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긍정적인 밥 - 함민복

풍월 사선암 2011. 3. 4. 10:21

 

긍정적인 밥 - 함민복

 

()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듯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다가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쉰 살 함민복 시인, 동갑내기 제자와 6일 결혼식주례 김훈 "문단의 쾌거"

강화도서 고기잡으며 마음만은 부자인 문학인

 

강화도의 노총각 시인 함민복(50)씨가 6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혼례를 치른다. 부인은 동갑내기 박영숙씨. 주례는 소설가 김훈씨다. 나이 쉰에 첫 장가를 가는 가난한 시인의 혼사에 문학계는 "문단의 쾌거"라며 함박웃음이다. 후배 시인 문태준씨는 "해맑게 잘 웃고 절에서 땔나무나 하며 살 것 같던 늙은 소년이 늦장가를 간다니 문단에 잔치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고 친구인 시인 함성호씨는 "나는 결혼 반대자이지만 이 결혼만은 특별하다"며 환영했다.

 

주례의 표현을 빌리면 함 시인은 "가난과 불우가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다. 1996년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구해 강화도 동막 해변으로 들어갔고 15년 넘게 강화에서 시를 쓰고 있다. 문우들이 '박씨부인'이라 부르는 신부는 시인이 김포에서 강의할 때 만났던 제자. 신부 어머니 염은순씨는 올해 구순(九旬)으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충북 음성에서 감자 농사를 지어 55녀를 키웠다고 한다. 박씨는 막내딸. 같이 산 지는 조금 되지만, 구순 노모의 마지막 소원으로 치르는 예식장 혼례라는 것이다.

 

주례를 맡은 김훈씨는 "신랑 신부 나이를 합치면 100"이라며 "부모·형제 잃고 형수만 한 명 남은 시인에게 열 명의 형제와 가족이 생겨 기쁘다"고 축하했다. 가난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은 그동안 김수영문학상(2005),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8)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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