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활/등산,여행

청명한 날엔 광화문 인파 한눈에 / 서울성곽 - 북서쪽 구간

풍월 사선암 2009. 5. 31. 14:11

청명한 날엔 광화문 인파 한눈에

서울성곽 - 북서쪽 구간

 

혜화문에서 숙정문, 북악산 정상 거쳐 창의문까지 5.5㎞

창의문에서 인왕산 정상, 사직터널 거쳐 숭례문까지 6㎞

 

» 북악산 정상 주변의 숙종 때 쌓은 성곽. 

 

셋쨋날. 3구간(혜화문~와룡공원~말바위쉼터~숙정문~북악산 정상~창의문)

 

혜화문①은 4소문 중 동소문에 해당한다. 일제 때 철거된 것을 1992년 찻길 옆 언덕 위로 옮겨 복원했다. 성밖 길 따라 북쪽으로 걷는다. 주택가 축대가 된 성곽은 두산빌라 담벽을 끝으로 끊어진다. 성돌을 축대로 쓰는 경신중고교를 지나 서울과학고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본격적인 성곽 모습이 나타난다. 성 안쪽으로 계단과 숲길을 번갈아 걸어 한동안 오르면 와룡공원 쉼터②에 닿는다. 흔히 북악산 탐방로의 출발점으로 삼는 곳이다. 트럭 매점인 ‘와룡 카페’가 있는데다, 운동시설과 나무의자들이 설치돼 있어 커피 한 캔 따 마시며 잠시 쉬기 좋다.

 

» 와룡공원 쪽으로 오르는 성곽길 안쪽엔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작은 생수 2통 꼭 챙겨가길


북악산 성곽의 아름다운 자태는 여기서 암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산길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풀향기는 한결 짙어지고 바람은 갈수록 싱그럽다. 담쟁이 무성한 바깥쪽 성벽 옆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흙길은 울창한 숲 안으로 스민다. 성벽에선 태조·세종·숙종 때 쌓은 성돌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나무계단을 만나 성 안쪽 길로 걸으면 말바위쉼터③에 이른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인적 사항을 적은 뒤 패찰을 받아 목에 걸고 숙정문④을 향해 오른다. 숙정문은 북대문이다.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문이다. 본디 북대문은 출입을 위한 문이 아니라 풍수지리상 격식을 갖추기 위해 지어진 것이어서 평소엔 닫아뒀던 문이다. 가뭄 땐 문을 열어 음기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성곽 따라 소나무 숲길을 오르면 화장실 거쳐 곡장⑤ 갈림길에 닿는다. 오른쪽 길로 올라 곡장에서 북악산 정상 쪽을 바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높직한 지점에 둥글게 만들어진 성인 곡장 안에서 내려다보면 북악산 정상과 인왕산 꼭대기로 줄달음쳐 오른 성곽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사진 촬영을 막던 군인이 말했다. “청명한 날엔 광화문 인파, 남산 소나무 가지까지 낱낱이 보입니다.”


곡장에서 내려와 북악산(백악산) 정상인 백악마루⑥를 향해 걷는다. 암문을 드나든 뒤 계단을 오르면 청운대, 1·21 사태 때 총탄 맞은 소나무를 지나 북악산 정상에 오른다. 가까이론 경복궁과 빌딩숲이, 멀리론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각자석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청운대 옆 여장 앞에 각자석의 내용을 설명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창의문까지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른 계단길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쉬어 가는 게 좋다. 올라오는 이들을 위해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창의문안내소에 닿는다. 패찰을 돌려주고 내려오면 아름다운 자태의 창의문(북소문·자하문)⑦이 기다린다. 누에 올라 앉아 잠시 쉰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은 이 문을 열고 들어와 창덕궁을 장악했다고 한다. 출입문 홍예 위쪽엔 봉황무늬가 돋을새김돼 있고, 문 앞뒤 네곳에 빗물이 흘러 떨어지도록 한 누조가 돌출돼 있다. 출입구 바닥돌은 짚신 나막신 고무신 운동화 군화들이 드나들며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창의문 안쪽 들머리 길 옆엔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과 1·21 사태로 순직한 경찰 추모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다. 5.5㎞를 걷는 동안 500㎖짜리 생수 2통을 마셨다. 3시간.

 

» 옆에서 본 숙정문.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문이다.

 

빼어난 전망이란 바로 이것!


넷쨋날. 4구간(창의문~인왕산 정상~인왕약수터~사직터널~월암공원~돈의문터~숭례문)


창의문을 나가 굴다리 지나 왼쪽의 길을 건너 다시 왼쪽으로 걸으면 인왕산 성곽길로 오르게 된다. 성곽은 곧 찻길로 끊긴다. 정자 거쳐 찻길 아래쪽으로 잠시 걷다가 찻길로 올라서면 곧 바위와 초소가 나타난다. 여기서 길을 건너 작은 철문을 통해 산으로 오른다. 오를수록 전망은 좋으나 여장을 따라 걷는 성곽 안쪽 길이어서 높직한 성벽길을 걷는 맛은 없다. 돌계단을 한동안 오르면 비로소 성 밖으로 나서게 된다. 태조·세종·숙종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다채로운 성돌들을 만날 수 있다.


