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MBC사우회

김재철 MBC사장, 단협 일방해지 왜?

풍월 사선암 2011. 1. 20. 23:55

김재철 MBC사장, 단협 일방해지 왜?

 

“연임 위한 방문진과 코드 맞추기” 분석

국장-본부장책임제 충돌… “연임불가설 위기감 창사 50주년에 쫓기듯 결정”

 

김재철 MBC 사장이 MBC 노동조합 설립 22년 여 만에 공정방송 견제장치가 반영된 단체협약을 일방 해지함에 따라 MBC가 극심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방송독립투쟁의 역사가 담긴 결과물을 폐기처분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연초부터 MBC 노사 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됐다.

 

MBC 안팎에서는 김 사장의 이런 무리수가 여러 측면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MBC 신임 사장 공모를 앞두고 김 사장이 연임을 위해 기획한 ‘의도된 행위’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추천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실적 과시용 도발이라는 것이다.

 

지난 17일 아침 MBC 김재철 사장이 출근할 때 삭발을 한 MBC노조 간부들이 김사장의 단협일방해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쟁점…“쫓기듯 결정” 왜?=MBC 노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달 초순까지 단체협약안 개정을 위해 실무교섭 9차례, 본교섭 1차례 등 모두 10차례의 교섭을 벌였다. 쟁점은 국장이 실무적 권한과 함께 책임도 지는 국장책임제를 사실상의 본부장책임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는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이 줄곧 요구해오던 것이기도 했다.

 

MBC 경영진은 방송법상 규정된 본부장의 책임과 인사권 보호 등을 들어 ‘본부장은 총괄책임과 권한을 갖는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MBC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방문진이 임명하는 본부장 견제를 위해선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사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사는 국장책임제에다 본부장의 책임과 권한을 명문화 하되 취임 1년 뒤 본부장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문제는 10차례의 교섭 가운데 7번째 교섭 때부터 나타났다. 노조에 따르면, MBC 경영진은 이에 더해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10조)도 고쳐야겠다고 나섰다. 보충협약인 공방협 운영규정은 ‘공정방송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보직 국장에 대해 임명 3개월 후부터 보직 변경 요구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또 공방협을 통해 보직변경을 요구를 받았던 국장이 다시 3개월 뒤 공방협에 회부되면 노조의 보직변경 요구를 MBC 경영진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수용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규정으로 중도에 보직 변경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노조가 이 조항에 의거해 보직변경을 상정한 적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강력한 사전 견제장치로서만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MBC 경영진은 이 조항을 없애는 대신 “(노조의) 문책요구는 임명 뒤 1년이 경과된 이후부터 건의할 수 있다’고 고치자고 요구했다.

 

MBC 노조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1년 안에 생기는 문제를 방치해야 할 뿐 아니라, 그동안 1년을 채우는 국장급 간부 역시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사전견제장치’로만 있었던 이 규정을 없애고, 사실상 실효성 없는 조항으로 대체하자는 사측의 요구에 대해 연보흠 노조 홍보국장은 “이 조항을 거론할 때부터 단협 해지 의도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방문진 요구와 김재철 사장=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들은 지난 2009년 9월 취임하면서부터 MBC 노조의 단협 규정을 문제 삼아 왔다. 엄기영 사장 때부터 개정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대로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1년 가까이 된 지난 연말부터 논의가 재개돼 실무협의 몇 차례 하다 임기만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단협해지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사장이 방문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노사가 잠정합의했던 본부장책임제로의 변경에 포함된 ‘중간평가제’ 도입의 경우 노조가 주도로 실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사권 침해’를 역설해온 방문진 여당측 이사들 입장에서 수용하기 곤란한 측면도 있다.

 

정상모 방문진 야당추천 이사는 “지난 연말 정기이사회 때 한 여당 이사가 ‘공정방송 조항의 변경 건이 어떻게 돼 가느냐’며 재촉하듯 질의한 일은 있었다”며 “김 사장 답변 전에 내가 ‘강요하듯 추궁하지 말라’고 해서 김 사장의 답변 없이 논의가 끝났다”고 말했다.

 

또한 김 사장 임기가 오는 2월로 만료되는 점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지난 연말 MBC <연기대상> 때 김 사장은 가벼운 언행과 횡설수설로 많은 시청자와 누리꾼의 비난을 샀었다. 이 때문에 후임 사장 인선권을 가진 방문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추천 이사들도 김 사장의 재임에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MBC 노조는 17일 발행한 특보에서 방문진 여당 이사들이 ‘좌우를 넘어 국민 모두 동의하는’ 김 사장의 즉흥적이고 가벼운 언행 등의 자질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어 “궁지에 몰린 김 사장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며 “단협상 공정방송 조항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조합의 항복을 받아오거나 단협 해지라는 도발을 감행하는 것인데,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MBC를 죽이는 길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정상모 방문진 이사는 “정황상 주총을 앞두고 (인선권을 가진) 방문진을 겨냥해 충성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며 “아무리 그렇더라도 단협을 해지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올해는 MBC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인데다, 이른바 ‘조중동매연’ 종편 및 보도채널이 출범해 MBC 경쟁력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노사의 협력이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때 노조에게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단협백지화라는 무리수를 뒀다는 점에서 회사의 형편 보다는 ‘자신의 절박한 필요’에 따른 것이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편성책임자는 편성본부장이듯, 각 본부장이 책임을 지도록 한 방송법 정신에 맞추기 위한 취지에서 추진한 것이며, 단협해지를 통보하지 않으면 현행 단협안이 또다시 2년간 자동 연장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해지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연임을 바라보고 실적쌓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