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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ㆍ보건] 대동맥 터져도 수술의사 없어 목숨 건 서울행

풍월 사선암 2011. 3. 22. 07:58

[의료보건] 대동맥 터져도 수술의사 없어 목숨 건 서울행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지방병원 외과'의 현주소

인구 100만명 책임지는 권역응급센터

병원에 흉부외과 전공의 없어

외과·흉부외과 지원줄고 그나마

서울 병원에 몰려 복막염 환자도 서울로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72세 김모 할머니는 평소 심장병을 앓아왔다. 그러다 지난달 배가 아파 연세대 원주의대 부속병원 응급센터를 찾았다. 배에는 심장처럼 박동하는 어른 주먹만 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대동맥이 터져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다. 심장에서 나온 피를 몸 전체로 뿌리는 대동맥이 터지는 것은 초()응급 상태다. 그대로 두다가는 뱃속에서 대동맥이 파열돼 즉사할 수 있다. 찢어진 대동맥을 수술로 즉시 감싸 매야 한다.

 

경기도 소속 앰뷸런스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센터에 도착해 환자를 내려놓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에서는 밤중에도 지방에서 급히 후송돼온 응급환자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병원 흉부외과에서는 그런 수술을 할 형편이 못 됐다. 심장 전문 교수가 달랑 한 명뿐인 데다 흉부외과 레지던트(전공의)가 한 명도 없었다. 한때 심장수술 500례를 달성하며 강원 지역 '심장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온 병원이지만, 지금은 수술 의료진이 부족하다 보니 중증 응급수술을 사실상 포기했다. 결국 김 할머니는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원주의대 부속병원은 강원도 서부 지역을 책임지는 권역응급센터 병원이다. 인구 100만여명의 생명을 지키는 '응급환자 종착역'에 해당된다. 하지만 지난해 대동맥 파열 등으로 서울로 발길을 돌린 중증 수술 환자는 10여명에 이른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지방의 큰 도시에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촌각을 다투는 중증 환자들이 목숨 건 '서울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월요일 서울 강남의 한 대형병원 응급센터. 이곳에서는 지방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올라온 응급 환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충수염(맹장염)이 터져서 복막염으로 번진 70세 권모씨는 전북 정읍에서 왔다. 환자 가족들은 "지방 병원에서 수술받자니 불안해서 서울로 모시고 왔다"고 했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지난해 실시한 대동맥 응급수술 100건 중 서울 환자는 31명이다.

나머지 69건은 지방환자다. 전남 장흥에 사는 어느 환자는 광주광역시 대학병원에 갔다가 "수술할 형편이 못 된다"는 말을 듣고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갔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송석원 교수는 "중증 심장병 수술을 하려면 흉부외과 의료진이 최소 3~4명은 필요한데 지방에서는 대학병원이라도 그런 인력이 없는 곳이 많다""지난해부터 지방에서 오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큰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와 흉부외과의 지방 의료인력 공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젊은 의사들이 외과와 흉부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데다 그나마 이 분야를 선택한 의사들마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편중되면서 지방 응급환자 수술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흉부외과를 시작한 레지던트는 전국에 28명이다. 이는 전체 정원 76명 중 38%밖에 채우지 못한 수치다. 이들 중 15(54%)은 서울대·연세대·아산·삼성 병원 등 이른바 '6'에 몰렸다. 서울 6개 병원이 전국 65개 종합병원 수요 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2년 전 외과계열 부흥을 위해 흉부외과 의료수가(酬價)100%, 외과는 30% 파격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그 결과, 환자가 집중돼 수술 건수가 많은 서울 대형병원들이 추가로 대거 수입을 올렸고, 그 여력으로 외과·흉부외과 레지던트 월급을 200~300만원 대폭 올렸다. 그러자 외과 재원들이 이들 병원으로 집중됐고, 지방은 도()에 한 명꼴로 줄어드는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외과도 마찬가지다. 대전시()에 있는 대학병원의 외과 교수는 "외과에 관심 있어 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레지던트 지원을 권유하면 '제가 왜 지방병원에서 하나요? 서울 대형병원에 가면 월급을 두 배나 받고도 할 수 있는데요'라고 한다""지방에 남으라고 할 만한 명분이 없다"고 했다.

 

대한외과학회 발전위원회 이왕준(명지병원 이사장)"외과 계열을 살리겠다는 '당근'이 지방과 군소 대학병원에는 오히려 '독약'이 됐다""이러다가는 지방 외과 수술 체계가 몰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2011.03.21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