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MBC사우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풍월 사선암 2011. 10. 2. 08:12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전 아나운서 조석영씨 부부의 청춘합창단체험 스토리-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서 올해 일흔 두 살이 되도록 성가대에서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성가를 불러 오고 있는 내게 “KBS TV2 남자의 자격 52세 이상 노년 합창단원 모집스폿트는 눈에 번쩍 뜨이는 반가운 뉴스라, 마침 소속 극단에서 새롭게 시작할 연극 캐스팅 결정 바로 전날인 아내에게 연극은 잠시 접고 우리 한번 이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자고 설득해 4월말 지원서를 제출했다. 전국이 오디션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세태를 반영하듯 이 프로그램에도 3,000명이나 응모해 KBS제작진이 서류 심사에 고심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5월이 다 지나가도록 아무런 통보가 없어,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우리 부부가 서류 심사에 떨어졌나 보다 하고 낙망하던 차에, 6월 초순 애타게 기다리던 오디션 참가 통보를 받았다.

 

그것이 우리 부부 행운의 첫 신호탄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3,000명 지원자 가운데 200명만 오디션에 부름을 받았다고 하니, 노래실력 한번 발휘해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꿈을 접어야 했던 노년 동지들이 무려 2,800명이나 됐던 것이다. 오디션이 있기 며칠 전, KBS제작진에서 신청서에 적힌 우리 부부의 자유곡 곡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특히 아내의 곡은 꼭 악보를 가져와 달라고 당부했다. 워낙 특이한 노래라서 KBS측도 악보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망의 623, 하루종일 비가 많이도 오던 날, 비만 오면 힘이 솟는 우리 용띠 두 사람이 오디션 장소에 도착했다. 건물에 도착하면서부터 도처에 수많은 TV카메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놀라면서--한때 아나운서로 일 해본 경험이 있음에도--대기실에 도착했고, 이곳저곳에서 모든 참가자들에게 즉석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여려가지 질문이 쏟아졌다. “부부가 함께 오디션 보시니 기분이 어떠세요?”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부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어요?”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자그마한 동호회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던 그 아름다운 시절이 떠올랐고, 서로 이름도 잘 모르던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여 들뜬 채 걷다가 아뿔싸! 내가 그만 길바닥에 큰대자로 꽈당 넘어져 버렸고, 일행 모두가 깔깔대며 웃어대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통쾌하게 포복절도 하듯 인정사정없이 웃고 있는 아가씨가 있었으니 그 아가씨가 바로 지금의 아내 박찬열이었다. 그 웃음소리가 좋았고, 그렇게 밝게 웃는 사람과 함께 일생을 지내고 싶었다. 10년에 걸친 열애 끝에 마침내 내 꿈이 이뤄졌고, 그 웃음소리를 아직도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옛날 얘기를 하다보니 순식간에 내 마음도 그 당시의 청년이 되 있었다. (그래 맞어, 우리도 그런 싱싱한 젊음이 있었지. 그래, 나 아직도 젊다니까.) 그렇게 속으로 내 자신에게 중얼거리면서 진행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오디션 장에 들어섰다.

 

넓은 방, 심사위원들 앞으로 다가가는 동안 2 대의 TV 카메라가 우리 부부를 향해 자리 잡고, 또 다른 8대정도의 TV카메라가 심사위원 쪽을 향해 놓여져 있는 것을 지켜봤다.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직업상 TV카메라와 마이크에 익숙했던 경험 탓으로 더없이 편안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중앙의 윤학원 선생, 김태원, 박완규, 임혜영 씨 등 심사위원과 그 양 옆으로 남자의 자격고정멤버 이경규, 이윤석, 김국진, 윤형빈, 전현무, 양준혁 씨가 자리잡은 가운데, 몇 가지 짓궂은 질문이 있었고 우리 부부도 넉넉한 마음으로 즐겁게 웃어가며 답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부부가 이제 긴장을 풀고 기량껏 노래 부를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마침내 노래 부를 시간, 아내는 내게 먼저 노래하도록 양보했다. 나로서는 스물여덟 살 아나운서 입사시험 때 마이크 앞에서 뉴스리딩을 해 본 이후 처음 겪는 오디션이었다. 그리고 이번은 노래였다.

