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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에 드리운 中國의 그림자

풍월 사선암 2010. 11. 27. 16:10

韓半島에 드리운 中國의 그림자

 

新羅의 三國統一이 “韓民族에 外勢를 끌어드린 歷史의 始作”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만일 百濟나 高句麗가 三國을 統一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分斷의 悲劇은 없을 수도 있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특히 高句麗가 統一을 했더라면 지금의 저 광활한 滿洲땅이 적어도 우리의 領土일수도 있다는 아쉬움은 더 크지요. 百濟도, 高句麗도 日本이나 中國에 대해 당당했습니다.

 

新羅의 三國統一以後부터 中國의 눈치를 보고, 朝貢을 바치고 太子冊封의 許可까지 받는 屈從의 時代가 시작 되었습니다. 中國에 대한 이 비극적 굴종을 北韓은 아직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체제유지와 世襲과 經濟依存, 그리고 飢餓(굶주림)의 문제로 인하여 더 深化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韓國內에서도 수천년을 이어 온 中國의 橫暴에 학습되어 中國의 橫暴에는 無感覺한 者들이 많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탈미친중(脫美親中)’이라며 美國은 버리고 中國과 더 가까이 지내자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 政治人들이 있었습니다. 수천년간 中國에서 받아 온 受侮(수모)는 外面하고 中國을 “大國”이라며 思慕하는 者들 입니다.

 

死地에서 건져 살려주고 오늘의 經濟를 이룩하는데 큰 도움을 준 美國에 대해서는 不俱戴天之怨讐처럼 욕을 해 댑니다. 天安艦폭침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中國이 北韓편을 드는 것 같으니까, 南韓의 일부 멍청이들은 덩달아 ‘南韓의 造作’이라며 춤을 춥니다. 이러한 현상은 北偏向의 理念뿐 아니라 수천년 중국학습의 결과도 한 몫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극중국(克中國)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中國과 한판 해 보자는 말이 아니라, 수천년의 中國학습을 떨쳐 버리는 길을, 우리의 문화에서, 정신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찾는 國民的 覺醒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라고 믿습니다.

 

 

<韓半島에 드리운 中國의 그림자>

 

韓國의 Finland化 큰일 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라가 ‘핀란드化’의 가파른 비탈길을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1. 핀란드가 걸어온 길

핀란드는 작은 나라지만 백성들은 성깔 있는 사람들입니다. 백여 년 Russia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7년 Russia가 공산혁명에 휩싸여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공산 소련이 자리 잡고 다시 독립을 위협하자, 1939년 용감히 전쟁을 벌였습니다. 물론 졌지요. 간신히 독립을 유지했지만 많은 권리를 내주었습니다.

 

1941년 히틀러가 2次大戰을 일으켜 소련을 침공하자 함께 쳐들어갔습니다. 지난날의 불평등조약을 깨칠 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自由西歐를 등지고 Nazi편에 선 셈이 되었습니다. 1944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단독으로 소련에 항복했습니다. 민주정체로 독립을 유지하는 대가로 12%의 국토를 할양하고, 앞으로 외교국방등 일체의 대외문제처리에 있어서는 소련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하고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Nazi협력 때문에 西歐友邦을 잃고 고립하게 된 핀란드는 완전히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을 위시한 모든 정부요직인선은 소련대사관의 意中에 따르게 되고, 이를 어겼다 싶으면 즉각 經濟制裁를 가하여 옴짝달싹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히 親蘇派가 판치게 되고, 言論出版도 反蘇的인 것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느덧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自己檢閱”의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2. 깊어가는 韓國 핀란드화의 수렁

21세기 들어 中國이 世界第2經濟大國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945년 日本이 太平洋戰爭에서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中國은 ‘百年의 國恥‘를 겪었습니다. 1842년 阿片戰爭으로 西歐列强에 무릎을 꿇어 홍콩을 할양한 것을 스타트로, 1895년 淸日戰爭에서 日本에 패하여 臺灣을 내주고 朝鮮에서 밀려나고, 1931년 日本의 침공으로 滿洲를 빼앗기고 뒤이어 中日戰爭으로 全國土가 쑥대밭이 되었다가, 1945년 2次大戰이 끝나 겨우 國權이 회복될 때까지의 百年間입니다.

 

高句麗, 新羅, 百濟의 3國時代 千年을 빼고는, 淸日戰爭이후부터 冷戰이 終熄되어 韓中國交가 재개된 1992년까지의 百年이 韓國이 中國의 영향에서 自由로웠던 唯一한 期間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보듯, 大國과 이웃하는 것은 不幸한 일에 속합니다. G2의 經濟大國이면서 이미 韓國의 第1貿易相對國이 된 中國의 韓國에 대한 影響力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中國은 아직 그런 富에 걸맞은 문화수준에 와 있지 못하고, 더구나 지난 百年의 國恥에 恨이 맺혀, 事理에 맞지 않게 힘을 과시하려 합니다. 狂的民族主義性向입니다.

 

2008年 北京올림픽을 위한 聖火奉送途中中國人들이 韓國市民과 警察에 폭행을 가했습니다. 남의 나라 首都 한복판에서 그것도 우발이 아닌 政府의 지시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또 昨年 韓國大統領의 국빈방문 때 중국의 정부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韓美軍事同盟은 역사적 유물이며, 冷戰時代의 軍事同盟으로 現代의 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韓國의 國家元首를 모욕함으로써 자국의 위상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또 툭하면 韓國商品에 제동을 걸어 한국정부를 길들이려 합니다.

 

北韓은 이미 中國의 屬國이나 다름없어 식량과 기름을 얻어 쓰는 대가로 北韓內 事業利權을 대폭 양도하고, 白頭山등 국경선 책정에 양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들리는 中國大使의 妄言이나 위 여러 사례에 대해 우리나라 政府나 言論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美國이나 日本측에서 일어났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미 韓國의 핀란드化가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입니다.

 

3. 後孫을 위한 우리의 할 일

中國이 저리도 커지고 우리와 이웃이라는 조건으로 볼 때 우리가 中國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가정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그 영향권 내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主權에 대한 침해를 最小로 줄일 것인가를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첫째는 장기적 목표로, 北韓이라는 存在가 없어지는 것이 中國대책을 포함해 모든 일의 근본적 해결책일 것입니다.

 

둘째는 당장의 목표로, 韓國內 北韓支持 左派勢力을 척결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韓美同盟을 强化하는 것입니다. 핀란드가 그랬듯이 동맹국 우방이 없어지면 强國에 일방적으로 당하게 마련입니다. 中國이 韓美同盟解體를 요구하는 것도 그 점을 노린 것입니다. 韓美同盟이 깨지는 날이 中國이 韓國을 경멸하게 되는 날입니다. 中國에 대해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日本과도 中國문제에 대해서는 협력해 나가야 합니다.

 

넷째는 나라의「國格」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外國人에 대한 司法權의 정당한 행사는 大國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나라의 마지막 보루가 됩니다. 中國人의 난동에 대한 비굴한 자세는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도덕적 타락입니다. 과거 臺灣과의 신의 없는 단교가 오히려 中國당국의 경멸을 샀던 것과 같은 처사입니다.

 

以上은 卜鉅一氏의 저서 <韓半島에 드리운 中國의 그림자> 중 몇 대목입니다.

 

이 책을 읽고 오늘에 우리가 처한 위태로운 처지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이 자라고 있는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 지금 세대가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韓國의 知性人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重大事에 눈을 뜨게 해준 저자에게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