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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권정생 선생 이야기 

풍월 사선암 2011. 3. 15. 10:17

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권정생 선생 이야기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고

 

독서토론모임이라 이름 붙이긴 부담스럽고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지난달 처음 모임을 가졌다. 읽고 이야기 나눈 책은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문명을 거부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농사를 지으며 인류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준 농부이자 철학자인 그의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않은 삶을 살았던 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바로 강아지 똥의 저자 권정생 선생이다. 두 번째 책읽기 모임의 선정도서는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이었다.

 

 

강아지똥이야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어린이가 읽은 책이자 초등학교 1학년 권장도서로 독서록에 감상문 하나쯤 써보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버려진 강아지 똥도 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짧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는 동화이다. 권정생 선생은 평생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아름다운 동화를 남겼고 시골 촌부로서 평생 자연과 함께 살다 몇 년 전 영면하신 분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불광문고에 가서 책을 구입한 후 돌아오는 버스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편안한 에세이집 한권 읽는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녹색평론 발간인 김종철 교수의 추천 글부터 읽어나가는데 글은 쉽게 읽혀지나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십여 년 전부터 써온 삶의 이야기를 엮은 것인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삶의 무게와 그의 사상과 철학이 너무나 크고 깊은 것이어서 생각하고 또 곱씹어 생각하게 만든다.

 

화요일 저녁, 카페 마을에 모여 일단 주먹밥을 시켜 허기를 면하고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두서없이 이런저런 책 읽은 느낌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국방부 금서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처음 접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정신 나간 것들 동화작가가 쓴 종교적 색채 강한 책을 무슨 불온서적이라고...혀를 찼을 것인데 읽고 나니 한편 이해가 된다. 절대적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는 것이 이 책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인데 민족을 향해 총부리 겨누는 훈련을 받는 군인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책은 확실한 것 같다.

 

 

책의 많은 내용을 차지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교회문간방에 의탁해 살았었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이 세상과 하느님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금의 기독교인들과 많이 다르다.

 

교회는 권위주의, 물질만능주의, 거기다 신비주의까지 밀려와서 인간상실의 역할을 단단히 했다. 조용히 가슴으로 하던 기도는 큰 소리로 미친 듯이 떠들어야 했고, 장로와 집사도 직분이 아니라 명예가 되고 계급이 되고 권력이 되었다......하느님을 이용하여 출세와 권력과 돈을 얻으려 하고,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전부가 되었다. 예수 믿어 삼 년 안에 부자 못 되면 그건 문제교인이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의 실상을 안다고 했던가. 물질만능과 출세 지향적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떤 빛으로 도움이 되었던가. 밤이면 빨갛게 높이 빛나는 십자가가 정말 교회의 빛인가?.......기독교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있고, 교회에 가서 울부짖는다고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있든 없든, 교회가 있든 없든, 하느님은 헤일 수 없는 세월동안 우주를 다스려왔다.”

 

그는 지금 이 땅에 예수가 오셨으면 십자가 대신 똥짐을 지셨을 것이라 말한다. 예전에 쓰셨던 글이지만 지금 현실에 있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모임 회원 중에는 기독교인도 있고 성당 다니는 이도 있지만 지금의 사회와 교회가 낮은 곳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물질을 숭배한다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권 선생이 살아서 장로 대통령이 저지르고 있는 서민말살 정책들을 접했다면 얼마나 통탄했을 것인가? 차라리 몇 년 전 떠나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권 선생은 자발적 가난, 아니 극빈을 선택했다. 책도 많이 팔리고 인세도 큰돈이 들어왔을 것인데 그의 시골집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10년이 넘은 나일론 셔츠를 기워 입고 살았다. 물론 어린 시절 병든 몸을 이끌고 유랑걸식하며 살았지만 그 후 충분히 출세의 길에 나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그러한 삶을 거부하면 살았다.

 

잘사는 사람이 거액의 돈으로 자선을 베풀어 빈민을 구제하면 세상이 밝아지고 함께 평화를 이룰 것 같지만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이 세상에서 정당한 부자는 없기 때문이다. 백 명 중의 아흔아홉은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다. ”

 

권 선생이 유명한 아동문학상을 받게 되었는데 선생은 고민 끝에 상패와 상금을 돌려보냈다. 일등을 뽑으면 자연히 꼴찌가 생기게 마련이고 천당을 만들고 나니 지옥이 생겼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내가 금메달을 따면 못 따는 사람이 있고, 내가 수석을 하면 꼴찌한 사람이 있고 내가 당첨되면 떨어진 사람이 있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못되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

 

초등학생들조차 일제고사로 서열을 정하려는 요즘 교육현실에서 대통령과 교육감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물론 시험석차를 아이에게 다그쳐 묻는 나 같은 학부모에게도......

 

이렇듯 선생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원했고 탐욕이 가득한 자본주의 세상의 전복을 꿈꾸었다. 그는 무욕, 가난, 절제를 무기로 이 체제에 저항하는 삶을 산 것이다. 그러한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한 생태주의자였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만물의 기능만 알고 뜻을 거역한 탓이다. 이 땅의 주인은 인간들만이 아닌데 인간중심의 인간제국을 건설하려는 오만이 결국 인간상실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압제자를 향해 피를 흘리는 저항과 투쟁도 해야 하지만, '진정한 혁명은 자신의 삶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없이는 우리 인간은 절대 위대해질 수 없다고 그는 그의 글 그의 일생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삶을 본받고자 하여도 그처럼 살 수는 없다는 걸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그의 생을 논하는 것도 어쩜 자기만족적이고 배부른 향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당함에 저항해 촛불을 들었던 우리들이 책읽기 모임을 만든 것도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와 똑같은 삶을 살진 못할 것이지만 삶의 중요한 가치를 무엇으로 삼아야하는지 우리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은평시민신문 /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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