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巡禮 - 塔. 碑. 鐘
國寶 2호 원각사지십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
조선(朝鮮) 세조(世祖) 11년(1465)에 세운 원각사는 연산군(燕山君) 때 폐사(廢寺)되어
현재 이 탑과 비(碑)만 남아 있다.
國寶 20호 불국사 다보탑(佛國寺多寶塔)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다보탑과 석가탑
(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國寶 21호 불국사 삼층 석탑(佛國寺 三層 石塔)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불국사(佛國寺)대웅전(大雄殿)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國寶 6호 중원탑평리칠층석탑(中原塔坪里七層石塔)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이 탑은 남한강(南漢江) 상류(上流)의 강가 높은 토단 위에 건립(建立)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유일한 7층의 거탑(巨塔)으로 높이 14.5m이다.
國寶 11호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 石塔)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
탑의 건립연대는 600년경으로 추정되며, 한국 석탑의 시원양식(始源樣式)으로서
목탑(木塔)이 석탑(石塔)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
탑의 규모로 보더라도 한국 석탑 중 최대의 걸작이다.
國寶 30호 분황사 석탑(芬皇寺 石塔)
경북 경주시 구황동 313 분황사
이 석탑(石塔)은 돌을 흙으로 구워 만든 전돌(塼石)처럼 깎아 만들어 쌓은 석탑으로,
전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고 부른다.
탑이 세워진 것은 분황사(芬皇寺) 창건과 같은 신라 선덕여왕 3년(634)으로 보고 있다.
國寶 16호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安東 新世洞 七層塼塔)
경북 안동시 법흥동 8
이 탑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에 창건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에 세워진 전탑(塼塔)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7m, 기단너비 7.75m이다.
國寶 35 호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 四獅子三層石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화엄사 사자삼층석탑은 연기조사(緣起祖師)의 어머니와 관련되는 전설을 지닌 석탑으로
탑 조성에 있어 착상이 기발하고 조각이 우수한 점 등은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여러 개의
사자탑 가운데 이를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게 한다.
國寶 40 호 정혜사지십삼층석탑(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4
이 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서 원 위치에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기단은 단층 토축(土築)이다.
國寶 48 호 월정사팔각구층석탑(月精寺 八角九層石塔)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
이 석탑은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 주로 유행했던 다각다층석탑(多角多層石塔)의 하나로
고려초기(高麗初期) 석탑을 대표하는 것이다.
國寶 86호 경천사십층석탑(敬天寺十層石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국립중앙박물관
이 탑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련리 부소산(扶蘇山) 경천사터(敬天寺址)에 있던 것으로
고려(高麗) 충목왕(忠穆王) 4년 (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이 탑을 본따 만든 것이다.
國寶 213호 금동대탑
금동탑이나 청동탑은 절의 중심적인 존재라기보다 건물 안에 모셔두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일반적인 탑이라기보다 하나의 공예품, 혹은 공예탑으로 볼 수 있다.
이 탑은 현재 높이만도 155㎝로 제법 큰 규모이다.
國寶 100호 남계원칠층석탑(南溪院七層石塔)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개성 부근의 남계원터에 남아 있던 탑으로, 예전에는 이 터가 개국사(開國寺)의
옛터로 알려져 개국사탑으로 불러져 왔으나, 나중에 남계원의 터임이 밝혀져
탑의 이름도 남계원칠층석탑으로 고쳐지게 되었다.
國寶 101호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이 부도는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國寶 289호 익산왕궁리 5층석탑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國寶 102호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
고려 목종 때의 승려인 홍법국사의 부도로, 충청북도 중원군(현 충주시)의 정토사 옛터에
있던 것을 1915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國寶 130호 선산죽장동오층석탑
선산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죽장사터에 있는 석탑으로, 주변에 석재와 기와조각이
널려 있어 건물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높이가 10m에 이른다.
國寶 187호 봉감모전오층석탑
경주 영양군 산해동 강가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 부르기도
하여 ‘봉감탑’이라 이름붙여졌다. 1단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國寶 57호 쌍봉사철감선사탑(雙峰寺 澈鑒禪師塔)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195-1 쌍봉사
쌍봉사 경내의 북쪽에 있는 이 탑은 8각원당형(八角圓堂型)의 기본형을 잘 나타낸 신라(新羅)
최고의 우수한 부도(浮屠)이다. 건조연대는 신라(新羅) 경문왕(景文王) 8년(868)으로 추정된다.
國寶 5호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법주사
신라(新羅) 석등(石燈)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그 조성년대(造成年代)는
성덕왕(聖德王)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國寶 3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이 비(碑)는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 16년(555)에 왕(王)의 국경순수기념비(國境巡狩記念碑)의
하나로 북한산(北漢山) 비봉(碑峰)에 세워졌던 것이며, 삼국시대(三國時代) 금석문(金石文) 중
가장 유명하고 귀중한 것이다. 1400여년의 오랜 풍우(風雨)로 그 비신의 보존이 어려워
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1972년 8월 25일에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國寶 7호 봉선홍경사사적갈비(奉先弘慶寺事蹟碣碑)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20
봉선홍경사지(奉先弘慶寺址)가 있었던 곳은 인가(人家)도 드물었으며 잡초가 우거져 가끔 도적이
출몰하여 행인이 곤란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에 고려(高麗) 현종(顯宗)은 창사(創寺)를 명(命)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 강민첨(姜民瞻)을 감독으로 동왕(同王) 12년(1021)에 200여칸을 완공하였다.
비를 세운 연대는 절을 세운 지 5년 뒤의 일이다.
國寶 8호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보光塔碑)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2
이 석비는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때 당(唐)나라에 수학하고 돌아온 낭혜화상(郎慧和尙)
무염(無染)(801∼888)을 위해 세워진 탑비로 전체높이 4.55m, 비신높이 2.52m, 너비 1.5m로
신라시대의 비석으로는 최대(最大)의 것이다.
國寶 25호 신라 태종 무열왕릉비(新羅太宗武烈王陵碑)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이 비석(碑石)은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원년(元年)(661)에 무열왕(武烈王)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데,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지금은 비(碑)의 대석(臺石)이었던
귀부(龜跌)와 비신(碑身) 위에 얹혔던 이수(이首)만이 남아 있다.
國寶 64호 법주사석연지(法住寺石蓮池)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법주사
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 중의 하나이다.
동자주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石欄干) 동자주와 유사하다.
연지의 조법은 정교하고 풍성하고 화려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대표가 될 만한 유물 중의 하나이다.
國寶 198호 단양신라적성비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國寶 205호 중원고구려비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國寶 29호 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 神鍾)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은 부왕(父王)인 성덕왕의 위업(偉業)을 추앙(推仰)하기 위하여
구리 12만근을 들여 이 대종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동왕(同王) 7년(771)에
이 종을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하였다.
종을 만들 때 아기를 시주(施主)하여 넣었다는 애틋한 속전(俗傳)이 있어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러 왔다. 915년 종각과 함께 동부동(東部洞) 구박물관(舊博物館)으로 옮겼으며,
박물관이 이곳으로 신축 이전하게 되어 1975년 5월 26일에 이 종각으로 옮겨 달았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25∼11cm,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실측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國寶 280호 성거산천흥사동종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이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속에 글을 새겨,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되고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國寶 120호 용주사 범종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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