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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촛불 서울시 / 무너지는 그리스 赤旗가 펄럭입니다

풍월 사선암 2011. 10. 24. 18:36

[김순덕 칼럼]박원순의 촛불 서울시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탄생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제 발표된 정책공약도 중요하지만 그 정책을 추진하고 집행할 사람들이 누군지는 더 중요하다. 박원순은 직접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도 기이하게 서울시가 시민참여형 민주정부로 공동 운영된다는 점은 밝히지 않았다.

 

그가 야권 통합후보 경선에서 이긴 3, 박원순 측은 경선에 참여한 민주당 민주노동당 및 시민사회와 함께 신뢰 연대 호혜 원칙에 따라 서울시를 시민참여형 민주정부로 함께 운영한다는 공동 운영 합의문에 서명했다. 여기서 시민사회란 1000만 서울시민이 아니라 한국진보연대, 혁신과통합, 희망과대안을 말한다. 서명한 이들을 보면 박원순 서울시는 단순히 시정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광우병 촛불시위 세력과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손잡고 새로운 시대의 토대를 닦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연대 박석운 공동대표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애틀 원정시위, 2005년 맥아더 동상 파괴시위도 주도한 시위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등록금넷을 만들어 대학생들을 사로잡고, 2010년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후보 단일화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정치 감각도 뛰어나 보인다.

 

親北 시위세력에 서울 맡긴다

 

진보연대는 200711일 북한이 발표한 올 대선에서 반보수 대연합을 구축해 한나라당을 매장시켜야 한다는 신년공동사설에 화답하듯, 19일 준비모임을 거쳐 9월 출범했다. 친북 성향의 민족해방(NL) 단체 중심이다. 강령에 명시된 교육 주거 시장화 반대는 이번 박원순의 공약에 상당 부분 들어갔다. 앞으로 한미 FTA 폐지, 미군 완전 철수, 국가정보원과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강령은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하다.

 

혁신과통합 공동대표로 서명한 김기식 씨 역시 NL 계열 운동권 출신이다. 오랜 참여연대 활동을 거쳐, 야권연합정당을 통한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하는 이 단체에 합류했다. 혁신과통합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 문성근 국민의행동 대표 등 친노 세력뿐만 아니라 조국 서울대 교수, 시인 안도현 등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 모여 있다.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위도 사람을 모이게 하려면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고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특히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엔터테이너 같은 문화자본이 있어야 메시지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혁신과통합이 바로 그렇다.

 

김 씨는 혁신과통합 출범을 앞두고 830일 기자설명회에서 지루한 후보 단일화 협상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해선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로와 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당시는 이미 혁신과통합에서 박원순을 시민후보로 내세울 것이라는 소문이 돌던 때였다.

 

91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의사설이 나온 뒤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박원순이 5일 문재인 측에 한명숙을 만나 시장선거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고 6일 오후 2시 안철수-박원순 회동 3시 박원순-한명숙-문재인 단일화 협력 4시 박원순으로의 단일화 발표 7시 혁신과통합 발족식까지 숨 막히게 전개된 드라마는 그래서 가능했던 듯하다.

 

박원순 서울시가 탄생하면 한때 폐족을 자처했던 친노 세력은 서울지방공동정부부터 사실상 재집권을 시작해 내년 총선과 대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희망과대안은 좌파시민단체의 정치 참여를 위해 2009년 발족했다. 공동정부에 서명한 백승헌 공동대표는 좌파 법조계 인사의 결집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전 회장으로 곽 교육감과 한 전 총리 재판에서 변호를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집단의 공동대표들은 곽노현과 연()이 깊다. 그가 참여연대 발기인부터 집행위원 운영위원을 두루 지냈기 때문이다. 곽노현의 서울시교육청은 자기 사람으로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부처를 제치고 주요 정책을 결정했다. 공동정부 합의문에 따르면 서울시도 시장 직속으로 설치될 서울시정운영협의회를 통해 같은 식으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

 

親盧부터 곽노현까지 부활할까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권 유지가 최대 목표인 북의 김정일에게는 적화통일보다 2012년 친북 정권 수립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서울시에 국방과 외교권은 없다. 하지만 서울 공동정부에는 친북 인사가 대거 참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 운동권 출신은 박원순이 종북 세력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386의 도구였던 노무현처럼 박원순은 더 과격한 세력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장 협의회 결정에 따라 서울광장을 무제한 개방하고 곽노현을 위한 촛불집회부터 한미 FTA 반대, 국정원 서울 철수요구 촛불집회가 서울을 마비시킨다면 정말 불안한 시대가 시작될지 모른다.

