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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게 값" "비쌀수록 잘 팔려" 유럽도 놀라는 '명품 바가지'

풍월 사선암 2010. 6. 29. 09:03

[심층분석] "부르는게 값" "비쌀수록 잘 팔려" 유럽도 놀라는 '명품 바가지'

밀라노=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입력 : 2010.06.29

 

유럽 현지가격 조사해 보니 한국이 수십~수백만원 비싸

환율 대폭 떨어졌는데도 샤넬, 7월부터 또 값 올려… 다른 명품도 뒤따라 올릴 듯

 

얼마 전 파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김현상(33·직장인)씨는 카드 영수증을 뒤적이며 "어떻게 이럴 수가"를 되풀이했다. "아내가 하도 '샤넬' 노래를 부르기에 백화점을 찾았지만 몇백만원씩 하는 가방을 사주기엔 부담됐거든요. 그런데 파리에 가니까 국내보다 많게는 200만원이나 싸더라고요. 세관신고 하고도 비행기값 뽑겠던데요."

 

이런 느낌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느꼈을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샤넬이 올 7월 1일부터 최고 인기 아이템인 '클래식'과 '빈티지' 라인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쇼핑 거리인 이탈리아 밀라노 비아 몬테나폴레오네를 찾아가 유명 브랜드 베스트셀러의 현지 가격 조사를 해본 결과, 국내 가격과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비싸야 소비욕구 올라간다"

 

샤넬의 베스트 셀링 품목인 '클래식 캐비어 미디움'의 경우, 유럽 현지 가격은 1740유로(약 259만원). 우리나라에선 408만원에 팔리고 있다. 2400유로(358만원)인 빈티지 라지 가격은 539만원으로 약 181만원 차이 난다.

 

다음달 1일부터 본사가 25~40% 정도 가격을 올리기로 결정함에 따라, 샤넬코리아는 클래식과 빈티지 라인을 중심으로 2~13% 정도 판매 가격을 올릴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클래식 캐비어 미디움' 가격이 320만~340만원으로 우리보다 20% 정도 싸다.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가죽 가격과 현지 임금 등 공정 가격 등이 많이 올라서 본사 차원에서 올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클래식 캐비어의 경우, 2008년 말 유럽 현지가격은 1710유로에서 최근까지 1740유로를 유지하며 단 30유로(4만5000원)를 올렸을 뿐인데, 한국 지사는 유로화 환율 인상을 이유로 2008년부터 4차례나 거듭 인상해 270만원에서 408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최근 환율이 2000원 가까이에서 1400원대까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내리지 않고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외국과 국내 가격 차이가 적은 제품도 있다. 일명 '김하늘 백'이라 불리며 인기를 끈 구찌의 '수키백'은 유럽 현지보다 50만원 정도 비싼 200만원에 국내에서 팔린다. 또 국내에서는 유럽 현지 가격의 113%를 받는다는 에르메스와 유럽 현지가격 대비 120%를 받는 프라다는 상대적으로 국내외 가격 차이가 적다.

 

이런 현상에 대해 명품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값을 비싸게 매겨야 소비자들이 희소가치를 더 인정하는 심리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가격이 올라가는데 오히려 소비가 급증하는 '베블런 효과'에다 소량으로 만들어 소비자들을 안달 나게 하는 전략을 명품 업체들이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명품업체의 매출 신장률(올 6월 기준)을 보면, 가격을 크게 올린 샤넬이 전년 대비 53%나 상승해 상대적으로 가격 인상 폭이 적은 프라다(21%)·루이비통(15%)보다 훨씬 더 높았다.

 

◆"옆 브랜드가 가격 올리면, 나도 올린다"

 

유럽에선 260만원짜리 핸드백이 한국에선 어떻게 408만원이 됐을까? 가격 구조를 뜯어보면 관세와 부가세(특소세+교육세)가 원가의 15~20% 정도, 운송보험료는 5% 정도가 붙는다. 명품업체들이 백화점에 내는 수수료도 있다.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등은 원가의 10% 안팎, 구찌·프라다·페라가모·디올 등은 15~20% 정도로 알려졌다. 본사 마진에다가 대리점 마진, 광고비, 인건비 등의 요소 때문에 가격은 더 올라간다.

 

 

유럽 현지 가격이 보통 원가의 2.2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 소비자 가격은 각종 유통 마진을 포함해 원가보다 많게는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은 본사에서 가이드라인이 나와 그에 맞게 정하는 것이지 한국 지사에서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백화점 바이어는 가격 책정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 바로 '경쟁 브랜드와 차이'라고 했다. 주변 브랜드가 가격을 올리면, '눈치작전'을 통해 야금야금 가격을 같이 올린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샤넬만 하더라도 경쟁사를 1000만원대 가방이 즐비한 '에르메스'로 잡고 있어 자존심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마찬가지로 샤넬이 오르면 얼마 뒤 루이비통이 오르고 이어 페라가모·구찌도 가격을 연쇄적으로 올리게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수입업자가 많아지면, 가격 내려갈 수 있다"

 

최근 문을 연 이랜드 NC백화점의 경우 샤넬·루이비통·펜디·발렌시아가 등 명품 브랜드를 시중가보다 7~32% 정도 싸게 판매하고 있다. 샤넬 2.55 골드의 경우 시중가 437만원짜리가 7% 할인된 406만원에, 발렌시아가 클래식 시티백 243만원짜리 제품이 19% 할인된 198만원에 팔리고 있다.

 

이랜드의 최성호 이사는 "시중가보다 큰 차이가 나지 않아도 고객들이 줄을 서서 구매하는 데 크게 놀랐다"며 "NC백화점처럼 바이어가 현지 본사를 찾아 직접 매입하는 경우, 한국 지사보다 다소 비싼 원가에 구매하는 대신 마진율을 대폭 줄여 가격이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최근 각종 홈쇼핑과 온라인 몰에서 병행 수입(정식업체 외에 수입업자가 현지 매장 등을 통해 수입하는 것)을 통해 명품을 들여오면서 서로 경쟁이 붙어 구찌·페라가모 등은 현지 가격보다 싼 가격에 유통되는 현상도 생기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명품은 수입 원가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가격'인 현상이 생긴다"며 "명품업체들이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현실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샤넬의 '빈티지(Vintage) 2.55 라지'

▲ 샤넬의 '럭스애비뉴(LUXAVE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