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길자연 목사의 우상숭배

풍월 사선암 2011. 3. 15. 10:24

[김진의 시시각각] 길자연 목사의 우상숭배

 

땅과 바다만 갈라지고 일어서는 게 아닐 것이다.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특히 종교의 땅은 갈등의 쓰나미에 취약하다. 다른 종교를 헛되이 부정(否定)하면 인간사회는 갈라지고 터진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싸움에서 인류는 종교적 재앙을 겪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지난 3일 국가조찬기도회의 특별기도는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대통령 무릎사건만 알려졌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의 특별기도였다. 동영상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길 회장은 한민족 반만년을 우상숭배의 역사로 규정했다. 그는 지나간 반만년 동안 우상숭배의 죄 속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주권적 역사를 통해 구원해 주셨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나라 우상숭배의 죄를 고백합니다라고 했고 반만년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라고도 했다. 세 번이나 우상숭배의 죄를 주장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우상숭배는 다른 종교를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한기총은 66개 교단과 19개 단체가 모인 한국 개신교의 뼈대이자 몸통이다. 길자연 목사는 대표적인 개신교 지도자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이 세 번째다. 그런 최고위급 개신교 지도자가 국민과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반만년 역사를 우상숭배의 죄라고 지칭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국사를 비롯해 사찰을 즐겨 찾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불사(佛事)에 거액을 기부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 사찰을 방문했다. 그들 모두 우상(偶像)의 땅에 간 것인가.

 

서울대 종교학과 윤원철 교수에 따르면 불교는 한민족의 문명 개안(開眼)에 크게 기여했다. 4세기 무렵까지 고구려·백제·신라는 사실상 부족공동체 수준이었다. 이미 기원전에 유럽·중국에선 찬란한 고전 왕국문명이 발흥했는데 한반도는 뒤처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4세기 말 중국을 통해 불교의 경전과 문헌이 들어왔다. 부족국가들은 고급 불교문화를 통해 포괄적인 세계관을 갖출 수 있었다. 이후 삼국은 왕국다운 왕국으로 발전했고 불교문화는 통일신라와 고려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불교는 유교에 밀렸지만 왜란의 승병(僧兵) 같은 호국불교로 나라에 이바지했다.

 

유교도 한민족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유교는 국가통치 사상이었고 백성에게는 생활의 질서였다. 계급적 세계관의 한계도 있었지만 경제·과학이 미숙했던 농업국가에서 유교는 나름대로 유용한 정신적 틀이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세우는 유교적 가치 덕분에 1960~80년대 한국은 국력을 국가의 경제성장에 모을 수 있었다. 국가와 사회를 중시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표적인 유교적 인간이었다.

 

기독교는 19세기 말 개화기(開化期)에 들어와 국가의 근대화·현대화에 핵심적인 업적을 남겼다. 선교사들은 특히 의료와 교육에서 한국을 서양문명의 세계로 이끌었다. 개신교 장로였던 이승만은 일찍부터 미국의 기독교 현대문명에 눈을 떴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들여왔고 한국전쟁 후에는 한·미 동맹으로 미국을 이 땅에 묶어두었다. 인권과 민주를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 정신은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종교·정신문화는 불교·유교·기독교라는 삼각대 위에 있다. 세 다리 중에서 무엇이 우상이고 무엇이 숭배인가. 진짜 우상은 길 회장의 마음속에 있는 잘못된 역사 인식이다. 고급 수준의 기독교 신학은 우상숭배를 물체에 절을 하는 표피적 개념이 아니라 진실 아닌 것을 진실로 고집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이번 국가기도회의 주제성구(聖句)강하고 담대하라였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했다는 구절이다. 길 회장이 진실로 강하고 담대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남한의 불교와 유교인가 아니면 북한에서 벌어지는 우상숭배인가. 다른 이의 다른 종교인가 아니면 자기 마음속에 있는 왜곡이라는 우상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1.03.13 /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국가조찬기도행사’(대회장 길자연 목사)는 그 행사 성격으로 보아 마땅히 국가의전규칙에 따라 진행 되어야 했었다.

 

그런데도 길 목사는 전례 없이 대통령도 무릎 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제의하여 대통령이 타의에 의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되어 금도(襟度)를 넘었다. 지금 이것이 지금 우리사회의 큰 소란거리가 되어 있다.

 

중세 종교시대, 교황 그리고리 7세가 교황에 순종하지 않했다는 이유로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를 불러내어 무릎을 꿇어 굴복케 하게 하듯 하면 잘못이라는 여론이다. 물론 대통령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그 행위는 스스로일 때이다.

 

링컨, 워싱턴 대통령 등도 무릎 꿇고 기도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한 것이다. 아차! 한 일들이었겠지만, 이제라도 치유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기독교 최고 지도자로서, 또 대표자로서 값진 위엄은 잃고, 누가 말한 대로 오만 방자한 값싼 위세 목사로만 계속 평가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에 대해 기도회를 집전한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 국민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대통령을 항복시키고 권위를 훼손한 듯한 느낌이 있지만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고 7일 보도했다.

 

길 회장은 국가조찬기도회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간구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상에 앉아 생각하던 중 하나님이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회개하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행한 것이라며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 앞에 누구나 죄인이고 평등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한 (무릎을 꿇은) 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길 회장은 기독교의 힘을 과시하려 한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여기에 죄인으로 섰다. 죄인의 심정으로 기도하자고 말했다전혀 다른 의도가 없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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