남덕우 전 국무총리, 방송인 송해 등이 구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OVER STORY | 구당 선생 미스터리 04]

장진영 씨 입 빌려 상태 호전

장씨 건강진단종합소견 단독 입수 구당 측 주장 검진 기록과 상이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91일은 충무로 대표 여배우였던 고() 장진영 씨의 1주기였다. 그는 2008917일 진행성 위암 판정을 받고 1년여 투병생활을 했지만 끝내 36세로 세상을 떠났다. 투병생활 당시 장씨는 항암 치료와 더불어 구당에게서 침뜸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화제가 됐다. 암 투병 중인 유명 배우를 치료했다는 사실은 이후 구당의 주요 이력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장씨가 고인이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당시 구당의 침뜸 치료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논란은 200912MBC 이상호 기자가 구당의 침뜸 시술을 취재해 정리한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를 펴내면서부터 점화됐다. 책 내용 중 김 옹의 침뜸 시술이 장진영 씨의 위암 치료에 큰 도움을 줬다는 부분을 두고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한의학 박사·전 대구한의대 교수)과 인터넷상에서 공방전이 벌어져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구당의 침뜸 연구단체인 뜸사랑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은 검찰에서 혐의 없음으로 기각됐다.

 

과연 구당과 이 기자의 주장대로 침뜸 치료가 장씨에게 효과가 있었을까? 이에 주간동아는 장씨가 위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한 시점부터 200918일 침뜸 치료를 중단할 때까지의 건강진단종합소견서를 입수해 침뜸 치료 기간에 침뜸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는지 확인해보았다.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씨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 때는 2008925일이고, 구당의 침뜸 치료가 시작된 것은 그달 29일이라는 점이다. 책이 주장하는 대로 병원에서의 본격 항암 치료가 10월 초순에 시작됐다 하더라도, 항암 치료의 시작 시점과 불과 일주일 안팎에서 침뜸 치료가 병행됐다는 것이다. 항암제 치료만 했을 때와 항암제 치료와 침뜸 치료를 병행했을 때를 비교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침뜸 치료로 종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실제 줄어들었다 해도 이것이 항암 치료의 효과인지, 침뜸 치료 덕분인지, 아니면 두 가지 치료가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는 이상호 기자가 지난 211일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고 장진영 88일간의 임상치료에서도 항암제와 침뜸이 병행돼 어느 한쪽만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며 인정한 바다.

 

고 장진영 씨의 남편 김영균 씨는 침뜸 치료 중단 이후에도 장씨의 건강이 악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장씨의 건강진단종합소견(왼쪽).   

 

항암제? 침뜸? 그 효과 불확실

 

그럼에도 이 기자는 장씨의 침뜸 치료 과정과 효과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불과 두세 번의 치료만으로 복부의 종양이 3분의 1 정도로 크기가 크게 줄어들어 배가 푹 꺼지고 또 복수도 금세 빠지는 걸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128)

 

구당이 운영하는 남수침술원은 위 내부의 종양을 확인할 수 있는 위내시경이나 종양 크기를 잴 수 있는 CT 같은 첨단 의료기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씨의 암세포 크기에 대해 ‘3분의 1 정도로 크기가 줄었다와 같은 구체적인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이 기자는 종양의 크기가 대략 절반, 3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는지는 주의력을 가지고 관찰하면 어렵지 않게 측정할 수 있다. 위암 환자의 종양을 손끝으로 만져보면 (종양이) 만져진다. 빵을 절반 먹었는지, 아이스크림이 3분의 1 정도 남았는지 꼭 측정해보지 않아도 인지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한편 이 책에 언급된 두세 번의 치료가 이루어진 시기는 9월 말이나 10월 초다. 장씨가 2차에 걸친 항암 치료를 마치고 위내시경과 복부 CT 촬영을 한 것은 그해 116. 항암제가 장씨의 몸에 잘 맞는지,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기 위한 첫 정밀검사였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장씨의 2008116일 건강진단종합소견에는 예전보다 종양 크기가 줄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위내시경상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복부 CT 검사상 예전보다 많이 호전됐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이 기자는 진영 씨의 차도를 알 수 있었던 구체적 내용은 진영 씨와 진영 씨 친구로부터 직접 청취한 내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기자는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에서 시술 시작 3개월 만에 장진영 씨는 위장 일부를 제외하고는 몸속의 암세포가 모두 사라지는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212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에 올린 장진영 씨 침뜸 치료 둘러싼 진실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20081222. 숨죽여온 3개월이 지난 시점에 공개된 병원의 진단결과는 실로 기적에 가까웠다. 말기 암이 위암 2수준으로 호전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환자 말에만 근거해 병세 판단

 

하지만 장씨의 20081222일 건강진단종합소견에는 위내시경상 호전된 소견이다림프절 등은 정상이다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위 내부의 종양에 대해서도 사이즈가 준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 병원 측이 이 기자의 표현처럼 말기에서 2기로 호전됐다거나 위장 일부를 제외하고는 몸속의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식으로 종양 크기가 어느 정도까지 줄었다는 언급은 없다. 이 기자는 이것 역시 장씨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그녀의 측근으로부터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듣지 않은 이야기를 그렇게 구체적으로 제게 했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측은 이 소견서가 서울대병원에서 발행한 것임은 인정하면서도 장씨의 병세 변화에 대해선 공식 확인을 거부했다. 다만 병원 측 한 관계자는 비공식적인 답변임을 전제로 장씨의 병세가 4기에서 2기로 준 적은 없으며, 일부 호전된 것은 항암치료제의 효과이지 침뜸 때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종합하건대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에서 침뜸의 치료효과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내용이 전적으로 장씨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기자가 주간동아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구당 선생의 치료 전 과정을 제가 입회, 취재했다. 진영 씨의 모든 발언을 취재수첩에 옮겨 적었고, 주요 내용은 인터뷰하거나 사진촬영을 한 것이라며 양심을 걸겠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과연 의료인이 아닌, 과학적 검진의 결과물이 아닌 환자 본인(장진영 씨)의 말에만 의존해 침뜸의 치료효과를 단정할 수 있느냐는 것. 설사 장씨 이외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그 중심은 장씨의 발언이다. 결국 환자 말에 근거해 환자 상태를 판단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환자 스스로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말했다면 기자는 틀린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은 것이 된다. 이에 대해 장씨의 남편 김영균 씨는 주위에서 가능한 한 진영 씨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좋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진영 씨는 이 말들을 자랑스럽게 구당 선생에게 이야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한편 구당은 침뜸 치료 중단 후 장씨의 몸 상태가 악화됐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침뜸을 해서 효과가 없었다면 당연히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었는데도 의사가 말하면 의사 말을 듣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들이 침뜸을 못하게 하면 그때부터 딱 결과가 나빠져버린다는 거야. 늘 그랬다.’(‘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 130)

 

하지만 침뜸 치료를 중단했다고 해서 장씨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아니었다. 김영균 씨에 따르면 200918일 이후 구당의 침뜸 치료를 전면 중단했음에도 장씨는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씨와 열심히 여행, 등산, 쇼핑 등을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