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2030이 박원순을 지지한 10가지 이유

풍월 사선암 2011. 10. 31. 19:42

»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마친 후 지하철을 이용한 첫 출근길에서 시민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30이 박원순을 지지한 10가지 이유

 

1살인 딸이 있는데 앞으로 자라날 딸의 장래를 생각해서

결혼 전 피부관리를 50만원에 받는데도 돈이 너무 아까웠는데

동생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 꼭 정부를 심판하자고 약속했다

누적돼온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경쟁을 조장하는 한나라당을 심판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30대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당선의 핵심 동력이 됐다. 나이든 세대가 안정을 중시하는 반면 젊은층이 변혁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여 야권에 더 강한 지지를 보내는 현상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격차는 특히 컸다.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에게 표를 던진 20~3010명을 만나 그들이 박 시장을 찍은 10가지 열쇳말을 들어봤다.

 

#1. 무상급식

 

이번 선거를 촉발하게 한 원인인 무상급식20~30대의 표심에도 한 요소로 작용했다. 직장인 김효곤(33)씨는 무상급식 때문에 생긴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무상급식과 관련한 공약을 유심하게 봤다고 말했다.

 

지난 무상급식 반대 투표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우군으로 나서기도 했던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당시 반대 투표를 주도했던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행사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는 등 무상급식 반대 색채를 선명히 했다.

 

반면, 박 시장은 무상급식 확대를 가장 우선적인 정책으로 꼽아왔다. 김씨는 1살인 딸이 있는데 앞으로 자라날 딸의 장래를 생각해 투표에 임했다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후보를 지지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2. 안철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압도적인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에게 양보했던 미덕도 젊은층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돌린 이유였다. 한재흠(28·엘에이치공사 인턴)씨는 원래 투표를 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 때문에 뒤늦게 마음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나경원과 박원순 모두 괜찮은 후보였다그러나 안철수 교수가 막판에 한 번 더 박원순 지지를 표명하면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안 원장을 믿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정치인 등)과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기에 믿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3. 청년실업

 

보수적으로 잡는 정부의 통계로도 청년 실업률은 늘 7% 이상에 머물 정도로 청년 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눈코 뜰새 없는 취업 준비중에도 젊은이들이 투표소를 들르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에는 실업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토익학원에 가기 전에 새벽같이 투표소에 들른 전철주(26)씨는 군대에 있던 2006년 뒤 처음 선거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졸업한 뒤 1년 반이 지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전씨는 청년 실업 문제와 등록금 문제 등을 해결해달라는 젊은이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다예전에는 투표는 거의 신경 안 썼지만 이번에는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4. 전세대란

 

무한경쟁시대에 직장, 결혼, 주거 등 모든 삶의 문제에서 허덕이고 있는 20~30대의 생활은 이번 선거에 박 시장에 대한 지지로 표출됐다. 30대 직장인 유지은씨는 결혼 뒤 집을 구하면서 겪었던 막막함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지난 5월에 결혼했는데 집 구하기 엄청 어려웠다. 남편 직장이 대전이라 강남 버스터미널 근처로 집을 구해야 하는데 가진 돈에 적합한 곳이 없었다. 결국 5개월을 끙끙 앓다가 잠실에 14평짜리 방2개짜리를 14천만원에 전세로 구했다.”

 

그런 유씨에게 재산이 40억원이 넘는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는 지지할 수 없는 후보였다. “나는 결혼 전 20회짜리 피부관리를 50만원에 받는데도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것도 결혼 전 일생에 한 번이다. 그런데 평상시에 1억원짜리 피부클리닉에 다니는 그녀가 서울시장이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유씨는 나 후보의 주요 3대 공약이 재건축 규제완화 아니었나서민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는 후보라고 봤다고 말했다.

 

#5. 오세훈

 

오세훈 전 시장과 한나라당, 나아가 정권에 대한 심판론은 젊은층 표심에 광범위하게 작용했다. 법률회사에 다닌다는 민아무개(35)씨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을 심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민투표가 무산되면서 드러난 민심을 외면하는 무책임에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민씨는 무리한 주민투표를 벌이고 성사되지 않았는데도 또 기회를 달라는 모습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6. 이명박

 

30대의 분노는 오 전 시장과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금융업에 종사한다는 황아무개(34)씨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원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사실 그것이 박원순에 대한 지지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차곡차곡 쌓여 이번 선거에서 분출한 효과도 적지 않았다. 황씨는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것을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동생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 꼭 정부를 심판하자고 약속했다고 털어놨다.

 

 #7. 1억 피부과?

 

나경원 후보가 서민들이 몸으로 겪는 생활과 괴리된 모습을 보인 것도 그에 대한 지지를 흔든 중요한 이유였다. 자유 기고가 김현진씨는 지금의 20~30대는 1억원 주고 피부 관리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인턴, 알바 등 비정규직 일자리로 먹고 사는 게 20라고 말했다. 나 후보는 강남구 청담동에서 고가의 피부클리닉에 다녔던 사실이 밝혀져 곤혹을 치른 바 있다. 김씨는 우리는 안다. 고액 피부관리, (아무나) 절대 못 받는다는 것을이라며 이번 선거 결과는 나경원 후보에 대한 극단적 거부감의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8. 불평등

 

인기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 윤덕원(27)씨는 나아가 천박한 자본과 권력,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구 정치권력에 대한 반발감이 젊은층 결집의 주요 요소로 보았다. 윤씨는 지금의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열심히 일한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수로서 그가 느끼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 유통도 대기업에 유리하게 짜여 있고, 대형 기획사들 위주로 돌아간다. 특히, 성과물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공정하지 못한 것이 제일 문제다.” 윤씨는 그런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투표를 삼은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경쟁 시스템 자체의 문제도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경쟁하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모두 경쟁하고 있다. 그렇게 누적돼온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경쟁을 조장하는 한나라당을 심판하는 성격의 투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9. 시민운동

 

박 시장의 경력도 20~30대를 사로잡은 한 요소였다. 시민운동가로서 행정·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온 지난 이력이 정치 경력이 전무한 그에게 약점을 보완하고 신선함을 살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정찬만(33)씨는 박 후보가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시민단체를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능력을 발휘해) 서울시를 바람직하게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와 달리 시민과 연계한 방식으로 시정을 이끄리라는 기대감이 주요하게 작용한 셈이다.

 

#10. 공감·소통

 

결국 다수의 젊은층들은 박 시장에 대해 보다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치권의 구태와 경쟁 시스템, 기득권 등과 같이 차갑고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낡은 방식을 지우고 서민과 함께할 시장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26일 밤, 박원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던 때 친구 2명과 함께 서울광장을 찾은 주현지(27·직장인)씨 역시 그런 시민이었다. 주씨는 선거운동 기간에 나경원 후보가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박원순 후보는 당선되면 젊은 세대와 같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투표 이유죠.” 주씨는 새로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등록 : 2011,10, 27  / [한겨레]권오성 박수진 허재현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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