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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의 사람人] 연기만큼 자녀교육도 명품인 그녀, 채·시·라

풍월 사선암 2011. 10. 8. 11:14

[Why] [김윤덕의 사람] 연기만큼 자녀교육도 명품인 그녀, ··

 

"두 아이 키우다보니 내 연기도 크더라"

 

아주 우연히 배우 채시라(43)'다른' 얼굴을 보게 된 건 지난달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여성가족부 홍보대사 자격으로 '가족사랑 책읽기 캠페인' 행사에 참석한 그녀가, '얼굴마담'으로 왔겠거니 하는 표정의 객석에 뜻밖의 감동을 안겼다. 초등학교 5학년 딸, 다섯 살 아들에 대한 그만의 독서교육법 때문이었다.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게 했어요. 세 살까지 TV는 안 보여줬고요. 책보다 재미난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만화요? 아이가 읽고 싶어하는 만화책 한 권 사주면서 엄마가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도 함께 건네죠. '무조건 읽지 마'가 능사는 아니에요."

 

객석의 질문에 모범생처럼 성실하게 답변하는 채시라는 낯설었다. '여명의 눈동자'의 여옥, '왕과 비'의 서릿발 같은 인수대비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라서 좋다'며 소박하게 웃는 평범한 여자였다. 26일 다시 만난 채시라가 홍조 띤 얼굴로 '뉴스'를 전했다. 마침내 거실에서 TV를 치웠단다. "태욱씨(남편) 낙이 퇴근해 들어와 거실 소파에 누워 TV 보는 거라 계속 미뤄 왔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엊그제 공사를 단행했지요.(웃음)"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채시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솔직하고 소탈했다. 인터뷰를 마친 시간이 오후 4. 큰아이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라며 채시라가 서둘렀다. “문구점에 들러야 해요. 도화지랑 스카치테이프가 수업 준비물이래요.(웃음)”

 

'천추태후'(2009)를 끝으로 공백기를 갖고 있던 채시라는 103일 뉴욕으로 날아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 '조선의 왕, 뉴욕에 오다' 행사에 왕비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연말에는 새 작품으로 안방으로 돌아온다. 사극(史劇)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내 생활의 1순위

 

'엄마 채시라', 낯설다.

"천생 아기 엄마라는 말 많이 듣는다.(웃음) 육아가 힘들지만 즐겁다. 아이들은 내 생활의 1순위다."

 

'천추태후' 끝난 지 2년이 넘었다. 공백이 너무 긴 건 아닌가.

"시청자들에 잊혀질까 봐 연연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워낙에 다작(多作)은 안 했고, 진짜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한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아이들 크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새 작품 들어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이고 싶다."

 

육아 운운하면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는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남녀가 만나 아이 낳고 오순도순 살아보라고 한 것일 텐데, 나도 그 순리를 따르고 싶었다. 덕분에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 낳았고, 부부 사이도 돈독해진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이 참 좋지만, 실제로 아이를 키우며 맛보는 감정들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엄마 채시라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굴러가나.

"(사립학교 다니는) 큰애를 학교 버스에 725분쯤 태워야 한다. 둘째는 9시에 어린이집에 보낸다. 혼자 세수하고 옷 입게 하는 게 요즘 관건이다. 둘째까지 보내고 나면 그제야 세수하고 3개 신문을 정독한다. 조선일보의 '신문은 선생님' 코너는 반드시 오려서 큰애 책상에 갖다놓는다.(웃음) 아침 겸 점심 먹고 집안일 좀 하다 보면 아이들이 온다. 알림장 확인하고 숙제 시킨 뒤에 큰애는 발레학원에 가고 나는 둘째랑 동화책 읽고 근처 공원에 가서 놀아준다. 틈틈이 개밥도 줘야 하고 애들 저녁밥 챙겨야 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맏딸 채니가 '책벌레'라더라.