함께 걸은 서울시 문화재관리팀 김용수 주임이 성벽 위 검은빛 여장 부분을 가리켰다. “총안 형태나 덮개돌 등이 처음 쌓았을 때 모습 그대롭니다.” 묵은 이끼로 검은빛이 도는 성돌들에선 총탄 자국도 여럿 눈에 띈다. 잠시 뒤 다시 성안으로 들어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면 탁 트이는 전망과 함께 인왕산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북쪽 능선으론 병자호란 뒤 북한산성과 연결해 새로 쌓은 탕춘대성⑧의 흔적이 이어진다.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산밑에 흐드러진 등나무꽃 향기를 실어온 바람이 땀을 말려준다. 인왕산 정상에 서면 ‘빼어난 전망이란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삿갓바위⑨ 주변에서 동서남북 좌우전후로 서울 도심의 거의 모든 곳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산·안산·남산·낙산·관악산과 한강 물줄기, 그리고 그 사이에 솟은 빌딩들과 고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에서 사직터널 쪽으로 내려가는 산 능선의 성곽길은 손을 대지 않은 모습이다. 검은빛 성돌들은 담쟁이덩굴을 덮어쓴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바위계단길이다. 곡장⑩·선바위·국사당⑪ 쪽 성곽의 여장 복원공사가 올해 말까지 진행중이어서, 스님이 장삼을 입은 모습의 선바위와 그 밑의 국사당을 만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국사당은 남산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옮긴 것이다. 왼쪽 길로 한동안 내려가 인왕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350m쯤 숲길을 내려간 뒤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순환로를 만나 길 건너 산책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걷는다. 초소⑫ 옆쪽에 찻길로 끊긴 성곽이 보인다. 무악현대아파트 위쪽이다. 여기서부터 사직터널 부근까지 매우 아름다운 성곽길이 이어진다. 각자석도 여럿 보이고, 암문도 만난다. 커다란 바위에 성돌을 쌓아올린 모습도 보인다.


성곽이 끊기는 지점의 옥경이식품(슈퍼) 앞에서 성곽 오른쪽 전방 주택가 마당으로 내려서면 오른쪽에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에서 400여년 된 은행나무를 만난다. 이 지역이 행촌동이다. 나무 앞엔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의 집터⑬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표석 앞쪽엔 1923년 앨버트 테일러라는 미국인이 지은 서양식 주택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다시 나와 성곽 안쪽으로 걷는다. 성곽은 상록수어린이집에서 끊긴다. 오른쪽 길을 내려가 다시 왼쪽 골목으로 돌면 빌라들이 이어지는데, 빌라 주차장 안쪽 벽이 숙종 때의 성곽이다.

 

» 숙정문과 곡장 사이 촛대바위 앞에서 당겨 찍은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 모습.

촛대바위는 가장 반듯한 모습의 경복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이다.

 

정동길 곳곳에도 성곽 흔적이


홍난파 가옥⑭을 보고 월암근린공원⑮ 아래쪽으로 걷는다. 옛 기상청 밑 공원 끝 부분에 볼만한 옛 성곽 모습이 펼쳐진다. 오래된 주택가였던 이곳이 정비되면서 숨어 있던 옛 성곽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석들도 많이 보인다. 강북삼성병원 안의 경교장(16)으로 간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뒤 임시정부 집무실 겸 숙소로 썼던 곳이자,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장소다. 2층에 집무실을 복원해 백범기념실을 만들었다. 무료. 일·공휴일 휴관.


돈의문(서대문)터(17)를 만난다. 태조 때 처음 사직단 쪽에 세웠던 문을 이곳으로 옮겨 새로 지었던 문이다. ‘새문안길·신문로’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비롯했다. 일제 때 철거됐다. 정동길로 들어 교내 곳곳에 성곽 흔적이 남아 있는 창덕여중·이화여고를 지난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을 보고 내려가 길 건너 중앙일보사 옆길로 들면 명지빌딩과 상공회의소 건물 담에서 다시 성곽이 이어진다. 큰길로 나오면 성벽은 끊기고 숭례문(18)도 보이지 않는다. 공사가림막에 갇힌 국보 1호 쪽으로, 찻길을 가로질러 표시한 성곽 자리 그림이 안쓰럽게 다가온다. 창의문에서 여기까지 6㎞. 4시간 남짓 걸렸다.

 

»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자료: 녹색연합)

 

워킹 쪽지

혜화문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 이용. 창의문 밖 부암동의 자하손만두집(02-379-2648)은 색색의 만두를 손으로 빚어 내는 집이다. 조랭이떡만둣국·만둣국 각 1만원. 숭례문 부근 옛 삼성본관 뒤 진주회관(02-753-5388)은 콩국수로 이름난 집. 걸쭉한 콩물과 졸깃한 면발을 맛보며 성곽길 걷기를 시원하게 마무리할 만하다. 8천원.

 

<한겨레 이병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