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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시평) 어물적 넘어가는 포크배럴(Pork barrel) 발언 공방

풍월 사선암 2011. 8. 17. 21:48

 

(방송시평) 어물적 넘어가는 포크배럴(Pork barrel) 발언 공방

신대근(본보 편집위원)

 

1960년대 가난한 농촌의 부흥을 위해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고() 김용기옹은 농군학교 참여자들에게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성경 구절을 항상 강조했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 가도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표어가 큼직하게 걸려 있어 수용자들은 항상 이 말을 명심해야만 한다.

 

지난달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중학교 선생님들과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전교생이라야 30명도 채 안 되는 시골마을, 그리고 그 학생 숫자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실내 체육관은 그동안 우리 교육행정의 시행착오를 대변하고 있었다. 식사도중에 한 선생님 말씀이 요즘 시골 학생들은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이 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악착같이 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선생님 말씀은 그게 아니란다. 학생들까지도 농민들처럼 서서히 공짜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정부에서 어려운 농민들을 돕겠다고 내놓은 농어촌 부채 탕감이나 구제역 매몰가축 보상과 같은 선심정책들이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농민들 사이에서도 갈등 현상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빚 안지고 살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많은 빚을 탕감 받고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당연히 받을 것을 받은듯 떵떵거리고 사는 이웃을 보면 일할 의욕을 잃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열심히 해 봤자 놀고먹는 사람들 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좌절감만 보고 자란 아이들이 열심히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높은 분들은 서울에서 개천에서도 용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구호로는 시골학생들의 치열한 노력을 이끌어 내는 동인(動因)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더해 대학교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여 주겠다는 공약까지 여야에 의해 경쟁적으로 나오고 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대학교 등록금 완전무료주장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와같은 정치권의 무분별한 포퓰리즘 공약에 대해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6일 서울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포크 배럴(Pork barrel)에 맞서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무상복지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재정정책 책임자로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와같은 박장관의 발언에 대해 그 진정한 뜻은 살펴보지도 않은 여야의원들이 일제히 박장관을 비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의 김성태의원은 박장관 발언 이틀 뒤(78) 평화방송에 출연해 일국의 장관이 의원들을 돼지에 비유하는 발언을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서민을 위해 뛰는 정치권을 싸잡아 돼지에 비유했다. 어떻게 이런 천박한 발언을 했는지 박장관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용섭대변인은 한술 더 떠 박장관은 정치권 모독과 저질 발언을 사과하고 장관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포크 배럴의 뜻이 뭔지 백과사전적인 해석을 한번 살펴보자. 포크 배럴(Pork barrel)은 전 국민의 세금으로 재원이 조달되지만 그 이익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한 계층에게만 귀속되는 정부지출을 의미한다. 물론 처음 이 말이 나온 것은 19세기 미국의회에서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역구 예산을 따내려 하는 행태를 돼지고기를 통에 던져주면 몰려드는 노예들을 비유해 비판적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의 잇따른 발언을 곱씹어 보면( 박장관은 전혀 의도 하지 않았지만)의원들이 돼지라고 비난 받아도 싸다고 하겠다.

 

어느 방송에서도 그 후 이에 대한 의원들의 해명이나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당 이용섭대변인의 박장관 사퇴 요구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런 가운데 박장관의 발언에 대해 자세히 해명하고 그 진의를 밝힐 기회가 있었으나 그런 노력은 시청자들에게 보여 지지 않았다. 한국 방송기자 클럽이 주최한 토론회(711KBS6개 방송사 공동 중계)는 박재완 장관으로 부터 충분히 이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 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박장관으로서는 의원들에게 맞서는 모습으로 적극 대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KBS를 비롯해서 6개 방송사에서 대표로 참석한 패널들은 이런 기회에 의원들의 무지를 추궁하고, 박장관의 입장을 세워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에게 명쾌하게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그냥 넘긴다는 것은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정당한 자세가 아니다. 이시기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금언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필자가 지나치게 과민한 탓일까.

 

- 대한 언론인회 /  2011년 07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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