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우리음악

목로주점 - 이연실

풍월 사선암 2011. 8. 5. 08:40

 

이연실의 목로주점을 떠올리면 딱하나 떠오르는 장소가 한군데 있다. 바로 무교동 뒷골목 빼곡히 들어찬 주점들이다. 입안이 얼얼하도록 매콤한 낙지볶음과 커다란 대파를 숭숭 썰어놓고 해물을 썩어 도톰하게 부쳐 내놓는 "파전"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한창 때이고 당시의 군사정권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정권의 마찰은 길거리에서 수시로 발생하였고 이를 막기 위하여 정부는 "위수령"을 발령하여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져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사태가 많이도 일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머리가 긴 장발이나, 여성들의 짧은 "미니스커트"도 단속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이래저래 시대적 고민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허기진 배를 더욱 갈증으로 목마르게 하였다.

 

그래서 저녁이면 널 판지로 기다랗게 만든 허술한 긴 탁자가 놓여있는 그래서 "목로주점"이라 부르는 선술집에 모여들어 가물거리는 30촉짜리 백열등 아래서 "군사정권"의 실정을 안주거리로 삼거나, 미래의 꿈을 목소리 높여 왁자하게 떠들곤 하였다.

 

그런 장면들이 7080세대들의 추억으로 남아있던 "무교동"은 서울의 급팽창으로 감내할 수 없는 교통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거리로 내주고 오래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그 목로주점의 흔적이 종로2가 옛날 "피맛골"이라 부르던 금강제화 뒷골목에 아직도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영화 촬영소로도 쓰였던 "무명집""피맛골 주점"이라던가. 이것도 계속되는 서울시의 재개발 사업으로 언제까지 우리들 곁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다.

 

7080세대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어찌 그것뿐이랴, 최근에는 경춘선 열차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M.T를 할 때면 많이 찾았던 "대성리" "청평" "강촌"에 담긴 추억들이 그래서 더욱 그립다.

 

 

목로주점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 언제라도 그 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 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앉아서 / 그래 그렇게 부딪혀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께

오늘도 목로주점 흙 바람 벽엔 /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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