 

사실 우리부부는 일생 노래부르기를 계속해왔다. 아내 박찬열은 여고 때 교내 콩쿠르에서 성악으로 입상한 이후 여자사범대학 성악과를 거쳐 24세 되던 해 1963년 서울시립가무단 합창대원으로 활동하던 매혹적인 음색의 메조소프라노였고, 그후 내 아내가 돼 일생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문득 57세 되던 해에 성우학원, 연극교실을 거쳐 연극무대에 오르더니 12년 뒤인 69세 때 2008년 윤호진 연출 뮤지컬 러브에 캐스팅 되면서 프로세계로 뛰어든 이후 2010년에는 대형 뮤지컬 빌리엘리엇의 할머니 역으로 캐스팅되는 등 야심만만한 늦깎이 뮤지컬배우 할머니였고, 나는 25년여 상도동 양재동 성당 성가대에서 노래하면서 작년부터 남성 시니어합창단에 나가며 활동 폭을 조금씩 늘려가는 매우 평범한, 그러나 나이에 비해서는 조금 젋고 힘찬 목소리를 갖고 있는 한 사람의 할아버지였다.

 

내가 부를 노래는 조두남 작곡 산촌’. 이 노래는 남성 시니어 합창단에서 늘 부르는 곡으로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불러야 제 맛을 낼 수 있는지 지휘자로부터 여러 차례 가르침을 받은 곡이라 내게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격. 평소보다 조금 더 열정을 담아 가곡산촌을 노래했다. 내 노래가 끝나자 바로 와! 소리에 이어 박수. 그리고 이윽고 모두가 기립을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내 노래가 이렇게 대접받다니) 놀랍고 반갑고 고마웠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이 방송, 재방송되면서 2주일 뒤 나는 갑자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아내 박찬열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곡목은 뮤지컬 빌리엘리엇에서 나오는 GrandmaSong(할머니노래). 엘튼 존이 작곡한 이 곡은 영국 탄광촌에서 일생 가난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손자 앞에서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회상하며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로서 33년 난 끔찍했다. 우린 서로 결혼을 말았어야 해. 생활비 식비 다 술값으로 날려버리고, 굶어도 놈은 무사태평.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 하며 원망하다가는 그러나 함께 춤출 땐 그인 멋진 마론 브란도, 나는 마릴린 먼로, 춤추며 땀 범벅되어 우린 뜨겁게 사랑을 나눴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남자 없이 나 혼자 살 거야. 너희 할아버진 절대 아냐, 하긴 뭐 어때 어차피 다 지나간 걸. 이제 와서 꿈꿔 뭘 해 모두 다 지나간걸. 그 때 그 시절 지금처럼 살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결혼도 않고 내 평생 홀로 살면서 맘껏 술 마시며 신나게 춤 췄을 거야. 일생동안 술에 취해 살았을 거야.” 하는 애절한 노래였다. 그런데 이 곡이야 말로 내 아내 박찬열에게는 가사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있는 곡이기도 했다.

 