"독서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3세 이전에는 TV를 보여주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세웠다. 대신 바닥에 책을 뒹굴게 했더니 아이 스스로 펼쳐보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더라. 제 아빠가 TV를 켜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책이 재미있으니까. 자나깨나 대본 읽는 직업이라 책 읽어주기가 지칠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매일 밤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려고 노력한다."

 

동화 읽어주는 수준이 프로급이겠다.

"'곰돌이 푸우'를 읽어줄 때 동물마다 목소리를 달리 낸다. 특히 피글릿은 아주 개성 있게 잡아서 해주니까 아이들이 좋아한다. 내가 바쁘면 태욱씨가 대신 읽어주는데 피글릿 대목에서 늘 지적을 받는다. '에이, 그건 피글릿이 아니야' 한단다.(웃음)"

 

레오 리오니를 아세요?

 

자녀교육서를 많이 읽었겠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어떤 한 분야의 천재로 태어나는데, 문제는 그 재능을 부모가 발견해 발달시키느냐 못 시키느냐에 달렸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애들은 타고난 대로 저절로 자란다고 여겨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지.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체로 공부를 잘하던데, 채니의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잘한다기보다 열심히 한다. 국어를 제일 잘하고, 영어도 좋아한다. 수학이 조금 약해서 여름방학 때부터 문제집을 한권 사서 매일 두 장씩 꾸준히 풀게 한다."

 

특목고에 보내려고?

"전혀 아니다.(웃음) 본격적인 공부는 중학교부터, 혼자 힘으로 하는 거다."

 

채시라씨도 책벌레인가?

"아이 낳고 책읽기의 재미에 빠졌다.(웃음) 그전에는 대본에 파묻혀서 '읽기'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 동화책이 예술이다. 굉장히 철학적이다.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본 적 있나. 그림도 멋지지만 그 짧은 내용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엄청나다."

 

둘째는 아들이다.

"근처 공원에 자주 나가 자연을 많이 보여준다. 집 마당 감나무 가지에 애벌레가 기어가길래 채민이를 업고 나가 막대기로 건드려봤다. 송충이 색깔이 얼마나 다양하고 화려한지 아는가? 개나리 잎이 몇 장인지, 매미의 날개가 몇 장인지 아나? 우리 채민이는 안다.(웃음)"

 

그러고 보니 첫아이 출산한 뒤 모유 수유로 처녀 적 몸매를 되찾았다고 해서 전국에 모유 수유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 채시라였다.

"큰애는 10개월, 둘째는 13개월 먹였다. 아기에게 젖을 물렸을 때 엄마가 느끼는 행복감을 포기하기 싫었다. 아기에게 젖을 주면 엄마의 엉덩이와 허벅지, 팔뚝 속에 저장돼 있던 영양이 특히 더 빠져나가는 것 같다. 살 빼기에는 모유 수유가 그만이다. 진짜다.(웃음)"

 

자녀교육서를 펴내면 베스트셀러 되겠다.

"교육서보다는 그림동화책을 한 권 내보는 게 꿈이다. 어릴 때 그림 잘 그린다 소리 들었다.(웃음)"

 

여명의 눈동자? 군대 다녀온 기분

 

1984'가나초콜릿' 광고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중학교 2학년 때다. 학생중앙 상품 응모권에 당첨돼 잡지사에 갔더니 거기 기자님이 모델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 아빠가 반대를 안 하셨다. 민얼굴에 학생복 입고 두컷 찍었는데 그게 괜찮았는지 여고시대, 여학생 같은 잡지에서 계속 연락이 오더라. 그걸 롯데제과에서 보고 아이스크림 광고를 단발로 찍어보자고 했다. 흑설탕바, 야구왕바, 까미로를 찍은 다음 전속계약해서 촬영한 게 가나초콜릿이다."

 

'고교생 일기'로 드라마에 데뷔했다. 출세작인 '여명의 눈동자' 이전에는 연기 잘한다 소리는 못 들었다.

