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우리음악

세상을 바꾼 노래 김추자'님은 먼곳에'

풍월 사선암 2011. 9. 11. 09:59

 

세상을 바꾼 노래

 

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의미를 각인한 노래들을 매주 2회씩 연재한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 노래'란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김추자 '님은 먼 곳에' (1970)

 

가히 센세이션이라고 할 만했다. 꽉 달라붙는 판탈롱 바지와 뇌쇄적인 눈빛. 그리고 그보다 더 요염한 몸짓. “노래는 얌전하게 부르는 것이라는 명제가 격률이었던 시기에 김추자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후 그녀는 정말 사건들을 몰고 다녔는데,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 데는 무대 내외에서 벌어졌던 해프닝들(이를테면 부산 리사이틀 당시에 김세레나와 벌인 헤게모니 전투나 구혼을 거절당한 매니저의 보복 폭행 사건,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감행해야 했던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 대마초 파동, 간첩설, 노팬티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김추자에 대한 평가는 좀 더 핵심부를 향해 모여들 필요가 있다. 그녀의 대표곡 님은 먼 곳에를 이 자리에 꺼내든 이유다.

 

님은 먼 곳에196911월 첫 방영된 동양방송(TBC)의 주말연속극 주제곡으로 먼저 공개되었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신중현 컴필레이션 음반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노래다. 공교롭게도 노래를 처음 부탁받은 이는 김추자가 아니고 당대 최고의 스타 패티김이었다. 그러나 스탠더드 팝 스타일을 지향했던 패티김은 당연히 방송사의 제의를 거절했다(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잘된 선택이었다고 본다). “주인은 따로 있다는 속설처럼, 그렇게 노래는 김추자의 품으로 돌아갔고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 호응했다. 신중현이 곡을 쓴(작사 역시 신중현이 했다고 알려졌으나, 2006년 법원은 저작권 공방 끝에 드라마작가 유호의 손을 들어주었다) 드라마틱한 구조의 소울 클래식 님은 먼 곳에는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늦기 전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로 열심히 바람몰이 중이던 신예가수 김추자는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을 아이콘이 됐다.

 

잠자던 노인도 벌떡 일으킬 만한 역대급의 비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빨아들인다는 표현이 정확할 깊고 풍부한 음색은 적어도 그때까지의 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유산이었다. 김추자 전에도 김추자는 없었고, 김추자 이후로도 김추자는 없었다. 육체 그 자체로부터 길어 올린 창법은 남성들에게는 황홀한 성적 판타지를 제공했고, 여성들에게는 은밀한 동경의 대상이 됐다. 한국 록 역사상 가장 섹시하고, 충동적이며, 자극적인 노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노래가 출몰한 시점을 감안하면, “혁명과 시대가 항상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어느 문예비평가의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미처 완수되지 못한 혁명의 이름은 김추자, 그리고 님은 먼 곳에였다.

 

주지하다시피, 이 노래는 장현, 조관우, 위일청, 장사익 등에 의해 수 차례에 걸쳐 리메이크되며 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이준익 감독의 2008년 영화 [님은 먼 곳에] OST에선 거미에 의해 재해석되기도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어느 버전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이건 오리지널에 대한 엄숙주의 따위가 아니다. 이 곡은 매끈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최대한 불온하게, 내면에 꼭꼭 감춰둔 욕망의 머리를 깨뜨려 밖으로 드러낼 듯 잔인하게 불러야 한다. 아쉽게도 성공한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그만큼 김추자의 곡이 강렬했던 탓일 테니, 리메이크에 도전했던 상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한국 현대사의 영욕과 맞물려 돌아간,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파란만장한 음악사를 아직 모르기라도 했던 것처럼 솟구쳐 오른 김추자 최고의 명곡이자 1970년대 최고의 가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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