영국에서 초연된 후 호주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대형 뮤지컬 빌리엘리엇이 드디어 20108월 한국에서 공연하기 위해 배우들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간 이후 오디션에는 구름같이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아내 또한 할머니 역에 도전, 3차에 걸친 열띤 오디션 끝에 호주심사위원 전원의 축하박수와 악수 세례를 받으며 화려하게 캐스팅되기에 이르렀다. 그날 합격의 기쁨에 찬 아내의 모습이 참 멋있었고, 나도 그런 아내가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호주 심사위원들이 출국한 뒤 우리나라 사업주최측이 제시하는 계약조건은 스탠바이’, 언더스터디여서, 전담 배우 L씨가 단독으로 공연하며, 아내 박찬열은 그 L씨가 펑크를 내지 않는 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이 무엇을 뜻하는지, ‘스탠바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부부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으나, 이제 갓 프로로 전향한 늦깎이 뮤지컬 배우로서는 그것도 자기를 성장시킬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믿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는데, 그래도 공연기간 6개월 200여 회가 넘는 공연 중에 다만 몇 번이라도 무대에 설 기회가 있겠거니 기대했던 우리 부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결국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매우 한이 남는 결과에 심신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20108월부터 20112월까지 LG아트센터의 6개월 공연 기간 동안 내가 아내를 위로할 수 있었던 말은 당신 노래 솜씨가 부족해서 무대에 못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사업 주최측 입장은 무명인 당신보다 이미 잘 알려진 L씨가 관객 동원에 훨씬 더 힘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절대로 자괴감에 빠지지 말라고.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에 대해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호주 연출진이 결국 당신 하나를 최종 선택했잖아. 자긍심을 갖자고. 당신은 실력으로 앞서고 있어. 그리고 이건 사업이야. 거금을 투자해서 사업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고, 그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겠어. 당신은 무대에 못 올라간다고 속상해 하지만,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이 사업이 망하면 수십억을 손해 볼 수도 있는 전쟁이라고. 마음 넓게 갖자. 너무 속상해 하지 마. 당신은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은 이 큰 무대에서 관객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경력을 쌓은 거야. 당신은 그만큼 한 단계 더 성장했다구. 절대로 기죽지 말자고.” 아내가 괴로워 할 때마다 그렇게 위로를 해줬으나, 한스런 아내의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어렵게 잡은 대형뮤지컬 출연기회를 눈앞에서 봉쇄당하는 아내의 한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는, 이번 방송사의 오디션에서 바로 그 노래를 불러 전국 시청자에게 아내의 기량을 뽐내게 해주고 싶었고, 아내는 이 기회가 절대 절명의 기회라는 것을 100% 실감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내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무대에 서고 싶었던 뜨거운 열망을 모두 담아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열연했고, 그것은 오디션이라고 보다는 차라리 열정 넘치는 공연에 가까웠다. 마침내 아내에게도 큰 박수가 쏟아졌다. 내 귀에도 이 세상 72세 할머니 어느 누구도 아내처럼 그렇게 충실하게 박진감 넘치는 탄탄한 소리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훌륭한 공연이었고, 이 모습 또한 방송, 재방송되며 아내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확인시켜줬다. 모든 이들의 박수를 뒤로 하고 오디션장을 나설 때 드디어 아내 박찬열은 평생 멍에처럼 가져갈 뻔했던 GrandmaSong 을 마음 속에서 놔줄 수 있었다. 이제 그 노래를 못 불러 끓어오르던 울분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단 한방에 전국 시청자에게 뮤지컬의 진수를 선보인 것이었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그 장면을 보고 감동한 시동생에게도 형수의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켜준 건 물론이고. 우리를 아는 모든이들이 기뻐해줬다. 오디션 현장에서의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워낙 좋아 우리 부부는 반드시 함께 우리 부부가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그 예상이 그대로 적중되어 우리 부부가 마침내 함께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짐작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청춘 합창단 부부 합격!’ (! 우리가 마침내 해냈구나. 우리 부부가 대단한 행운을 차지했구나,,,,,,.) 그것이 두 번째 행운이었고, 우리는 다시 세 번째 행운을 맞게 된다.