"광고모델 이미지가 워낙 강했다. 그래서 나름 칼을 갈았다.(웃음) '샴푸의 요정', '거인' 하면서 자신감은 얻었지만 내가 갖고 있는 뭔가를 끄집어내야 한다고 끊임없이 다그쳤다. 그런 노력들이 김종학이라는 대가를 만나면서 꽃을 피운 것 같다. 정말 이를 악물고 했다. 뒤에선 폭탄이 터지고, 나는 저고리도 벗은 채 맨살로 뛰어야 했으니까. 꼭 군대 다녀온 것 같다.(웃음)"

 

최재성과의 철조망 키스신 연기는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영하 40도에 홑치마만 입은 상태로 촬영했다. 최재성씨는 계속 콧물을 흘리더라. 감독님 원하는 키스신이 안 나오니 계속 NG가 났다. 일단 철조망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안 되겠다 싶은지 감독님이 '재성아, 철조망 위로 올라가 봐라' 하시더라. 그제야 멋진 그림이 나온 거다. 배우 채시라에게는 운명 같은 드라마였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한석규, 최민식과 주연한 '서울의 달'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더라.

"'서울의 달'은 나 스스로 '영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간, 일종의 창조물 같아 자부심이 있다. 그때 '베스띠벨리' 광고모델로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영숙이라는 촌스러운 인물을 창출해내려고 엄청 노력했다. 후속작인 '아들의 여자'도 좋았다. 나이트클럽 댄서였는데, '섹시한 것도 가능하네?' 싶더라.(웃음)"

 

◀ 롯데제과 가나초콜릿광고모델로 데뷔했던 16세의 채시라.

 

연기대상을 안겨준 '왕과 비'처럼, 사극에서는 늘 카리스마 있는 여걸을 연기했다.

"배우로서 한창 물이 오를 때 '미망'이라는 시대물을 했다. 개성상인의 안주인으로 무명한복에 은가락지 끼고 연기하는 내 모습을 정하연 작가님이 보고 '인수대비'로 점찍어놨다고 하시더라. 개인적으로는 사극이 주는 맛깔스러운 대사가 좋다."

 

장희빈을 하지 않은 이유

 

'황진이''장희빈'을 연기한 적은 없다.

"공교롭게도 나는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는 역사 속 인물을 연기했다. 인수대비, 자미부인, 천추태후까지. 사실 장희빈이나 장녹수에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단지 요염하기만 한 인물은 잘 못 하겠더라.(웃음) 황진이는 꼭 해보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촬영장에서는 독종으로 소문났더라. '천추태후'에서도 대역 쓰지 않고 말을 타거나 활을 쏘고 싸움을 해서 '채장군'이라 불렸다던데.

"고생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고생한 만큼 빛이 나니까. 천추태후 때도 군대 갔다 온 기분이었다.(웃음)"

 

최진실과 쌍벽을 이루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이 진실이와 나를 라이벌로 만들어간 측면이 있다. 세 작품을 같이 한 데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코드가 달랐다. 라이벌로 서로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는데, 지금도 같이 활동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동료 연기자로서 콤플렉스를 느끼는 배우가 있나.

"이병헌씨. 자기 영역을 넓혀가면서 꾸준하게 성장해온 케이스다.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눈빛, 그리고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것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미모가 부러운 배우도 있을까.

"송혜교는 정말 예쁘다."

 

의외로 영화는 별로 찍지 않았다.

"몇편 찍었는데, 흥행이 안 돼 그런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꼭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을 것 같다.

"1950년부터 2011년의 캐릭터가 다 들어 있는 송강호씨. 음악으로 말하자면 댄스부터 프로그레시브까지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 같다. 안성기 선배님도 욕심 나고, 키 큰 정우성과도 연기해보고 싶다.(웃음) 내 이상형은 주디 덴치라는 영국 여배우다.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개성 있게 연기를 정말 잘한다. 영국 여왕 복장을 했을 때 카리스마가 넘친다."

