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2008 겨울 희망편지] [12] 난 꿈이 있어 쉴 수가 없다/윤윤수

풍월 사선암 2008. 12. 30. 06:33

 

[2008 겨울 희망편지] [12] 난 꿈이 있어 쉴 수가 없다

맨주먹으로 회사 세워 글로벌기업 오너 됐지만

세계 최고 될때까지 도전

윤윤수·휠라코리아 회장


2주일 전쯤 나는 뜻 깊은 연말 선물을 받았다.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양국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국가 공로 훈장을 받은 것이다. 사실 6개월 전에 훈장 수여 결정 소식을 받았지만, 막상 여러 하객들 앞에서 훈장을 받으니 느낌이 달랐다. 수상 소감에서 나는 25년 전 이탈리아 휠라(FILA) 브랜드와의 인연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휠라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휠라를 처음 찾아가고 나서 거의 10년이 지나서였다. 1983년 당시 나는 국내 한 신발회사 영업담당 이사였는데, 처음 찾아간 휠라 본사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나는 "휠라의 신발 사업을 맡고 싶다"고 제의했지만, 이미 미국 회사가 휠라의 신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휠라는 옷 사업만 했지, 신발사업 자체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다니던 국내 회사에서마저 실적부진을 이유로 옷을 벗어야 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나는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직 40대인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휠라 신발 독점권을 가진 회사를 찾아갔다. 당시 자금사정이 어려웠던 그 회사는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금융을 내가 책임질 테니, 휠라 신발 생산을 내게 맡기라"고 수 차례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 회사와 휠라 일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휠라 본사의 의류사업보다 미국 신발 비중이 더 커졌다. 마침내는 휠라 회장이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휠라코리아를 세워 대표를 맡아달라"고 제의해왔다. 근 10년 만에 내 꿈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 몸은 여러 번 '고비'를 넘겼다. 미국의 신발전시회를 찾아갔다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귀국해서 갑상선 암 수술을 했고, 그 후 심장과 폐 수술도 해야 했다. 지금도 의사는 "해외출장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고, 주위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한다. "이제 휠라 본사까지 인수해 글로벌 기업의 오너가 됐으니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오늘도 나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7시에 회사에 도착, 해외 파트너와의 전화 미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60대 중반이 되었지만, 내가 쉬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겐 아직 이뤄야 할 꿈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통되는 글로벌 브랜드를 우리나라가 소유하게 됐으니 이제는 이 브랜드를 명실공히 세계 시장의 리딩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꿈이다.


요즘 미국 경기 위축으로 실적이 생각만큼은 좋지 않다. 그 때문에 더 자주 미국을 오간다. 그러나 내겐 이런 어려움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다들 고개를 저을 때에도 결국 나는 해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돼 어머니를, 그리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대학도 3수 끝에 겨우 들어갔다. 지금 난 휠라의 오너가 됐지만,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도달해야 할 꿈이 있는 한, 늘 시련은 우리를 시험한다.