 

7월 초순 우리의 모습이 예고편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710일 일요일 오후 5KBS TV2 해피선데이를 통해 우리의 오디션 모습이 전국에 방송되면서, 내 핸드폰, 아내의 핸드폰, 집 전화, 컴퓨터 이메일로 축하전화와 메시지가 물 밀 듯 쏟아져 들어왔다. “ 잘 봤다”, “멋있더라”, “ 너무 반가웠어”, “어쩜 니 남편 그렇게 노래를 잘하니?”, “언니 그랜마송 노래하는 장면 보고 너무 찡해서 눈물이 났어. 언니가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생각하면서.”, “조형, 뭔 노랠 그렇게 잘해? 만능 스포츠맨인줄은 알았지만 참 대단하네.”, “두 분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줄이야.” “두분 눈물나게 아름다웠어요.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하루 아침에 유명 연예인(?)이 됐다. 길을 걸어도, 지하철을 타도, 쇼핑을 해도 모두들 알아보고 반가워해줬다. 방송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KBS2뿐만이 아니라 여러개의 케이블 방송에서도 계속 재방송을 했으니 어쩌면 그런 현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 같은 또래의 갖가지 사연을 가진 노인들이 40명 최종합격해 <청춘합창단>의 구성원이 됐고 924일 합창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7월초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KBS 스튜디오에서 남자의 자격고정멤버들과 함께 모여 합창 연습 과정을 녹화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새로운 하모니를 이뤄가는 과정의 긴장감과 성취감등으로 단원들은 점점 단단한 결속력과 일체감을 쌓아 갔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양한 인생을 살아왔다. 공통점은 단 한 가지, 모두 일생동안 노래 속에서 노래를 사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군계일학, 이 합창단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테너 김성록씨, 그는 프로 중의 프로, 슈퍼 프로였고, 합창단원 모두의 소리를 뚫고 솟아오르는 그의 역동적인 솔로를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그런 아름답고 폭발적인 음색과 음량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었고, 직접 스튜디오 현장에서 그런 대단한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행운에 다시 한 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고수를 만나게 된 것도 내 행운의 커다란 부분이기도 했고, 더구나 그가 틈틈이 들려주는 주옥같은 즉석 성악 강의도 내 영혼을 살찌우는 영양제가 됐다.

 

3개월의 힘든 조율 끝에 신참내기 지휘자 김태원씨와 급조된 우리 46명의 합창단원들이 924, KBS가 주관하는 제1 회 전 국민 합창대회에 마침내 출전해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아이돌메들리"를 불러 은상을 받음으로써 우리 모두는 그 맡은 바 임무를 모두 성공적으로 마치고 헤어졌다. 한편, 우리 부부는 계속 운이 좋게도 아이돌메들리 "잔소리" 부분에서 뚜엣을 맡아 짧은 시간이나마 시청자들에게 더욱 인상적인 노래와 연기를 각인시켜 줄 수 있었다. 우리 부부의 행운은 그것만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이 노인합창단 남성단원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세사람에 들게 된 나는 <70청춘쓰리테너>멤버가 돼 별도로 "오솔레미오"를 부를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 그 방송을 지켜본 어느 구청으로부터 출연요청도 받는등 예상외로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를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모 연출가는 내 노래 솜씨에 놀랐다며 기회 있을 때 나를 뮤지컬배우로 캐스팅해 주겠다는 언질까지 줬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오디션에 도전했던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고 그 성과도 내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러나 사실 나는 25년 넘게 성가대에서 합창을 계속해 오고 있었고, 몇해전부터는 더욱 내 목소리를 개선해 보려 치열하게 노력했으니 어쩌면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단히 준비된 무명의 아마추어 성악가가 돼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든든하게 믿을 수 있는 나의 자산은 젊은 시절부터 다져온 체력과 건강이다. 노래란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목과 입으로만은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없다. 온 몸이 동원되어야 깊은 소리 힘찬소리 곱고 높은 소리를 만들 수 있다. 기본적인 기교만으로는 늙어 가는 체력을 이겨내지 못하고서는 듣는 이에게 어필하는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성악은 체력싸움이다. 늙어 갈수록 결국은 힘의 문제가 된다. 지금의 나로서는 앞으로 10년은 더 노래할 수 있도록 내 체력이 나를 지탱해 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각오가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마 나는 노래 자체보다는 운동과 체력관리에 더욱 많은 시간을 내 삶의 시간표에 할당해 나갈 것이다.  < mbc 사우 카페에서 >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