 

기사입력 2011-10-09 /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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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그리스 赤旗가 펄럭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였던 우리로선 그리스의 긴축반대 시위를 이해하기 힘들다. 유로존·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당장 나라가 거덜 날 판인데도 지난주 수요일과 목요일 아테네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밖 신타그마 광장에서 붉은 깃발을 펄럭이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왜 평일이냐면 주말엔 쉬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에는 붉은 머리띠가 있다

 

그리스 쪽에서 본다면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주말마다 시위가 벌어지는 게 더 이상할지 모른다. 붉은 머리띠나 깃발에 적힌 구호를 보면 대한민국을 부도 문턱의 그리스처럼 끌고 가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펄떡이는 것 같다.

 

그리스 시위의 단골 주역은 그리스 공산당(KKE) 산하조직 전노동자투쟁전선((PAME)이다. 이름부터 강경해서 젊은 피가 들끓을 것 같지만 실은 젊어서부터 투쟁만 해온 중년 시위꾼들이 많다. 우리나라 단골 시위주역이 민주노동당 산하조직인 민주노총이고, 머리띠 두르고 나서는 이들도 전문 시위꾼인 점과 닮았다.

 

비슷한 건 붉은 색깔만이 아니다. 1944년 그리스가 나치독일에서 해방된 뒤 우파 중심의 망명정부가 돌아오고, 국내에서 독립투쟁 하던 공산당이 내란(1946~49)을 일으킨 역사도 비슷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미국이 보호한다는 트루먼 독트린에 따라 공산당 조직은 패퇴했다. 폐허가 된 경제도 미국의 마셜플랜 덕택에 살아났다. 그러나 치열한 좌우갈등의 후폭풍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공산당 멘탈리티는 사회 구석구석 파고들었고, 미국이 그리스 군사독재(1967~74)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반미감정이 커진 점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특히 공산당과의 화해 조치가 공공부문 방만화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 점은 남의 일 같지 않다. 81년 첫 집권한 사회당(PASOK)정부는 과거사 치유라는 명분으로 수천 명의 내전 유발자들에게 연금을 주고, 자손들에게는 공공부문 취업을 보장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총리가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현 총리의 아버지이자 젊은 날 트로츠키에 심취했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다. “지금 그리스 정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중 75%가 공공부문 월급과 연금 등 혜택으로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겉으론 구제금융 관둬라” “됐다(Enough is enough)” 같은 구호를 외치지만 이들의 주장은 여기서도 많이 들어본 소리다. 핵심은 반미 반외세 반정부로 요약된다. 정부의 부패와 규제도 문제지만 부자든 서민이든 탈세와 위법으로 맞서는 것도 심각하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좌파는 미국의 개입 때문에 공산화에 실패했다고 여전히 믿고 있어 국민이 뽑은 정부마저 정당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라리 대놓고 공산주의를 하라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그리스에선 당연히 반자본주의 불길도 거세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다루는 것이 정의라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잊혀진지 오래다. 조선소를 확장할라치면 임금인상부터 요구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선박업이 고국을 떠나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학생들마저 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절망스럽다. 아버지 파판드레우 총리는 집권 후 포퓰리즘으로도 모자라 대학생들에게 교수 학장 선출권까지 줬다. 사립대학은 아예 없고, 몇 년이든 공짜로 다닐 수 있는 국립대학들은 극좌 운동권의 산실이 됐다. 늙은 운동권은 정치판이나 노동계로 가서 직업적으로 투쟁을 한다.

 

최근 부도 위기에 다급해진 정부가 학기연장은 4번만 가능하게 하고, 교수평가와 대학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당연히 대학생들은 시위에 나섰다. 방만한 공공분야와 노조이기주의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데는 눈 감은 채 반기업만 외치는 천치(idiot의 어원도 민간인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왔다)들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미국의 개입으로 적화통일에 실패했다고 통탄하는 세력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의 방만한 공공조직처럼 만들어 재정을 파탄내고 싶은지, 서울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후보도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일자리를 만들어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반대니 앞뒤가 안 맞는다. 천치 대학생들은 지금의 반값 등록금미래 자신들의 연금을 당겨쓰는 건 줄도 모르고 트위터나 날리면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남의 돈(유럽연합의 지원)으로 부자나라들과 똑같은 풍요를 누리겠다면 그리스는 차라리 공산주의를 하라고 썼다. 그래도 그리스에는 공산당이 공산당이라고 정체성을 밝히고 있고 결국은 도와줄 수밖에 없는 이웃국가들이 있다. 핵무기를 움켜쥔 동족의 광신집단이 없는 그리스가 차라리 우리보다 낫다.

 

동아일보 10월 24일자 /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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