 

웃을 일 없어도 웃는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시절 학점이 늘 4.0 이상이었다던데 사실인가.

"키가 커서 맨날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는데, 대학 가니까 마음대로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어 정말 좋더라. '꼬치미' 찍을 땐 한복차림으로 와서 시험 봤을 만큼 억척이었으니 점수가 안 좋으면 이상한 거지.(웃음) 우리 과 차석으로 졸업했다."

 

영어, 중국어가 유창하다고 들었다.

"생활회화 수준이다. 어릴 때부터 어학을 좋아해서 영어선생님 되는 게 꿈이었다. 대원여고 시절에는 제2외국어를 불어로 한 덕분에 '파일럿' 파리 촬영 때 큰 도움 됐다. 중국어는 '해신' 프로모션으로 대만에 갔을 때 '니하오' 정도의 인사만 하기 싫어서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사랑의 열매, 유니세프, 여성가족부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관리 차원인가.

"10대부터 받아온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아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이들, 청소년들 돕는 일에 애정이 많이 간다. 나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열심인 분들이 참 많다."

 

김태욱과의 결혼생활이 벌써 12년째다. 권태기는 없었나.

"남편은 사업하느라 바쁘고, 나는 애들 키우느라 바빠서 권태로울 겨를이 없었다.(웃음)"

 

김태욱은 가수였다.

"중학생 때부터 밴드를 결성해 공연할 정도로 프로듀서적인 소질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신혼 무렵 남편 목소리에 이상 증세가 왔다. 큰애 임신했을 때인데, 남편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암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나중에 오진으로 판명 났지만 그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두려웠다."

 

가수를 포기하고 시작한 김태욱의 웨딩사업이 요즘 꽃을 피우고 있다.

"엉망이 된 우리 결혼식에서 남편이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셈이다. 웨딩업체들 횡포에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는 시장 환경을 블루오션으로 삼은 게 적중했던 것 같다."

 

1~2년 사이에 성장했지, 그전에는 고군분투했다더라. 내조가 필요했겠다.

"남편을 믿었고, 늘 잘될 거라고만 이야기했다. 달려가든 쓰러지든 그 뒤엔 항상 내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연예인으로 남들 시선 속에 산다는 거, 화려하지만 힘들 것 같다.

"이 정도를 힘들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감사할 일 하나도 없을 거다. 곰돌이 푸우가 한 말이 있다. 꼭 웃을 일이 있어야 웃는 건 아니라고. 그냥 웃다 보면 좋은 기운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무대의 막이 내린 뒤 겪는 공허함, 우울증 같은 건 없나.

"지금까지 혼자였다면 충분히 그랬을 거다. 성격상 우울하게 나 스스로를 놔두지도 않는다. 1시간 전에 내가 맡은 배역에 푹 빠져 연기하다가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엄마가 된다. 그게 참 쉽다."

 

참 열심히 산다.

"내가 정신적 맷집이 좀 있다. 대충대충 못 산다. 택시기사였던 친정아버지는 63세에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원에서 대체의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따셨다. 그 열정과 근성이 내게 있는 것 같다."

 

벌써 마흔셋이다.

"친정아버지가 나 결혼할 즈음에 물으셨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신발 한 짝이 창밖으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뛰어내려서 주워 오겠다고 했더니 '아직 젊구나' 하시더라. 그러면서 당신은 다른 사람이라도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나머지 한 짝도 던지겠다고 하셨다. 그때의 아버지 말씀이 요즘 가슴에 맺힌다. 나이를 먹나 보다."

 

오랜 시간 내줘서 고맙다.

"언니처럼 푸근하게 대해줘서 편하고 즐거웠다"

 

내가 두 살 아래다.

"진짜? 에이, 두 살 가지고 뭘. 가끔 만나 수다 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