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우리음악

세상을 바꾼 노래 양희은 ‘아침이슬’

풍월 사선암 2011. 9. 11. 13:40

 

세상을 바꾼 노래

 

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의미를 각인한 노래들을 매주 2회씩 연재한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 노래'란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양희은 아침이슬’ (1971)

아침이슬은 노래의 기적을 대표한다

 

1971년 봄, 막 대학에 들어가 역사학을 공부하게 된 여학생의 귀에 어떤 노래가 들어온다. 그 노래가 마음에까지 들어오자 여학생은 악보를 구하여 자신이 불러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1970년에 작곡한 청년은 악보를 이미 찢어버렸다. 하지만 찢어진 악보 조각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구한 여학생은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어느 날, 작곡한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된다. 이렇게 양희은이 아침이슬을 만났고, 김민기를 만났다. ‘아침이슬은 작게는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싱어송라이터들 중 한 사람인 김민기와 한 시대를 대표하게 될 가수 양희은을 만나게 했다.

 

양희은을 눈여겨본 사람들 덕에 음반을 발표할 수 있게 되자 곧 독집음반을 내게 될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양희은이 먼저 음반에 싣도록 배려했다. 녹음작업까지 도왔다. 그렇게 양희은의 데뷔앨범인 [고운 노래 모음](1971)이 나왔고, ‘아침이슬은 세상과 만난 것이다. 포크의 시대라고는 해도 외국의 곡들을 번안하여 부르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던 때에 한국에 사는 젊은이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노래의 등장이었다.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자기네 이야기를 노래로 직접 만들어 부르는 것이 남다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대중가요에도 깊은 사유가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그런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음악적으로 아침이슬은 노래하는 이의 음색과 성량이 안정된 상태로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음역대과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포크의 품 안에 있지만 클래식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할 수 있는 화성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 대중 그 누구나 좋아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곡이다. 굳이 빗대어 말해야 한다면, 영국에 비틀스(The Beatles)‘Yesterday’가 있고 한국에는 아침이슬이 있는 것이다.

 

군사정권은 아침이슬의 이러한 가치를 알아보고 국민에게 권할만한 건전가요로 선정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가 그들은 아침이슬의 또 다른 가치를 알아보았고, 금지곡으로 묶어버렸다. 우습게도 군사정권이 이 노래의 서정성과 저항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모두 알아본 셈이다. 그러나 음반을 사서, 혹은 방송을 통하여 이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입까지 막지는 못했다. 우울하면서 아름다고, 어두우면서 우아한 아침이슬은 이내 누군가의 방으로, 청년들의 화기애애한 모임으로, 결의에 찬 표정으로 어깨동무를 한 학생들이 행진하는 교문 밖으로, 시대를 고민하고 아픔을 나누는 이들이 모인 거리까지 퍼져나갔다.

 

작곡한 김민기도, 노래한 양희은도 작은 노래 하나가 자신들의 뜻을 넘어 세상에서 더 큰 생명력을 갖게 된 것에 놀랐다. 노래가 제 스스로 생명을 얻어간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침이슬70년대를 넘어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불려졌다. 음반 대신 악보로 인쇄되었고, 사람의 입과 기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제 발로 찾아갔다. 이렇게 아침이슬은 청년의 조용한 노래에서 거리의 치열한 노래로, 그리고 시대의 묵직한 노래로 성장해간다. 새로운 정서와 기법으로 태어난 창작곡이 저항가요의 대표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들이었다.

 

아침이슬은 세상을 바꾸는 데에 분명히 힘을 보탰다. 하지만 바뀐 한국의 오늘은 20%의 일부가 세상의 부 70%를 가져가는 나라이다. 나머지 30%80%가 나누며 살아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민주화를 우선시하는 사이에 경제민주화는 미뤄지다 못해 더 멀어져갔다. 촘촘한 법망은 하루살이들은 다 잡아채면서도 멧돼지는 그냥 통과시켜버리고 있다. 그것이 한국의 법이다. 어떤 면에서 세상은 더 나쁘게 변했다.

 

그러나 아침이슬은 사람을 바꾸는 데에 분명히 힘을 보탰다. 그리고 노래의 기적을 보여줬다. 한 청년이 자신의 방에서 읊조리며 만든 노래 하나가 한 여인의 입으로 불려지고, 다시 수천만 사람들의 입으로 옮겨지고, 무려 40년 동안이나 내내 불려졌다. 노래는 기적이다. ‘아침이슬은 노래의 기적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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